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자 문화부 장관을 지낸 고(故) 이어령 교수는 생전 인간의 본질과 노년의 품격에 대해 수많은 날카로운 통찰을 남겼다.
그는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모든 것을 타인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미련한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곤 했다.
죽는 순간까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온전히 감추어 두어야만, 비로소 세속의 풍파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며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치명적인 실체를 소개한다.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진 재산의 정확한 액수와 통장 잔고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인간의 얄팍한 탐욕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내 주머니가 완전히 비어있음을 알면 은연중에 무시당하고, 반대로 가득 차 있음을 알면 기대어 빼앗아가려는 옹졸한 본성이 작동하게 된다.
내 노후를 지탱할 마지막 경제적 능력을 묵묵히 베일에 싸아둘 때야말로 주변 사람들의 쓸데없는 기대감을 차단하고 진정한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이다.

과거의 화려했던 명함이나 무용담을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행동은 현재의 내 삶이 텅 비어있음을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흘러간 옛이야기에 집착하며 대접받기를 원하는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독한 피로감을 안기고 나 스스로를 과거에 갇힌 노인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지나간 업적을 내 손으로 부풀려 과시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모습이 진짜 어른다운 아우라를 풍긴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내 아픔과 가정사를 밖에서 앵무새처럼 쏟아내며 동정을 구하려는 언행은 내 약점을 남의 입방아에 올리는 미련한 짓이다.
처음에는 위로해 주던 지인들도 만날 때마다 우울한 징징거림을 쏟아내는 모습에 지쳐 결국 내 곁을 슬슬 떠나가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내 슬픔과 상처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견뎌내며 세련된 침묵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만이 노년의 영혼을 가장 단단하고 풍요롭게 가꿀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던 기억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왔는데라며 생색을 내거나 보답을 바라는 순간 그 선행은 추악한 빚 독촉으로 변질된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과 불평불만을 낳고 잘 쌓아온 인간관계를 단숨에 파탄 내는 부메랑이 되기 쉽다.
내가 베푼 호의는 물 흐르듯 잊어버리고 오직 내가 받은 고마움만 기억하는 것이 내 영혼을 가장 가볍고 자유롭게 만드는 비결이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의 은밀한 가정사나 치부를 대화의 안줏거리로 삼아 다른 이에게 퍼 나르는 언행은 내 인격의 얕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추태다.
남의 비밀을 가볍게 뱉어내며 순간의 흥미를 채우려 들수록 정작 내 신뢰도만 바닥으로 떨어지고 뜻하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다.
세상의 온갖 소음과 타인의 허물을 내 가슴속에 묵묵히 매장할 줄 아는 완벽한 입단속이야말로 세월이 흐를수록 빛나는 어른의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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