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자들 에게 사랑받는 19금 웹툰 속 성공 키워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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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자가 세운 19금 웹툰의 세계

젠더리스 러브 스토리
동성 간의 사랑을 뜻하는 BL(Boy’s Love), GL(Girl’s Love). 여성향 웹툰 플랫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키워드다. 어쩌면 전통적인 로맨스 장르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인기 있는 카테고리이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브컬처로 취급되었던 BL, GL이 메인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8090 여성 독자들의 힘이 컸다. 이들은 특히 퀴어 문화에 거부감이 적은 세대인데, 1990년대부터 이어져온 아이돌 팬덤 문화의 영향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 간의 연애를 그린 소설 ‘팬픽’이 성행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안다(지금도 아이돌 팬덤에선 활발히 제작된다). 팬픽을 직접 생산, 소비하고 공유하는 데 능했던 소녀들은 자라서도 동성애물을 쓰고, 읽고, 그리고, 공유한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 경제력까지 갖춘 소비자가 되면서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어떤 장르보다 코어한 독자층을 가진 BL, GL은 당분간 건재할 듯하다.
로맨스 판타지
로맨스는 성인 웹툰 시장에서도 만고불변의 클래식이자 흥행 공식.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다. 현실 너머 판타지의 영역에서도 로맨스는 무섭게 세력을 확장 중이다. 로맨스 판타지(이하 ‘로판’)는 과거, 웹소설에서 주류 장르로 소비돼왔다. 중세 유럽이나 조선시대 등을 다룬 시대극인 경우가 많고, 대부분 왕자와 신데렐라형 여주가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19금 작품들은 어둡거나 피폐해서 호불호가 갈렸다. 작화가 까다롭고, 호흡이 긴 탓에 웹툰으로 제작되는 데 한계가 있었는데, 최근 성인 웹툰 시장의 성장은 ‘로판’의 활로 개척에도 도움이 됐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만 보던 서브컬처가 메인 플랫폼에 등장하면서 어엿한 메이저 장르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신작이 대거 등장하고, 동명의 19금 웹소설을 웹툰화하는 경우도 늘었다. 시대물 위주의 일반적인 로판 외에 현대물에 판타지 요소를 한 방울 섞은 작품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어, 앞으로 로판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집착광공
BL물에서 처음 등장한 후, 요즘은 이성 연애물에서도 흔히 쓰이는 남자 캐릭터의 성격 유형이다. BL에선 두 주인공 모두 남자이기 때문에 관계 시 위치와 역할에 따라 공과 수로 구분한다. 이때 공의 특징을 ‘다정공, 재벌공, 까칠공’ 같은 키워드로 표현하는데, 집착광공은 그중 하나다. 상대 남자 주인공이나 여주에게 미친 듯이 집착하는 캐릭터에게 붙는 수식어다. 특히 19금 신이 있는 성인 웹툰에서 그의 마력은 극대화된다. 온라인에는 ‘집착광공’의 수백 가지 특징이 밈처럼 떠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외모나 성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우선 훌륭한 피지컬은 기본이다. 늘 셔츠와 수트 차림에, 메탈 시계만 차야 한다. 잘생긴데다 유능해서 젊은 나이에 본부장 직책 정도는 달고 있어야 합격. 또 차갑기 그지없는 성격에, 펜트하우스에 살아야 하며, 집착광공의 냉장고엔 물과 탄산수, 독주만 들어 있다. 노래는 가사 없는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만 듣고, 모두에게 냉철하고 무심해야 한다. 하지만 단 하나, 상대 캐릭터에게만큼은 열렬한 모습에 수많은 독자가 마음을 뺏기고 만다.

섹스 판타지
‘새디스틱 뷰티’ ‘오아시스’ ‘현실ㅅㅅ’은 모두 각 웹툰 플랫폼 상위 랭크에 있는 작품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섹스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 BDSM(구속, 복종, 가학, 피학 등의 성향을 나타내는 말)처럼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판타지는 이제 성인웹툰 소재로 두루 활용되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성적 취향을 말하면 채찍을 들거나, 끈으로 묶고, 때리는 등의 퇴폐적이고 잔인한 그림을 떠올린다. 하지만 대표적인 BDSM물인 ‘모럴센스’ 같은 작품에서는 그저 때리고 맞으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하나의 섹스 취향임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연출이나 에피소드를 풀어내기도 한다. 꼭 이렇게 극단적인 취향이 아니더라도 성인 웹툰은 독자들의 섹스 판타지를 만족시킨다. 이를테면 현실에서 만나본 적 없는 취향의 남자와 여주의 섹스 장면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든가 하는 식이다. 실제로 특히 멋진 남주가 나오는 작품의 댓글엔 ‘과몰입’한 독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여공남수
여성 독자들은 여전히 러브 스토리에 열광하지만, 캐릭터 하나하나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남주는 폭력적이지 않아야 하고, 카리스마 있되 여주에겐 한없이 다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성 캐릭터는 어떨까? 이제는 ‘여공남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적극적이고 리더십 넘치는 여주가 사랑받는다. 한껏 예민하고, 화를 낼 줄 알며, 상대를 손안에 쥐고 휘두르기도 한다. 성관계 장면에선 먼저 남주를 리드하고, 섹스 토이 등을 활용해 남성의 역할도 해낸다. 과거에는 금기시되고,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던 여성의 욕망과 욕구를 전면에 드러내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독자마다 어느 정도 수위의 여성 캐릭터여야 ‘여공남수’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보호받기만 하거나 여기저기 사고만 저지르는 구태의연한 여주로는 독자를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여성 혐오, 멈춰!
지난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네이버 웹툰 ‘헬퍼2: 킬베로스’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성 착취, 불법 촬영, 교내 성폭행 등여성 혐오 요소가 다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청불’이라는 가림막 뒤에 숨어 여성을 철저한 도구로만 사용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네이버 웹툰과 작가는 공식 사과문을 내고 연재를 일시 중단했다. 성인 웹툰은 아니지만, 기안84의 ‘복학왕’도 주인공이 성 상납으로 취직에 성공한다는 에피소드를 업로드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여성들은 더 이상 여성 혐오웹툰을 참지 않는다. 실제로 독자들은 작품을 선택할 때 강압적인 남성 캐릭터나 비윤리적인 성행위가 등장하는 것은 피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완벽하게 묘사되는 여성 캐릭터 또한 외모지상주의를 심화시킨다는 주장도 나왔다.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요즘, 비단 웹툰만이 아니라 콘텐츠 시장 전반이 혐오 표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장착해야 한다.
서사
서사가 있는가. 여성 타깃 19금 웹툰이 남성향 작품과 가장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번 화에 19금 신이 나오는가’ ‘농도는 얼마나 짙은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독자들의 관심사 중 하나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로맨스에서 독자를 더 몰입하게 하려면 인물들 간의 서사, 감정선, 관계성을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끔은 두 사람이 닿을 듯하다가도 멀어지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키포인트. 이들이 어떻게 몸을 섞게 됐는지에 대한 설득이 없으면 공감을 얻지 못한다. 마침내 거사를 치르게 되더라도 등 근육, 두 사람이 맞잡은 손, 허리 라인등을 디테일하게 표현해내는 연출이 보는 이들의 흥분도를 높인다. 때로는 직접적인 정사 장면 없이도 보는 이를 긴장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성향 세계에선 그저 자극적인 것 말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 끗의 서사가 필요하다.
참고서적 | <성인 웹툰> 류유희, 커뮤니케이션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