한국인 '대형차 사랑'에 … 20년간 24㎝ 길어진 쏘렌토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서울 강북구 직장으로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 A씨는 최근 신차 매매 계약을 해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씨는 2012년식 아반떼를 처분하고 '더 길어진' 신형 그랜저를 구매할 생각이었다. A씨는 앞으로 늘어날 가족을 생각하면 실내·적재 공간이 넓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사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크고 넓은 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실제 도로 위를 주행하는 차량의 평균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다. 5일 매일경제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판매 실적과 차종별 규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도별로 판매된 신차(상용차 제외)의 평균 크기는 지난 20년간 한 체급가량 커졌다. 구체적으로 2002년 판매된 차의 평균 크기·무게는 전장(길이) 4591㎜, 전폭(너비) 1790㎜, 전고(높이) 1536㎜, 공차중량(무게) 1436㎏ 등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판매된 신차의 평균 크기·무게를 20년 전과 비교하면 전장은 1.6%, 전폭은 3.4%, 전고는 3%, 공차중량은 10.3% 늘었다. 이는 경차부터 대형차까지 연간 판매된 현대차·기아의 전체 승용차량을 하나의 모델로 가정해 평균값을 낸 결과다.
경차·소형차를 제외한 준중형급 이상 차량만 집계하면 지난해 기준 평균 전장은 4864㎜로 2002년보다 196㎜(4.2%) 길어졌다. 전폭은 1895㎜, 전고는 1579㎜, 공차중량은 1697㎏ 등으로 20년 전보다 각각 4.7%, 2.2%, 13.4% 늘어났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실제 판매된 신차의 평균 크기·무게가 늘어난 이유로는 높아진 경제력, 큰 차와 SUV를 선호하는 소비자, 시장 수요를 반영한 제작사의 모델 변경 등이 꼽힌다. 우선 경제 성장에 따라 소비자 구매력이 커지면서 첫 차를 구매할 때나 기존 차를 교체할 때 크고 비싼 차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자동차는 대표적인 내구소비재로, 초기 지출 비용이 큰 상품이다. 과거 소비자들은 예산 한도 내에서 차를 구입한 뒤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데 따라 차급을 키웠지만, 이제는 허용 예산을 다소 초과하더라도 개인 취향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지난 20년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은 준중형·중형급 차량 수요 정체, SUV·미니밴 등 여가용차량(RV)의 판매 비중 증가 등으로 요약된다. 2002년 현대차·기아가 판매한 전체 신차 중에서 아반떼·쏘나타 등 준중형·중형차는 61%를 차지했지만, 이 비중은 20년 사이 46%로 줄었다. 반면 준대형·대형차 비중은 28%에서 33%로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의 전체 승용차 판매 대수 중 SUV·RV 비율은 38%에서 56%로 늘어났다. 자동차 시장조사 기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체 차량 2151만여 대 가운데 SUV를 포함한 RV 비율은 38%로 집계됐다. 세단(49%)과는 11%포인트 차이 난다.
SUV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도로 위 군비경쟁'도 가속화하고 있다. SUV는 세단에 비해 차고가 높아 운전 중 시야가 넓고, 꽉 막힌 도로에서도 답답함이 덜하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이는 상대적으로 차고가 낮은 세단 운전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SUV 차량으로 인해 시야가 가로막히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업체는 보다 큰 차를 선호하는 소비자 수요에 대응해 모델 변경 시 차체를 점진적으로 키우고 있다. 일례로 기아 쏘렌토의 전장·전폭은 2002년 각각 4570㎜·1885㎜에서 지난해 4810㎜·1900㎜로 늘었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전동화가 이뤄지면서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평균 무게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인 현상이다. 전기차는 차체 바닥에 배터리를 탑재해 내연기관 차량보다 무게가 20%가량 더 나간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대형차 선호도가 높은 배경에는 문화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이동수단의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국·유럽 자동차 시장과 달리 국내 시장 소비자는 차를 재산의 일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여기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정도가 높아 크고 비싼 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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