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세상이 멸망할 거예요"...부활한 '지옥2', 더 흥미롭고 깊어진 세계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1은 고지와 시연으로 불타서 뼈의 흔적만 남았던 박정자(김신록)가 다시 부활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새로 공개된 <지옥2>를 보면 그것이 시즌2에 대한 예고편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지옥2>는 바로 이 박정자라는 부활자를 차지하려는 새진리회와 화살촉 그리고 소도의 치열한 대결을 그리고 있다.
<지옥>이 시즌1에서부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건 그 세계관의 독특함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괴이한 존재가 나타나 죽어 지옥에 갈 날을 고지하고, 그 날이 되면 사자들이 나타나 고지받은 자를 무차별 폭행한 후 태워 재만 남기는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진다. 그건 말 그대로 아무런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들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새진리회 같은 사이비 종교집단을 탄생시킨다.
제 1대 정진수(김성철) 의장은 이 이유 없는 현상에 '고지'니 '시연'이니 하는 설명을 덧붙여 마치 거기에 신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을 미혹 속에 빠뜨린다. 그는 이미 20년 전에 고지를 받은 자로 박정자가 시연당하는 장면을 생중계해 그 공포를 통해 새진리회의 사세를 넓혀간다. 한편 대혼란 속에서 화살촉 같은 인터넷 방송을 기반으로 무차별 테러를 감행하는 광신도 집단이 세력을 키워가고, 이들에 맞서는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이 이끄는 소도라는 조직이 탄생한다.
즉 <지옥>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현상에 저마다 의미를 부여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자들이 그려내는 아귀다툼의 지옥을 보여준다. 시즌2가 더욱 흥미로워지는 건 시즌1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정부의 개입이 이수경(문소리) 정무수석의 등장으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정부 역시 진실이나 정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지나치게 힘을 키워 혼란을 주는 화살촉을 견제하기 위해 새진리회 2대 의장과 결탁하고 부활자인 박정자를 이용해 세력 간의 균형을 맞추려 한다. 천재지변 같은 현상의 등장으로 이를 이용해 커진 세력들이 서로를 견제하게 함으로써 그 힘을 분산시켜 정부가 콘트롤 타워를 잡으려 하는 것이다.
지옥 같은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나 정의, 진리 같은 것들은 이들 모두의 관심 밖에서 소외된다. 그것은 죽었다 되살아난 부활자들도 마찬가지다. 8년만에 부활한 정진수 역시 소도 조직에 붙잡혔다가 화살촉 집단을 찾아가는데 그 목적은 오로지 또 다른 부활자인 박정자를 만나기 위함이다. 화살촉 집단들은 그가 박정자를 만나는 것이 대단한 이유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단지 거울 속으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공포의 사자들이 그에게도 보이는가를 묻고 싶을 뿐이다.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지옥> 시즌1이 그 독특한 종말적 세계관 속에서 사이비 종교와 화살촉, 소도 같은 서로 다른 입장과 목적을 가진 집단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시즌2는 그들이 치열하게 맞붙는 권력 투쟁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아무런 인간적 의미를 갖지 않는 천재지변처럼 다가오는 우리네 삶과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와 가치부여를 해야하는가를 질문한다. 극단적인 아포칼립스로 그려졌지만, 사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란 그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누구에게나 맞닥뜨리는 어떤 것이 아닌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끝끝내 박정자를 아이들에게 데려다주는 자신의 소신이자 역할을 마무리하는 민혜진에게 박정자가 하는 말은 인상적이다. "곧.. 세상이 멸망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단순한 대사지만 <지옥>이 그 치열한 과정들을 거쳐 끝내 하려는 메시지가 거기 담겨 있다.
시즌1의 마지막이 부활하는 박정자를 통해 시즌2를 예고했다면, 시즌2의 마지막 역시 부모의 희생으로 시연을 피해 살아남았다 여겨졌던 아이가 사실은 부활자라는 걸 밝힘으로써 다음 시즌을 예고한다. 부활이라는 소재로 시즌2가 보다 확장된 '지옥'의 세계를 보여준 것처럼 시즌3도 더 흥미롭고 깊어진 세계관으로 또 돌아올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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