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완치 ‘새 챕터’ 쓸 현장을” [당신의 병명은 마약 중독·(3-3)]
진료 난이도 최고 수준
모두가 기피하는 마약 치료 현장
개인 사명감에 기대면 희망 없어
마약중독 환자 1명은 성격장애 10명과 같다
“조현병 환자 10명을 치료하는 일이 알코올중독 환자 1명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고 봐요. 알코올중독 환자 10명보다 어려운 게 성격장애 환자 1명을 돌보는 거구요. 그런데 성격장애 10명을 치료하는 난이도가 마약중독 환자 1명을 치료하는 것과 같아요.”
정신의학과 의사가 진단하는 병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병을 꼽으라면 ‘마약중독’이다.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을 비교하며 나온 말인데, 그만큼 마약중독 치료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마약중독자는 금단 증상과 뇌손상으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 공격적인 성향 등의 특성을 지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치료과정에서 의사가 폭행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마약중독 자체가 범죄인 만큼 법적인 문제가 얽혀있어 일단 치료에 들어가기까지 복잡한 과정이 있어 마약치료는 자연스럽게 의료진 사이에서 기피하는 진료과목이 됐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의료계가 잠정 추정하는 국내 마약중독 전문의는 5명 안팎이다.
치료 전문의 없거나 치료 거부하는 병원들
얼마나 진료가 어려울까. 취재진이 무작위로 연락한 ‘정부 지정 마약중독 치료기관(5곳)’ 모두 마약중독 치료 전문의가 없었다. 이중 2곳은 마약중독 치료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글쎄요. 저희가 정부 지정 병원은 맞는데… 마약 환자는 지금 잘 안받고 있거든요. 오셔서 상담받는 것까지는 상관이 없는데, 의사 선생님마다 진료 요일이 달라서요. 그러다보니까 사실상 일괄적으로 (치료가) 안된다고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에요. 선생님마다 성향이 다르다보니…”
“의사선생님이 마약 치료를 안한지 5~6년 됐어요. xx병원으로 가보시는건 어떠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음성은 ‘마약’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외래 치료도 어려운지 재차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난처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입원 치료는 불가하다고 먼저 선을 긋는 곳도 있었다. 외래 위주로 치료한다는 한 병원은 “진료 과목이 마약이어서 그렇다”며 다른 치료기관을 안내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치료 자체를 꺼리니, 치료는 특정 기관에 몰린다. 지난해 마약중독자 치료 86%를 인천 참사랑병원, 경남 국립부곡병원에서 담당했다.
지원금 있지만 중독자 수에 비해 현저히 부족
정부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대책도 내놨다. 현재 시행 중인 마약류 전담 치료기관 지원 제도는 크게 두가지다. 이마저도 마약중독 치료 기관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심각하게 제기되고서야 올해부터 시작됐다.
환경개선금 지원 사업은 기관 내 소방·안전 조치 이행 비용으로, 5억원(전액 국비)을 선정된 1개소에 지급한다. 전국 8개소에 1억원(전액 국비) 운영비를 지급하는 권역치료보호기관 지원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 지원금은 치료기관 운영비로 사용된다.
이정도 대책으로 과연 충분할까. 현장에선 현저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마약중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확실한 보상체계 마련으로 의료진 유입해야
치료할 수 있는 병원 자체가 없고, 의료진 등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실마리는 있을까. 우리가 만난 전문가들은 ‘개인의 사명감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의 사명감에 기댄 시스템은 언젠가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특히 폭증하는 마약중독은 이제 국가가 신경써야 하는 필수 중증 질환 중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 치료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확실한 ‘당근’이 필요하다는 게 의료계의 목소리다.
대상은 개인뿐 아니라 의료 행위 전반에 해당한다. 마약중독자 재활치료는 거대한 의료 공동체가 합심하는 분야다. 전문의, 간호사, 임상심리사, 회복자 상담가까지. 이들 모두에게 어렵지만 꼭 필요한 병을 치료하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37년간 마약중독 치료 분야에 몸 담아온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은 보상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전적 보상이나 개인 성취감 필요
환자 연구·진료에 더해질 동력 될 것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
“결국 의사가 오게 하려면 보상체계가 있어야하거든요. 환자 연구, 진료 환자와 관련한 여러가지를 할 수 있게 하려면 금전적인 보상이나 개인 성취감이 필요하죠. 그런거 없이 월급만 주고 환자만 보라고 하면 누가 하나요. 의사가 안오면 오게 만들어야합니다. 경쟁 체계를 만들어서 서로 오게 만들어야 하고 경쟁을 붙여 우수한 사람을 뽑아 일을 시켜야 합니다.”
의대생 전공 선택 때 참관·파견 도입
마약중독 치료 막연한 편견 깨는 것도 방법
(김재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마약중독 치료 분야는 특히 전문의 수급이 절실하다. 치료의 난이도가 높은 만큼, 근속연수가 유독 짧은 분야이기도 하다. 김재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마약중독 치료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의대생이 전공 선택 실습 때 참관해본 곳에 지원을 많이 하거든요. 자라나는 정신과 의사들이 수련 과정에서 마약 중독 관련 접해볼 기회가 전혀 없어서, 막연한 생각을 가지는 것도 전문의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참관이나 파견 등 여러 방식 통해서, 환자들이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가 극적으로 회복해서 돌아오는 모습을 본다면 의학 연구자로서의 학문에 대한 관심,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마약중독 치료 분야에 들어오는 방법이 될겁니다.”
/이시은·공지영·이영지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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