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3천만 원대에서 1,500만 원으로
'역대급' 감가와 '역대급' 수리비 사이

한때 강남 대로를 수놓던 이탈리아 삼지창의 위세가 이제는 중고차 매매단지의 한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1억 원을 웃도는 가격으로 부의 상징이라 불렸던 마세라티 기블리가 이제는 국산 준중형차 수준의 가격표를 달고 예비 구매자들을 유혹한다.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던 드림카를 손에 넣을 기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대급’이라 불리는 감가만큼이나 혹독한 관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화려한 이탈리아 감성과 냉혹한 현실 사이, 3세대 기블리 초기형이 처한 기묘한 위치를 짚어본다.

2014년 등장한 기블리는 마세라티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다. 당시 신차 가격은 사양에 따라 1억 500만 원에서 1억 3,500만 원에 달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1,500만 원에서 1,900만 원 사이다. 잔존 가치가 10% 남짓으로 떨어진 셈이다.
이러한 ‘역대급’ 감가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이례적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취등록세를 포함해도 2,000만 원 안팎이면 마세라티의 오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강력한 무기다. 길거리의 흔한 아반떼 대신 이탈리아 특유의 우아한 곡선과 삼지창 엠블럼을 선택할 수 있는 가성비의 영역에 들어왔다.
단순히 저렴해진 가격만으로 기블리를 평가하기엔 이 차가 가진 유전자(DNA)가 아깝다. 페라리에서 조율한 엔진 사운드는 여전히 도로 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터져 나오는 배기음은 최신 전기차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적 쾌감을 선사한다.

중고 기블리를 구매하려는 이들이 반드시 마주하게 될 첫 번째 관문은 뜻밖에도 실내에 있다. 이른바 ‘버튼 끈적임’ 현상이다. 고급 소재를 지향하며 적용했던 실내 플라스틱 코팅이 시간이 흐르며 녹아내려, 손만 대면 검은 물질이 묻어나는 불쾌함을 선사한다. 이는 이탈리아 차 특유의 고질적인 마감 문제로 꼽힌다.
진정한 ‘역대급’ 경험은 정비소 리프트 위에서 시작된다. 엔진오일 누유와 냉각수 라인의 내구성 문제는 2014~2015년식 모델에서 흔히 발생하는 고질병이다. 여기에 복잡한 전자계통 잔고장이 겹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진다.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공임 역시 마세라티 브랜드 가치에 맞춰 책정되어 있다. 자칫 관리가 소홀했던 매물을 집었다가는 차값에 육박하는 수리비 고지서를 받게 된다. 중고차 구매가 끝이 아니라, 차량가격에 육박하는 또다른 예비비가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기블리는 2,750mm의 휠베이스를 갖춰 공간 활용성 면에서는 준수한 편이다. 하지만 이 차를 패밀리 세단으로 접근하기엔 승차감과 유지 측면에서 장벽이 높다. 최근 유행하는 캠핑이나 장거리 가족 여행보다는, 주말 저녁 도심 드라이브를 즐기며 그 시절의 감성을 만끽하는 세컨드카로서의 성격이 짙다.
결국 1,500만 원짜리 기블리는 합리적인 소비보다는 ‘취향의 영역’에 가깝다. 낡은 실내 버튼을 복원하고, 시시때때로 비치는 엔진 경고등을 견뎌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뚫고 터져 나오는 6기통 엔진의 포효를 듣는 순간, 왜 이 차가 여전히 매력적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블리를 소유한다는 것은 ‘역대급’ 감가가 주는 달콤함과 ‘역대급’ 유지비가 주는 쓴맛을 동시에 감내하겠다는 의지다. 삼지창의 무게를 견디고 관리할 준비가 된 운전자에게만 이 가성비 럭셔리 세단은 진정한 가치를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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