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7초' 뒤 주문, 딱딱 맞아 떨어진 연락... 여전히 '김건희'를 가리키는 단서들
①권오수 부탁받고도 속았다 할 수 있나
②주포에 수익 약속, 손실보상금 정황은
③'BP 패밀리' 등 친분 의심케 하는 진술
검찰이 17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지만, 김 여사를 둘러싼 모든 의혹이 깨끗하게 종식된 것은 아니다. 작전 세력으로부터 매도 지시가 있은 지 7초 만에 김 여사 계좌에서 거래가 이뤄진 점, 다른 전주들에 비해 유독 김 여사 계좌에서 통정거래(담합해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가 많이 이뤄졌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수사가 부실했다는 논란을 완벽하게 떨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남은 의혹들은 야당이 추진 중인 김 여사 관련 특별검사법에서도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것들이다.
김 여사 직접 운용 계좌의 수상한 움직임
1·2심을 거쳐 검찰과 법원이 공통적으로 '주가조작 연루' 계좌라고 판단한 김 여사 계좌(대신증권·미래에셋·DS증권)는 대부분 통정거래에 쓰였다. 구체적으로 대신증권 통정거래 13회, 미래에셋 통정거래 35회, DS증권 현실거래(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한 매매) 1회가 주가조작 행위에 포함됐다. 48차례 통정거래는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통정거래 중 절반에 이르는 수치다. 단순히 김 여사 계좌가 이용당했다고 보기에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대신증권 계좌는 증권사 직원 등에 맡긴 '일임 계좌'가 아니라 김 여사가 직접 운용한 계좌다. 2010년 11월 1일 2차 주포(총괄기획자) 김모씨가 김 여사 계좌 관리자로 지목된 민모씨에게 매도 지시를 내린 지 7초 만에, 김 여사 계좌에서 지시대로 주문이 이뤄진 기록도 있다. 누군가 김 여사에게 통정매매를 위한 주문을 지시 혹은 부탁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도 주포 김씨로부터 연락을 받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김 여사에게 부탁해 이뤄진 거래로 본다.
검찰의 의심은 딱 여기에서 그쳤다. '김 여사는 권오수의 말을 믿고 따랐다'는 주범들 진술을 감안하면, 작전이 진행 중이었다는 의심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취지다. 다른 방조범 손모씨 등이 고가매수 등 이상매매 주문을 하면서 주가조작에 적극 가담한 반면, 김 여사 계좌를 통해 이뤄진 통정매매는 매도 가격이 시가 수준인 등 오히려 주가조작 연루 여부를 의심하기 힘든 구조였다는 점도 언급했다. 권 전 회장은 대부분의 의혹을 잡아떼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의 부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추론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7초 매매' 나흘 전 이뤄진 비슷한 통정매매에서도 민씨가 김씨에게 "지금 처리 하시고 전화 주실 듯"이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3분 뒤 김 여사 계좌에서 매도 주문이 제출된다. 당시 김 여사는 증권사 직원과 통화에서 "누가 (매도 건을) 가져간다" "토러스(김씨 근무 증권사)에서 가져간다" 같은 말에 "아, 체결됐죠" 등 답변으로 태연하게 반응한다. 주가조작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통정매매 수사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시점, 연락 등 정황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수사팀 역시 이런 정황들 때문에 김 여사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여사는 '(권 전 회장 등과) 통화한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만 진술했다고 한다.
주포에 수익 약속? 손실보상금 송금?
김 여사가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은 더 있다. 1차 주포 이모씨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씨를 중심으로 한 주가조작은 2차 주포 김씨 범행과 구분돼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판단되긴 했지만, 김 여사 계좌는 1·2차 주가조작 양쪽에 두루 쓰이고 있어서 1차 사건 당시 정황들이 김 여사의 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씨가 검찰 수사 초기 '권 전 회장과 김 여사가 있는 자리에서 권 전 회장으로부터 김 여사 계좌를 맡아주면 수익 30~40%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대목이 있다. 김 여사도 이 내용을 알았다면 '통상적인 투자 일임의 대가로는 지나치게 큰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수 있다. 수사 초반 검찰 수사팀은 이씨가 김 여사에게 4,700만 원을 입금한 정황을 포착, '손실보상금 아니냐'는 의심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주포 이씨가 법정에선 '김 여사가 없는 자리에서 수익 30~40%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을 바꿨고 이후 다시 조사했을 때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권 전 회장이 주변에 이씨에게 계좌를 일임하라고 하면서 이씨 능력을 칭찬하고 이씨 등에겐 수익 약속을 하곤 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김 여사가 해당 약속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실보상금 의혹에 대해선 이씨 등이 손실보상금이 아니라고 진술한 점, 주식 손해 금액 산정 방법이 모호하고 사전 약정 정황도 없는 점 등을 강조했다. 다만 이 역시 이씨가 정확한 명목을 진술한 것은 아니어서 의혹이 완전히 규명됐다고 보긴 어렵다.
"김 여사=패밀리" 진술도 있었는데
검찰은 김 여사 계좌에서 주가조작 연루가 의심되는 거래가 있었던 시기 김 여사가 권 전 회장과 1차 주포 이씨 외엔 2차 주포 김씨, 블랙펄인베스트먼트(2차 주가조작 컨트롤타워) 등과 연락하지 않았다는 점도 불기소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김씨가 검찰에서 김 여사가 블랙펄인베스트먼트 관계자 등과 함께 'BP 패밀리'라고 진술한 점 등에 대해 수사를 통해 명확한 의미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검찰은 주범들의 검찰 진술, 이씨와 김씨가 수사 진행 당시 "걔(김 여사)는 아는 게 없다" "권오수가 건희 엄마 필요하니까 잘 해주는 척하면서 돈 먹여줄 것처럼 한 것" 등 대화를 주고받은 점 등을 근거로 김 여사가 '이용된 계좌주'에 불과하다고 본다. 다만 이들이 당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의도를 갖고 이 같은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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