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 KBS인의 사명이라면 끝까지 가겠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주최 '구하자 KBS' 시민 문화제에 700여 명 시민 모여
"오욕의 시간에 대한 책임, 대가를 반드시 낙하산 박민 사장과 경영진에 물을 것"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KBS 구성원들이 '정권 낙하산' 체제에 순응하지 않겠다며 집단행동에 나선 가운데 700여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공영방송을 지키자며 모였다.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90여개 언론·시민단체 연대체인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주최로 '힘내라 공영방송 구하자 KBS'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시민 문화제 사회는 최현호 KBS 부산방송총국 아나운서와 KBS '시사직격' 진행자였던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가 맡았다. 문화제에선 지난 1년 KBS에서 벌어진 일들을 담은 영상에 이어 취재·제작 현장을 떠나 있는 KBS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16년차 기자로 KBS '뉴스9' 주말 앵커였던, 지금은 시청자센터 소속인 정연욱 기자는 “업계 선수들끼리 봤을 때 저널리즘적으로 일관성도, 원칙도 없고, 부끄러운 큐시트가 매일 작성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 기자는 지난 1년 KBS가 '땡윤뉴스'라 비판 받은 사례들을 언급한 뒤, 최근 KBS '뉴스9'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특집뉴스 수준으로 보도를 하면서도 이 작가가 '박근혜 블랙리스트'였다는 사실은 배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KBS가 어떤 뉴스인가. '전두환 씨'라고 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내린 뉴스”라면서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라는 5·18 때 숨진 시민을 다룬 소설이다. 과연 KBS가 이런 소설을 높이 평가할 자격이 있나”라고 했다.
이어서 정 기자는 “우리가 왜 공영방송 언론 종사자인지, 진짜 공영방송 위기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오늘 계기로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더 큰소리로 싸우면 좋겠다”고 했다.
시사교양PD인 조애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사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방송을 폐지하고, 헌법 4·19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독재자의 찬양 다큐를 틀고, 광복절에 기미가요를 내보내고 이제는 기계적 균형조차 내팽개치는 이런 곳은 결코 공영방송이 아니라고 끊임 없이 지적하고, 이 모든 국민에 대한 배신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며 “이 오욕의 시간에 대한 책임, 대가를 반드시 낙하산 박민 사장과 경영진에게 물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KBS 상황을 증언한 조 부본부장은 쉰 목소리로 눈물을 삼키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방송을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이 치열한 미디어 경쟁의 시대에 싸우기만 하다가 이 산업에서 뒤처질까봐 여러분을 만족시킬 수 없는 방송을 만들까봐 가끔씩 너무나 두렵다”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하는 것이 KBS인의 사명이라면, 국민께서 모아주신 2500원으로 방송 만드는 사람들이 져야 할 책임이라면, 낙숫물로 돌을 뚫는 길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조애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수석부본부장(시사교양PD)의 발언 영상. 출처=전국비상시국회의
지역에서 근무해온 박상현 KBS본부장은 “용산(대통령실)이 수신료를 망가뜨려버렸다”고 했다. 그는 “농촌 지역에 KBS 차가 가면 시골 어르신들이 취재진을 붙잡고 취재와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길 하신다. 저희는 그 얘기를 들어야 한다”며 “말씀하실 권리가 있고 저희는 그분들의 얘기를 들을 의무가 있다. 그게 수신료의 힘”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부족했지만 더 가열차게 싸우겠다.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돌리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저희 싸움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날 문화제에는 4·16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대학생 연합 평화나비네트워크, 군인권센터, 쿠팡 택배노동자 등도 참석해 '공영방송 KBS'의 자격을 강조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 오영교씨는 “(KBS가)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집 다큐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중단시켰다고 한다. 작년 이맘때 이태원 참사 1주기 특집 방송을 했던 프로그램이었다”며 “재난방송 주관방송사가 재난, 참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애를 써야 마땅한데 도리어 기억을 지우고 외면한다니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해병대 대위 출신인 방혜린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은 “어떤 언론사는 빨갱이고 어떤 언론사는 조작 방송이고 내 말 잘 듣는 언론사만이 정론이라며 핏대 세우면 진실을 가릴 수 있을 거란 착각에서 제발 벗어나라”며 “진실을 알리는 것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KBS와 같은 시기 위기를 겪어온 방송사 구성원들도 무대에 올랐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YTN에는 '박살핑'이 있다. 돌발영상, 권력 비판 보도를 박살낸, YTN에 기생하는 이상한 괴물”이라며 “KBS에 박민이 있다면 YTN은 김백 사장이 있다”고 했다. 인기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에 각 특징별 캐릭터가 나오는 것에 빗댄 것이다. 이어 “티니핑 캐릭터 중에는 빛을 쏴서 적을 몰살시키는 하츄핑도 있다고 한다. 김백과 박민이 언론 노동자를 박살내려 하지만 지치지 않고 싸워서 하츄핑처럼 물리치겠다”고 했다.
이호찬 MBC본부장은 “KBS와 MBC가 공영성 경쟁을 하고 현장에선 누가 권력 감시 더 잘하나 취재 경쟁하고, 시청자 사랑을 누가 더 잘 받는가 제작 경쟁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했다. 송지연 TBS지부장은 “권력이 방송사를 없앨 수 있다는 천박한 인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너무나 절망스럽다. 그래도 버티겠다”며 “신뢰받는 방송 1위 KBS가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날 “기미가요 KBS 일본으로 가라, 땡윤방송 KBS 수신료는 용산에서 받아라, KBS 시청자 게시판에 넘쳐나던 욕설, 시민의 터져나오는 분노,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오늘 KBS 노동자들은 쟁의를 결의하고 나의 노동, 방송이 나의 양심과 시민의권리를 더 이상 배반하지 않게 하겠다 들고 일어섰다”고 했다. 이어 “시민께서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크게, 바른 방향으로 승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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