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에 열광하듯 야구 응원하는 2030 여성들
"안경을 쓴 인형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채은성 선수를 상징해요. 야구장에서 응원할 때뿐 아니라, 여행을 가거나 음식을 먹을 때도 채은성 선수 인형과 함께 '인증숏'을 찍어요. 야구 결과를 기록하는 다이어리를 구매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도 하고요."(한화 이글스 팬 20대 여성 A 씨)
"구자욱 선수 인형을 직접 만들었어요. 인형과 파란색 인형 옷, 구단 로고와 선수 등번호 모양의 전사지를 주문해 오리고 붙였어요."(삼성 라이온즈 팬 20대 여성 B 씨)
"친구들과 야구장에 가면 늘 하는 코스가 있어요.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긴 뒤 가장 먼저 선수들 사진이 새겨진 랜덤 포토 카드를 뽑고, 야구 구단 로고로 꾸며진 인생네컷을 찍은 다음 야구장에 입점한 유명 맛집에 가요."(한화 이글스 팬 25세 여성 김모 씨)
야구는 5년 전만 해도 중장년 남성이 즐기는 스포츠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 야구 열기를 이끄는 것은 2030세대 여성이다. 7월 6일 열린 KBO(한국야구위원회) 올스타전 입장권 예매자의 58.7%가 20, 30대 여성이었다. 야구장의 절반 이상을 채운 젊은 여성들이 야구 응원 문화를 바꾸고 있다.
직접 굿즈 만들어 판매·나눔
2030 여성 팬은 '야구 갤러리'가 아닌, 'X'(옛 트위터)에서 주로 활동한다. X에는 성능 좋은 카메라로 선수들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명 '홈마'가 있다. 홈마는 선수들이 대기하거나 몸을 푸는 불펜 또는 더그아웃 근처 좌석에 자리 잡은 뒤 선수가 경기를 뛰는 모습뿐 아니라, 같은 팀 동료들과 장난을 치거나 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담은 '직캠'을 촬영한다. 홈마가 직캠 사진의 색감 등을 보정해 올리면 야구팬들은 이 사진을 공유하거나 소장한다. X에서 팬들은 랜덤 포토 카드를 맞바꿀 사람을 구하기도 하고, 직접 만든 굿즈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과거에는 아이돌 EXO 카이와 더보이즈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채은성 선수를 가장 좋아해요. 채은성 선수가 팀의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고 팬들에게도 잘해서요. 아이돌을 좋아할 때 아이돌 인형이나 포토 카드를 들고 인증숏을 찍었는데, 요즘에는 채은성 선수의 인형이나 포토 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어요."
여성 팬 확대 이벤트 늘어
2030 여성 관중의 증가로 올해 KBO리그 정규시즌은 역대 최다 관중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10월 1일 막을 내린 KBO리그 정규시즌 720경기에 총 1088만7705명 관중이 입장했다. 종전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인 840만688명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지난해 총 관중 수(810만326명)와 비교하면 37%가 증가했다. 10개 구단 입장 수입은 총 1593억여 원으로 초대박이 났다.
야구 관련 상품 매출도 늘었다. 키움 히어로즈 관계자는 "올 시즌 9월까지 굿즈 등 MD 매출액이 전년 대비 약 6.5% 상승했다"며 "젊은 여성 팬 확보를 위한 여대 특강 등 여성 대상 마케팅 활동이 MD 매출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SSG 랜더스는 "구단이 올 시즌 트렌디한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출시하면서 올해 굿즈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약 20% 증가했다"며 "‘카시나' '라인프렌즈' 등 협업 제품 중 일부 메인 상품은 완판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각 구단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키움 히어로즈 관계자는 "젊은 층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발굴해 유튜브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며 "늘어나는 여성 팬을 겨냥한 행사를 진행하고자 관련 협의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SSG 랜더스 관계자 역시 "2030 여성 팬의 증가에 발맞춰 내년 시즌을 계획할 때 여성 팬을 위한 이벤트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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