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문 변호사의 〈굿파트너〉 도전기
낮에는 의뢰인과 상담을 하거나 재판에 출석하고 퇴근해서는 육아와 집안일을 했다. 아이들을 재운 뒤 서너 시간 대본을 썼다. 지난 6년, 최유나 변호사의 일과가 반복됐다. 그렇게 나온 대본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SBS 〈굿파트너〉가 최고 시청률 17.7%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17년 차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과 원치 않던 이혼팀에 배정된 신입 변호사 한유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16부작 드라마가 종영한 직후 서울 양재동 법무법인 태성에서 〈굿파트너〉 극본을 쓴 최 변호사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드라마 속 대정로펌 변호사들의 캐릭터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극 중 인물들이 어딘지 그와 닮아 있었다.
그에게는 지난 두 달이 시험기간 같았다. 매회 시청률을 확인하며 마음을 졸였다. 촬영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마저 대본을 쓰느라 막판에 특히 힘들었다. 드라마 작가 데뷔와 동시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이유가 있다. “탈고하고 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지 이런 기분이 들 거라고는 예측을 못했다. 종영 후 이틀이 지난 지금 헛헛한 마음이 든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캐릭터들과 친한 친구로 지냈던 것 같다.”
2018년 여름, 최 변호사는 ‘메리지 레드’라는 제목의 웹툰을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혼소송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그림작가와 협업해 만들었다. 그걸 본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가 최 변호사에게 대본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이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혼을 간접 경험하다 보니 나라면 어떨까, 역지사지 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의뢰인들도 자주 하는 말이다. ‘변호사님도 이혼은 안 해보셨잖아요.’ 이혼 사건을 많이 해본 사람이니까 더 담담할까 아니면 의뢰인과 똑같이 무너질까, 상상하며 써 내려갔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결심한 차은경의 서사를 중심으로 매 회 다양한 이혼 사건이 펼쳐진다.
이혼 전문 변호사라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반응이 좋았던 2회의 에피소드도 그중 하나다. 외도를 한 남편이 이혼을 앞두고 양육권을 넘겨달라며 대신 아내에게 재산분할 액수로 20억원을 제시한다.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인 아내를 보며 신입 변호사 한유리(남지현)는 돈과 자녀를 맞바꾸었다고 분개하지만 차은경(장나라)은 양육권을 넘긴다고 부모가 되길 포기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면접교섭권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던 아내는 바쁜 전남편 대신 아이 보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배우자의 배신을 마주했을 때 사과를 받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 9회도 반응이 좋았다. ‘비록 반쪽짜리 사과일지라도 절박한 누군가에게는 생명줄이 된다’는 메시지를 통해 생각처럼 딱 떨어지기 어려운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드라마에서 이혼을 그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지만 여전히 이혼을 ‘인생의 실패’로 여기는 시선이 많다. 최 변호사는 이혼을 인생의 과정 중 하나로, 홀로서기의 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드라마의 줄기가 되는 차은경 변호사의 이혼이 일찌감치 마무리된 이유이기도 하다. 9회에서 주인공의 주요 서사가 마무리되어 좀 이르다는 평가도 있었다. “더 미뤘더라면 시청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외도한 남편 김지상에게 ‘사이다’를 날린다거나 복수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혼 이후에 대해서도 무게감 있게 다루고 싶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회복, 면접 교섭, 차은경의 독립 등을 현실적으로 그리려고 했다.”
양육권 다툼을 주요하게 다룬 이유
변호사에게는 비밀유지의무 조항이 있어서 의뢰인의 사연을 노출할 수 없다. 대본을 쓰며 제약을 받지는 않았을까? 최 변호사는 사건이 특정될까 봐 걱정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인스타툰을 수백 회 연재하는 동안에도 문제된 적이 없었다. “사건을 그대로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에는 오히려 흔하게 일어나는 대표적인 케이스를 갖다 썼다.” 그보다는 작가와 변호사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었다.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인 정보를 줘야 한다는 변호사로서의 사명감과 ‘이렇게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하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했다. 변호사가 직접 썼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판단해 ‘현실’을 택했다. 재미가 덜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실제 이혼 사건은 탄산이 약간 빠진 사이다, 덜 뻑뻑한 고구마에 가깝다.
차은경의 사례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게 양육권 다툼이다. 자녀가 있을 경우 당사자는 물론 법원도 아이의 행복을 가장 우선에 두고 사건을 진행한다. 차은경의 자녀 재희도 자신과 친밀했던 아빠가 엄마의 비서와 외도한 걸 알고 상처받아 아빠와의 만남을 거부한다. 차은경은 아이가 아빠를 잃게 할 수 없다며 방법을 찾는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지만 작가로서 꼭 다루고 싶은 내용이었다 “정말 조율하기 어려운 문제다. 외도한 아빠를 안 보고 손절하면 훨씬 시원하겠지만 좀 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차은경이 한유리에게 ‘인간 한유리랑 변호사 한유리를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말하듯이 부모 차은경과 피해자 차은경을 좀 분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유책 배우자라고 해도 아이 입장에서는 애착 관계가 형성된 사람이다. 엄마는 그걸 알아봐주고 조율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피해자라고 해도 엄마는 성인이고 아이는 미성년자니까. 사실 그 얘기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을 다룬 12~13회를 쓰는 게 가장 어려웠다. 실제 가정폭력 피해자를 매일 보다시피 하는데 이 사람들이 죽음에까지 내몰리면 어떨까 상상하며 쓰는 게 괴로웠다. 앞의 플롯과도 많이 달라 아예 새로운 드라마를 쓰는 느낌이었다.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반응을 보며 놀랐다. 하루에 이혼 상담을 4~5개 하면 한두 건이 외도와 관련되어 있고 한 건 정도가 폭행, 나머지는 성격 차이를 이혼 사유로 든다. 드라마에 배우자를 물고문 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실제로도 꽤 접한 사례다. 해당 회차 대본을 쓸 때 다른 것 4~5개 쓰는 것만큼 품이 들었다. 더 이상 드라마를 못 쓰겠다고 생각했다.
본업과 병행한 지난 6년, 계속할 수 있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고 작가로서 꿈도 있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10배 이상 힘들었다. 작가 뒤에 수백 명이 있었다. “일단 계약을 했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거였다. 드라마를 만들 때 협업하는 분들이 200명 넘더라. 중간에 정말 힘들고, 각이 안 나온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만 잘하면 된다. 피해 주지 말자’ 이런 마음으로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권유로 로스쿨에 진학한 최유나 변호사는 20대부터 이혼 변호사로 활동하며 이혼 소송 수천 건을 진행했다. 처음 변호사가 된 뒤 100군데 정도 입사 원서를 냈는데 떨어졌다. 젊은 여성 변호사를 선호하지 않았다. 어느 면접에서 누군가 그에게 이혼 사건도 맡을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만 해도 이혼 사건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업무 범위를 정하기가 다른 분야에 비해 까다로운 편이다. 변호사가 하는 일, 변호사가 하지 않는 일 이렇게 구분을 하면 의뢰인들이 금세 서운해했다. 재산분할도 간단히 보자면 액수만 제시하면 끝날 일이지만 당사자들끼리 대화를 안 하는 상황에서 안마의자는 누가 가져가고 정수기 할부는 누가 낼지 조율하는 일도 변호사의 역할이었다. 조정할 게 끝도 없었다. 소송으로 갈 경우 대체로 1년이 넘어가고 감정이 많이 소모된다.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가 좋기도 쉽지 않다.
“사무실 월세 때문에 소송 부추기지 말자”
이혼 변호사가 된 지 13년, 그때와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정을 깨는 사람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있었다면 지금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혼 자체도 늘었다. 드라마 방영 이후 로스쿨 학생이나 신입 변호사가 이혼 사건을 해보고 싶다며 최 변호사 SNS로 메시지를 보내온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변호사 일을 하는 내내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왔다.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적성에 잘 맞는 일인 것 같다. 특히 이혼 전문 변호사로 등록했을 때 기뻤다. 20대에 변호사가 된 뒤 계속해서 이 일로 먹고살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는데 비로소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앞으로의 10년, 20년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이혼 변호사는 이혼을 막기도, 돕기도 하는 자리다. 자존심 때문에 이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누군가는 사과를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끝까지 간다. 대화 부족이 원인이기 때문에 예방할 수 있는 케이스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은 소송을 부추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을 못 벌더라도 사무실 월세 때문에 이혼을 부추기지는 말자고 일찍부터 다짐했다. 변호사는 허가받은 도둑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내가 해보니까 맞더라. 내가 한편이 되어서 ‘상대를 어떻게 해봅시다’ 이렇게 말하면 감정이 격해 있는 상태라 수긍한다. 그렇게 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럴 경우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소송으로 가면 돈을 더 잘 벌 수도 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합의를 먼저 시도하고 그게 안 되면 소송을 하는 게 맞다고 그는 생각한다. 합의 시도가 생략되면 법원 업무도 가중되고 자녀들은 더 힘들어지고 여러모로 사회적 낭비다. 그의 의뢰인들은 이런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소송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거고 생각보다 그렇게 사이다 같은 일은 없으며, 돈은 이 정도 받을 거다. 지금 그 진노의 감정이 다 변호사들한테 돈으로 가는 거다. 왜 그렇게 돈을 벌어주려고 하는가. 감정을 좀 내려놓고 합의하자.”
드라마에서 다룬 내용이 자기 이야기 같다며 찾아오는 의뢰인이 늘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에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지만 상담하고 재판에 출석하고 육아하는 일상은 똑같다. 마음이 좀 바뀐 것 같기는 하다. “드라마를 쓰는 일이 되게 역지사지하는 일이다. 내가 캐릭터들 입장이 다 되어봐야 하는 거라 사건을 대할 때 좀 더 다각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상담할 때도 괜한 희망을 줄까 봐 희망고문 같은 건 요만큼도 안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으로서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한 것 같고 더 잘 쓸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내일은 “모르겠다”. 지난 13년, 수많은 거짓말과 배신을 목격했다. 냉소할 법도 한데 “인간이 어딘가 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말에서 한유리와 차은경의 캐릭터가 겹쳐 보였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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