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체계 붕괴 조짐에 "지금은 아프면 안 된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생긴 의료 공백이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까지 재확산 하고, 보건의료노동조합도 총파업을 예고했다. 의료 현장이 도미노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민은 "지금은 아프지 않는 수밖에 없다"며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분위기다.
27일 오전 삼성창원병원에서 만난 이세례(42·창원) 씨는 지난해 11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최근 그는 6개월 단위 정기 검진을 병원에 문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초음파 검사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파업에 들어가 진료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 기록을 가져오면 진료받을 수 있다는 말에 급하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 씨는 "1년 정기 검진도 받아야 하는데 파업이 언제 끝날지 몰라 미리 예약조차 안 되고 있다"며 "이러다가 진료를 봐주는 선생님까지 파업에 들어가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병원이 전체적으로 과부하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원래 침대에 누워서 항암주사를 맞았는데 최근에는 침대가 모자라 의자에 앉아서 몇 시간씩 맞는다"며 "왜 그러냐 물어보니까 요즘에는 수도권 병원들 파업이 심하니까 되레 지역으로 온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날 삼성창원병원을 찾은 김옥자(62·대구) 씨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오후 9시 갑작스럽게 배가 아파 응급실에 실려갔다. 검진 결과 담도(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을 십이지장으로 보내는 관)에 이물질이 껴 염증이 생겼다는 소견이 나왔다. 대학병원으로 옮겨 정밀 진단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 씨를 받아 줄 대학병원은 한 곳도 없었다. 황달 증상 등 각종 수치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긴급 처치만 받았다. 위험 부담이 컸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극적으로 위급한 상황을 넘긴 김 씨는 수소문 끝에 삼성창원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김 씨는 "나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경남이고 부산이고 한 군데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며 "어쩔 수 없이 응급실에서 진행한 관 삽입술이 안전하게 잘 끝나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부가 알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20년 넘게 당뇨를 앓는 김시현(41·창원) 씨는 다리 쪽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괴사하는 당뇨병성 족부궤양 진단을 받았다. 심하면 절단하거나 패혈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만 그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입원 후 혈액 흐름을 개선하는 시술 등을 받아야 하는데 입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상처 부위 감염으로 병원을 찾으면 소염제나 항생제를 주는 게 전부"라며 "3차 병원에 입원을 문의하면 병상이 없다고 반복할 뿐이고 절단까지 가는 상황이 돼야 입원할 수 있는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소독하고 주기적으로 외래 가서 괴사한 부분을 걷어내고 있다"며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의료 서비스가 지금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국민이 그 피해를 보는 꼴이다. 보건의료노조가 29일 총파업하면 의료 체계가 멈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다. 여기에 추석 명절 의료 대란은 불가피하다는 절망적인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는 비상 진료 체계와 응급 체계 유지에 최선을 다해 응급의료, 중환자 치료 등 필수 업무는 차질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지부 대표는 "정부에서는 큰 문제 없다고 사실상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터무니없는 사망 사고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특히 지역은 안 그래도 몇 없던 의료 인력이 대부분 수도권으로 빨려가면서 의료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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