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까지 펭귄 보러 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txt]

한겨레 2026. 1. 1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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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함께 꽂아두면 폼나는 책
20년간 꿈꾼 남극 여행 드디어 이루다
펭귄과 물범에게 인간은 무서운 이방인
남극 생물과 환경은 지구 기후 지킴이
턱끈펭귄 한마리가 남극 셰틀랜드제도의 디셉션섬 해변을 걷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25년 11월18일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서 책 세권을 챙겼다. ‘나의 폴라 일지’(한겨레출판), ‘남극이 부른다’(동아시아), ‘빙하 곁에 머물기’(글항아리).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그렇다, 나는 남극에 다녀왔다.

2025년 1월 말에 소설가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가 나왔을 때 무지하게 부러웠다. 세상에 남위 62도의 세종기지라니…. 내가 20년간 꿈꾼 여행이 아니던가! 과학자의 탈을 쓰고 살았지만 정작 과학 활동을 그다지 하지는 못했던 나는 스스로 김금희가 되어 뜨거운 심장으로 하지만 차근차근 책을 읽어나갔다. 아! 이렇게 생생하면서도 솔직한 기록이라니.

세상일은 알 수 없다. 리틀턴항에서 (남북극을 홀로 담당하는) 쇄빙선 아라온호에 몸을 싣자마자 세권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나의 폴라 일지’를 두번째 읽을 때 가장 눈에 띈 대목이 있다. 세종기지를 방문한 각국의 고위 인사들은 정작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몰아치기로 해치우고 펭귄 마을로 곧장 향한다. 그들을 시중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닌 세종기지 연구자들이 “대체 펭귄이 뭐길래!” 하면서 세종기지에 펭귄 몇마리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결심했다. 굳이 나까지 펭귄 보러 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라고 말이다.

아라온호로 항해하는 도중에 해빙 위에 있는 펭귄을 수없이 봤다. 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한 펭귄은 필사적으로 도망가더라. 물범은 물개와 달리 상체를 들지 못하고 꿀럭꿀럭 겨우 움직인다. 배를 발견한 물범은 똥을 싸면서 겨우 몇미터 움직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물들에게 인간은 낯설고 무서운 이방인이다.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자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남극반도 패러다이스항에 있는 칠레 기지에서 관광객들이 젠투펭귄의 사진을 찍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매년 남극에는 10만명 이상이 발을 내디딘다. 대부분은 크루즈 관광객들이다. 연구자와 기지 종사자는 5천명 정도다. 나는 입장이 모호했다. 연구자 탈을 쓴 탐사가 정도로 해두자. 내가 속한 남극 중앙해령 연구팀의 대장은 질란디아-남극 맨틀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맨틀을 발견한 지질학자 박숭현 박사다. 그는 ‘남극이 부른다’와 ‘극지로 온 엉뚱한 질문들’(정은문고)의 저자이기도 하다.

남극이 부른다’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태평양처럼, 때로는 사납게 넘실거리는 북극해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는 우리의 지식을 남극의 하얀 빙하에 국한하지 않고 남극을 둘러싼 바닷속으로 확장시킨다. ‘극지로 온 엉뚱한 질문들’은 극지에 대한 일반 상식을 넓히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온갖 오해를 풀어준다. 예를 들어 극지의 ‘극’은 극한이 아니라 ‘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극은 혹독하거나 세상 끝이라거나 하는 의미와는 멀다. 이 책으로 나는 빙산, 해빙, 유빙, 빙붕, 빙하를 구분하게 되었으며, 남극이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사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어쩐지 지나치게 아름답더라고….) 아마 내가 어디 가서 남극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된다면 두 책을 바탕으로 슬라이드를 만들게 될 것 같다.

내가 남위 74도의 장보고 기지에 도착했을 때 극지연구소의 빙하학자 신진화의 ‘빙하 곁에 머물기’와 야외생물학자 이원영의 ‘와일드’(글항아리)가 과학자들이 선정하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올해의 과학책 10권’에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두 책은 모두 극지를 극한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시험되는 장소로 그려낸다. ‘빙하 곁에 머물기’가 빙하학자의 시선으로 얼음 옆에 ‘머문다는 것’의 의미, 즉 느리게 관측하고 오래 기록하며 자연의 시간에 자신을 맞추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와일드’는 극지와 야생의 현장에서 마주한 생생한 감각과 선택의 순간들을 통해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리며 또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남극이 곧 펭귄은 아니지만 펭귄은 정말 사랑스럽다. 펭귄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남극에 가는 대신 이원영의 책을 읽으면 된다. ‘물속을 나는 새’(사이언스북스), ‘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위즈덤하우스), ‘펭귄의 여름’(생각의힘)이 그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남극에는 펭귄만 있는 게 아니다. 극지 생명의 다양성으로 생각을 넓히려면 이원영의 ‘자연은 포기하지 않는다’(교보문고)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극지에는 남극과 북극이 있는데 어쩌다 보니 남극 이야기만 했다. 왜? 내가 북극에는 못 가봤으니까. 북극에도 관심을 갖자. 꼭 직접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극지연구소의 식물학자 이유경의 ‘엄마는 북극 출장 중’(에코리브르)이면 충분하다. 이유경과 그의 동료 정지영이 쓴 ‘극지 과학자가 들려주는 툰드라 이야기’(지식노마드)와 ‘이원영 선생님이 들려주는 기후 위기와 지구 끝 동물 이야기’(우리학교)는 극지 생태계와 기후 문제를 연관 지어서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이정모 제공

아이들에게 한권의 책으로 남극을 알려주고 싶다면 ‘남극―노토 탐험대와 떠나는 야생의 대륙’(찰리북)이 최고다. 노토 탐험대가 펼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남극의 야생 생물이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며 빙상과 남극 저층수 같은 남극의 환경을 이루는 많은 요소가 지구의 기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에 소개된 13권의 책 가운데 12권이 한국 극지연구소 과학자들이 쓴 책이다.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와 경험을 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풀어놓을 수 있는 연구소의 분위기가 부럽다. 이번에 알게 된 젊은 지구물리학자들의 책도 나오길 기대한다. 한국 극지연구소 만세! 극지연구소에 두번째 쇄빙선을 허하라!

이정모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정모 과학 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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