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g Ep 11. 노원구 ‘네모네’ 편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생 함께할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계획하는 일은 아마도 가장 뜻 깊고 보람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공간을 계획하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작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집’이라고 표현하는 공간은 매물, 물건, 재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건축가는 ‘작품’이라고 부른다. 천편일률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긴 시간과 수많은 고민을 담아 땅 위에 정성스럽게 앉히는 과정은 마치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과 같기 때문이다.
진행 이화정 기자 | 글 김선용(레이어드 건축사사무소)
공동주택은 고도로 도시화된 도심지 속의 대표적인 주거양식이다. 하지만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은 각각 장단점이 있기에 사람마다 선호하는 주거 양식이 다르다. 최근 신축 아파트 미분양, 고금리와 대출 규제로 실패 없는 부동산 투자로 여겨졌던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현상까지 생겨나자 단독주택을 고민하는 예비 건축주도 많아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근교 공동주택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서울 구도심 내 필지를 구매한 뒤 단독주택으로의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부부 건축주께서 찾아오셨다. 층간소음, 주차문제로 고민하다 공동주택을 벗어나 구도심 내에 가족만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계획하게 되었고, 1층은 상가로 임대수익을, 2층부터는 단독주택을 의뢰했다. 노원구의 네모네 프로젝트는 ‘도심지의 작은 땅 안에 건축주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다양한 공간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서부터 시작됐다.
상업공간과 주거공간 구분
이면도로를 접하고 있는 ‘네모네’의 필지는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해서라도 주거공간은 2층부터 배치하는 편이 유리했다. 유동 인구가 많다는 도시적 맥락을 고려해 1층 도로면은 자연스럽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상업공간을 배치하고, 옆쪽으로는 부지 내 주차장을, 뒤쪽으로는 주거공간 입구인 현관을 배치했다.
주차장 상부는 용적률을 채우기 위해 공간이 필요했지만, 땅이 여유롭지 못하다 보니 기둥을 세우는 방식의 필로티 주차장이 아닌 캔틸레버 방식으로 구조를 해결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주차를 하고 비를 맞지 않고도 현관으로 들어올 수 있고, 도로 쪽에서 주택 출입구가 보이지 않아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있었다.
2층을 공용공간으로
대부분 상가주택의 경우 1층에는 공용현관 그리고 주택 출입구까지의 계단은 공용현관으로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동선이지만 네모네는 단일세대로 구성이 되기 때문에 1층 공용현관을 없애고 1층에 주택 현관문을 달았다. 주택 현관문을 열면 바로 신발을 벗어 수납할 수 있는 현관과 신발 수납장이 있고, 신발을 벗고 2층으로 올라오는 동선으로 계획했다. 덕분에 계단 관리나 청소가 더 용이하고, 현관이 1층에 있기 때문에 2층의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서면 바로 거실과 주방을 마주하게 된다. 이웃집과의 관계를 고려한 남향 창 덕분에 연결된 거실과 주방 공간에 빛이 가득 차 밝은 공간이 연출된다. 주방은 11자 아일랜드+4인 식탁 구조로 동선을 최대한 편리하면서도 쾌적한 가사동선으로 계획했다. 11자 아일랜드의 한쪽 끝은 창을 배치해 환기와 채광을 해결했고, 반대편에 배치한 다용도실은 수납과 보조주방의 기능을 담당한다.
가족, 그리고 때론 초대된 손님들이 함께 모이는 2층 공간은 벽을 최대한 없애 답답함을 없애고 사람이 많이 모이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되었다.
건축주 요구 반영해 사적 공간으로 구성한 3층
3층에 대한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방 2개와 드레스룸이 있는 사적인 공간이었다. 수직 동선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프라이빗한 공간이 한눈에 보이지 않도록 가벽을 세웠고, 그 가벽에는 건축주가 여행을 다니며 수집한 기념품을 수집하는 장식장을 만들었다. 안방과 자녀방은 밝고 쾌적하도록 채광을 고려해 남쪽으로 배치했다.
중간의 드레스룸은 순환동선으로 계획해 자칫 좁게 느껴질 수 있는 면적상의 한계를 극복했다. 또한 드레스룸과 연결되는 세탁실이 있어 빨래를 2층의 다용도실까지 가져가지 않아도 되도록 이동거리를 줄였다. 자칫 죽은 공간이 될 수 있는 복도 끝에는 세면대를 배치해 화장실을 좀 더 넓게 계획했다. 건식 세면대 덕분에 화장실을 이용 중이어도 세면대를 사용할 수 있고, 수납공간도 확보돼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아지트가 된 4층 취미공간
1층 공간을 주차장과 임대수익에 양보하는 대신, 4층에는 가족 전용 옥상마당을 계획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윈도우시트, 부족한 수납을 해결하는 수납장,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미니 홈바와 간이주방,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서재 등 4층의 다양한 취미공간은 바로 옥상마당과 연결된다. 넓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 않은 이 옥상마당 역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4층 취미실에 채광을 극대화하면서도 간이주방과 연결된 창문을 통해 도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루프탑의 홈바는 공동주택을 벗어나 단독주택을 선택한 네모네 건축주의 아지트이다.
창호 라인 정리로 일조권 제약 극복
대부분 도심지의 경우 일조권의 영향을 받는다. 일조권의 영향을 받는 영역이 이제 10m 이상으로 약 1m가량 완화되었지만 수직으로 올라가야 하는 협소주택은 일조권을 고려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노원구 네모네 역시 3층 상부부터 적용받는 일조권으로 외부에 사선 디자인이 적용됐다. 시선이 직접 맞닿는 1층 부분은 롱브릭 타일로 안정감을 주고, 2층부터 4층까지는 화이트 스타코로 마감해 산뜻해 보이도록 계획했다. 디자인 요소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대신 창호의 비례감을 활용했다. 일조권이라는 법규적 제약과 이웃집과의 관계를 고려해 정갈하게 정리된 창호 라인들 덕분에 네모네는 도심 한복판에 쌓아 올린 건축주만의 개성이 담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주거공간의 형태가 다양화되는 만큼 점점 개성도 강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거에 대한 인식이 단지 부동산, 투자의 개념에서 선진국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 사람들과 함께하는 문화의 개념으로 점점 바뀌어 가면서 주거공간에 대한 좀 더 밀도 있는 고민과 다양한 형태의 주거공간의 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가족만의 꿈을 위한 건축주의 과감한 결단과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