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코트 위에서 세터는 단순히 공을 띄워주는 사람이 아니다. 공격의 흐름을 만들고, 경기의 리듬을 조율하는 사령탑이다. 그래서 세터가 흔들리면 팀 전체가 무너진다. 그런 의미에서 필승 원더독스의 구솔은 단순한 포지션 이상의 존재다. 그는 수많은 실패와 방출, 그리고 해외로의 험난한 도전을 거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온 선수다. 화려한 커리어보다 ‘버텨낸 시간’이 그의 진짜 이력서다.

구솔은 2019년 KGC인삼공사에 3라운드 1순위로 지명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81cm의 큰 키에 안정적인 토스가 강점이었고, 당시만 해도 ‘장신 세터의 가능성’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데뷔 첫 해는 냉혹했다. 부상과 팀 내 경쟁이 겹치면서 정규시즌 2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구슬땀을 흘렸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결국 1년 만에 팀을 떠나야 했다. 프로의 세계가 얼마나 냉정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던 시기다. 대부분의 선수라면 그쯤에서 마음이 꺾이기 마련이지만, 구솔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실업팀 양산시청으로 향했다. 화려한 조명도, 중계 카메라도 없는 무대였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코트를 밟았다. 주전으로 뛰며 다시 감각을 되찾았고,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이 조금씩 자랐다. 그때 마침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이 창단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던 그를 불렀다. 구솔은 2021년 페퍼저축은행 유니폼을 입고 V-리그로 복귀했다. 새로운 팀, 새로운 시작이었다. 하지만 주전 경쟁은 쉽지 않았다. 젊은 세터들이 빠르게 성장했고, 구솔은 교체 멤버로 주로 출전했다. 주전으로 뛸 때는 짧은 순간에도 팀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2023년 시즌 종료 후 또 한 번 방출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 방출. 누구라도 무너질 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구솔은 이번에도 다른 선택을 했다. “이제 그만하자” 대신 “그럼 다른 길을 찾아보자”를 택했다. 그 길의 끝에는 해외 무대가 있었다. 프랑스 2부 리그 생샤몽 팀의 제안이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언어도 통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가방을 쌌다. 유럽의 배구는 국내보다 속도와 리듬이 달랐다. 세터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읽는 힘’을 가져야 했다. 구솔은 하루하루 훈련을 거듭하며 새로운 감각을 몸에 익혔다. 경기 중에는 상대 블로커의 움직임을 재빨리 보고, 그 빈틈으로 공격수를 연결했다. 어느새 프랑스 리그에서도 주전 세터로 자리 잡았고, 팀은 그가 있을 때마다 안정감을 찾았다.
그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자 아제르바이잔 명문팀 아제라일 바쿠가 러브콜을 보냈다. 유럽에서도 상위권 실력을 가진 리그였다. 구솔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야 진짜 배구를 배우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아제라일에서는 더 빠른 템포, 더 강한 스파이크를 다뤄야 했다. 손끝이 부서질 만큼 훈련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도 리듬을 찾았다. 해외 생활은 힘들었지만, 그 시간 동안 그는 단단해졌다. 자신감이 생겼고, 세터로서의 시야가 넓어졌다.

그렇게 유럽에서 쌓은 경험은 결국 다시 한국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필승 원더독스의 김연경 감독이 그를 눈여겨봤다. 김 감독은 “구솔은 단순히 공을 올리는 세터가 아니라, 경기 흐름을 읽는 세터”라며 영입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2025시즌, 구솔은 다시 한국 코트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방출당했던 세터가 아니라, 세계를 돌며 실전 감각과 자신만의 철학을 갖춘 ‘리더’로 돌아왔다.
필승 원더독스는 창단 초반부터 ‘팀워크’로 승부하는 팀이었다. 스타 플레이어보다는 서로의 호흡이 중요했다. 구솔은 그 중심에서 경기를 조율했다. 세터로서의 빠른 판단력, 공격수를 믿고 올려주는 자신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트 위에서의 리더십이 팀을 바꿔놓았다. 공격이 막혀도 구솔은 팀원에게 “괜찮아, 다음에 잡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세터는 흔히 ‘감정의 중심’이라 불린다. 구솔은 그 말을 실천하는 세터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상대 수비를 읽는 능력이다. 예전엔 단순히 공격수의 위치를 보고 올렸다면, 지금은 상대 블로커의 시선과 움직임을 먼저 본다. 상대가 왼쪽으로 쏠리면 재빨리 오른쪽 속공을 연결하고, 중앙이 비면 페인트처럼 토스를 띄운다. 그런 플레이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다. 해외 리그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공격수를 다뤘던 경험이 그만큼 컸다.
팀 내에서도 구솔의 존재감은 크다. 그는 주전으로 뛰는 동시에 후배 세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공은 누구에게나 갈 수 있지만, 흐름은 세터가 만든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이 코트 위에서 만들어야 할 분위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 김연경 감독은 “구솔은 세터 이상의 역할을 한다. 공격 패턴을 조율하는 동시에 팀 분위기를 살린다”고 평가했다.
구솔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꾸준함 때문이다. 두 번의 방출, 낯선 해외 무대, 언어의 장벽, 그리고 외로움까지. 그 모든 걸 견디며 그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다. 많은 선수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구솔은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필승 원더독스의 중심에서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 구솔은 ‘다시 일어선 세터’로 불린다. 불운의 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경기 안팎에서의 ‘끈기’다. 팀원들은 “구솔이 세트를 올리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게 세터의 진짜 역할 아닐까. 공 하나로 분위기를 바꾸는 사람, 바로 구솔이다.
이제 그녀는 말한다. “내가 배운 건, 결국 포기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재능이라는 것.” 그 한마디에 그의 배구 인생이 다 들어 있다. 방출과 부상, 외국 생활과 고독까지 모두 그의 이야기를 완성한 재료였다. 지금의 구솔은 예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더 여유 있다. 앞으로 필승 원더독스의 경기를 보는 팬들은 그가 올리는 한 번의 세트마다 담긴 노력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구솔의 이야기는, 끝내 버티고 끝내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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