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살인 앞에서 법은 왜 비켜 섰는가…도진기 ‘4의 재판’
피해자가 법의 논리를 역이용하는 반격…불편한 질문 던지는 장편소설

법은 왜 정의를 비켜 가는가
보험금 살인이라는 노골적인 탐욕 앞에서, 법은 언제나 정의의 편일까.
도진기 신작 장편소설 '4의 재판'은 이 불편한 질문을 법정 한가운데로 끌어온다. 20여 년간 판사와 변호사로 활동해 온 작가의 경험은 이번 작품에서 장르적 긴장과 제도 비판이라는 두 축으로 정교하게 결합된다.
'4의 재판'은 보험을 노린 계획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중심에 둔다. 그러나 이 소설의 관심은 범인을 '잡는 것'보다, 범인이 어떻게 법의 언어를 무기로 삼아 처벌을 피해 가는지에 있다. 법정소설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허점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추리극에 가깝다.
△명백해 보이는 범죄, 그러나 법은 달랐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은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이다. 여론은 일찌감치 보험금을 노린 범죄를 의심했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민사 재판에서도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도진기는 이 결과의 옳고 그름을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법망'이 어떻게 실체적 정의와 어긋날 수 있는지를 소설적 장치로 재구성한다.
형사 재판에서 요구되는 '합리적 의심이 전혀 없는 수준의 입증', 그리고 대법원 확정 판결이 민사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작품 속에서 범죄를 완성시키는 도구로 기능한다. 법의 엄격함이 역설적으로 악인을 보호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묵직한 불편함을 남긴다.
△무력한 피해자에서 냉철한 추적자로
주인공 선재는 법을 잘 모르는 평범한 인물이다. 약혼자의 죽음 앞에서 그가 기대한 것은 상식적인 정의였다. 그러나 재판이 이어질수록 법은 피해자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언어로 작동한다. 완벽한 법리 뒤에 숨어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하는 피고인의 태도는, 선재를 절망과 분노의 경계로 몰아넣는다.
이 지점에서 '4의 재판'은 단순한 제도 비판을 넘어선다. 선재는 무력한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범죄자가 악용한 법의 논리를 집요하게 학습하고, 그 틈을 역이용하며 반격을 준비한다. '눈에는 눈'이라는 복수극의 쾌감이 살아나는 순간이다. 작가는 법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가능한 최대치의 반전을 설계한다.
△정의의 주먹이 아닌, 신호등으로서의 법
소설 곳곳에는 도진기가 오랜 법조 경험 끝에 도달한 냉정한 인식이 스며 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장치에 가깝다는 인식이다. 주먹이 아니라 신호등에 비유되는 법의 모습은, 선량한 시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느끼는 배신감과 무력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렇다고 작가는 법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법은 고정된 절대물이 아니라, 사건과 요구 속에서 아주 느리게 변하는 '살아 있는 제도'라는 인식 역시 작품의 중요한 축이다. 결국 법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 한계를 인식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들이받는 과정이라는 메시지가 남는다.
△법정소설의 미덕, 그리고 장르적 재미
'4의 재판'은 무거운 주제의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20년 법조 경력이 빚어낸 정교한 공방,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 전개,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은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를 충실히 보장한다. 작가가 말했듯, 이 작품에서 주제는 2순위이고 재미는 1순위다. 그 선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도진기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장점을 증명한다. 법을 아는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디테일, 그리고 법을 믿었던 독자가 끝내 질문을 품게 만드는 서사. '4의 재판'은 정의를 믿고 싶어 하는 독자에게 가장 불편한 방식으로 말을 건네는 소설이다.
법은 언제나 옳은가.
혹은, 옳지 않더라도 그대로 두어도 되는가.
이 질문 앞에서 '4의 재판'은 끝까지 독자를 법정에 앉혀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