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전에 사람부터 돼야”…블랙리스트·막말에 의사들도 ‘발끈’

강윤서 기자 2024. 9. 1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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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 교수 “응급실 지켰다고 ‘부역자’라니…악담 큰일”
“의사 파업권 지지하지만 중증·응급환자 곁 떠나면 안 돼”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대체 어느 직종이 파업을 벌이면서 '1000명은 더 죽어야 한다'라고 하겠나. 의사가 되기 전에 인간부터 돼야 한다. 정부에 대한 감정의 골이 아무리 깊어도 이건 선을 넘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응급의학 전문의 A씨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의사 커뮤니티에 올라온 환자 조롱글이 공개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도 충격이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통화 당시 응급실 당직 근무 중이던 A씨는 의대 증원 관련 의료계 대정부 투쟁을 지지하지만 그 방식이 도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의대생들의 막말과 의료 현장에 남은 의료진에 대한 신상털이가 논란이 지속되면서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상 언행에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의료공백 사태에도 중증·응급환자 곁을 떠나선 안 된다며 '의사 블랙리스트' 악습을 단절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A씨는 "파업을 하더라도 응급·분만·암·투석 환자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이분들 죽을 수도 있다"며 "이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고, 세계적으로도 의사 파업의 유래가 그렇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데 응급실에서 계속 환자를 보고 있다는 이유로 '부역자'라 부르고, (응급 환자들이) 더 죽어야 한다고 악담을 퍼붓는 건 정말 큰일이다"라며 "이러한 파업은 굉장히 잘못되고 있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의사 블랙리스트의 잇단 등장이 의·정 갈등의 대화 국면을 막는다는 관측도 있다. 이번 사태에서 의료계 다수가 주장하는 강경책과 달리 대화 등 유화책 목소리를 냈다간 낙인 찍힌다는 일부 의사들의 우려도 전해졌다.

7개월째 지속된 의료 공백 사태로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진 가운데 반감을 불러일으켜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0일 입장문을 내고 "'감사한 의사 명단' 일명 응급실 블랙리스트 작성·유포로 인해 의료계 내 갈등이 불거지고 국민들께 우려를 끼친 것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고 비난하며 동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수호하는 의료계일수록 더욱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자성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의료계 내부 갈등은 사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환자 조롱글과 관련해 수도권 대학병원의 B 교수는 "사실상 미친 사람은 어느 집단이든, 어딜 가든 있지만 도대체 어쩌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의료계 자정 노력이 이제는 정말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한 커뮤니티에선 의사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같은 의사로 부끄럽다", "선을 넘었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막말·블랙리스트 파장…명단 만든 의사에 구속영장

최근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의료공백 사태가 심각해지는 상황을 조롱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칭하는 패륜 발언이 잇달아 게시됐다.

의대생·의사로 추정되는 작성자들은 "매일 1000명씩 죽어 나갔으면 좋겠다", "추석에 응급실 대란이 진짜 왔으면 좋겠다", "(환자들이) 응급실을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 "더 죽어서 뉴스에 나왔으면 하는 마음 뿐"이라는 등 선 넘은 막말을 퍼부었다.

한 작성자는 "(개돼지들이) 의사에게 진료 받지 못해 생을 마감할 뻔한 경험들이 여럿 쌓이고 쌓여야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고도 했다.

해당 게시글들이 공개되면서 정부는 응급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작성자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인지 밝히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 블랙리스트'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12일 복귀 전공의를 추려 이른바 '감사한 의사'라는 제목으로 명단을 만들고 온라인에 게재한 의사 C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초 C씨를 개인정보보호법 등 혐의로 입건했지만, 법률 검토 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C씨는 지난 7월 복귀 전공의를 비롯해 의료현장을 지키는 의사들 이름과 소속 병원·학과 등 신상 정보를 담은 자료를 주도적으로 작성했다. 또 해당 자료를 의사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채널에 공개한 혐의를 받는다.

의사들의 신상털이와 조리돌림은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사직한 이후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엔 사직하지 않은 전공의를 '참의사'라고 비꼬며 일부 전공의들의 개인정보가 게시됐다. 지난 7일에는 '응급실 부역'이라는 이름과 함께 응급실 근무 의사들의 실명과 각종 정보가 적힌 명단이 유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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