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노예 되면 지워줄게"…삶 망가뜨린 9개월간의 악몽
20대 대학생 A 씨는 오늘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누군가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 누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걱정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한 통의 SNS 메시지를 받은 후 그녀의 삶은 무너졌습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계정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거 너 아니야?" 트위터 주소도 함께 왔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들어간 게시물에는 내 얼굴을 한 성적 사진이 있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범행
A 씨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또 다른 계정이 등장합니다. 이 계정은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착취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A 씨 사진에서 눈만 합성해 눈동자의 위치를 위쪽으로 향하게 합성했습니다. SNS에서 '아헤가오'라고 불리는데, 일본 성인 만화 등에서 여성의 표정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지인능욕', '지인박제'라는 해시태그도 등장합니다. 해당 계정은 본인이 A씨를 잘 아는 지인이고, 평소 A 씨가 성적으로 문란하고 합성된 표정을 실제로 지었던 것처럼 게시물을 꾸몄습니다.
"노예가 되거나 노출 사진을 보내라"
처음 제보자인 척 접근했던 계정은 한 달 뒤 돌변합니다. A 씨에게 돌연 "텔레그램에 너의 합성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더니 여성의 나체 사진 여러 장을 보냈습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의 나체 사진에 A씨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제작물이었습니다. 기사로는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사진들이 연달아 보내졌습니다.
그러더니 돌연 "내가 이것을 지워줄 수 있다. 지워주면 뭘 해줄 거냐?"라고 물었습니다. A 씨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나체 사진을 보내거나 노예가 돼라)"고 협박했습니다. 나체 사진을 보내면 자신만 소장하고 다른 딥페이크 성착취물들은 지워주겠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고등학교 선배'
A 씨는 그나마 운 좋게 IP 추적을 통해 가해자 계정 한 개의 접속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가해자를 유도하기 위해서 그동안 고통을 참으면서 연락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변호인이 개발한 IP 추적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접속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가해자의 위치는 A 씨가 사는 동네였습니다. 피해자의 비공개 계정에 있는 사진으로 딥페이크 제작물을 만들 때부터 '어쩌면 근처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의심했는데, 실제 범인은 바로 옆에 있었던 겁니다. A 씨와 변호인은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가해자를 추궁했습니다. 그렇게 베일을 벗은 가해자는 고등학교 1년 선배인 20대 남성 김 모 씨였습니다.
피해자 A 씨와 가해자 김 씨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학창 시절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학원도 같이 다녔던 소위 '동네 선배'였습니다. 피해자가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둘 사이는 선후배 그 이상도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씨는 "처음에 잘못 본 줄 알았다. (피의자를 특정했던 그날이 심리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으면 나에게 이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고 당시 충격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최소 6개의 익명 계정 역시 모두 김 씨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딥페이크 게시물을 올린 것도, 게시물을 A 씨에게 제보한 것도 모두 김 씨의 소행이었습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황당한 변명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A 씨의 사진을 유포하고 협박할 때 내가 도와준다면 나에게 호감이 생길 거라고 판단했다. A 씨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영웅처럼 나타나 해결할 생각이었다)."
9개월 만에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피해자가 당당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A 씨에게 용기 내서 인터뷰에 나선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A 씨는 "많이 힘들었고, 그동안 고민도 많이 했지만, 제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며 "피해자가 당당해지고 공론화해야 범죄도 줄고 더 많은 범죄를 차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비슷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해외 기업들과 보다 빠른 협조를 통해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사공성근 기자40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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