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진 한 장은 역사의 증거로 남았다

김형민 2022. 11. 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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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달려들어 똥물을 뿌렸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즐겨 찾던 사진관 주인 이기복씨는 떨리는 손으로 이들의 처참한 몰골을 필름에 아로새겼다.
1978년 2월21일 사진관 주인 이기복씨가 찍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동일방직복직투쟁위원회 제공

알다시피 인천은 첫 개항지이고 일제강점기부터 공업단지가 조성됐던 곳이야. 수십 년 동안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인천 바닥에 떨어져 몸뚱이가 부서져라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리고 꿈을 키워갔지. 동일방직이라는 공장도 그랬어. 동일방직의 원래 이름은 동양방적으로 일제의 군수공장이었는데, 해방 이후 동일방직으로 이름을 바꿔 가동을 이어간다. 방직공장 성격상 이 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었지.

“1972년 전국섬유노조 동일방직지부 조합원은 1383명이었다. 그 가운데 1204명이 여성이었다. 그런데도 조합 간부는 회사 말 잘 듣는 기술직 남자들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녀부장이던 주길자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인 여성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사건이었다. 노동조합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바뀌어갔다(〈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 박준성 지음).” 오빠·남동생을 교육시키기 위해 중학교쯤 졸업하면 공장으로 가던 소녀들이 즐비했고, 하다못해 초등학교에서도 반장은 당연히 남자가 맡아야 하던 세상이었다. 아무리 여자가 많다고 해도 노동자가 1000명 넘는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선출된 것은 여러 사람의 비위를 긁었다.

좀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한때나마 중국의 황제를 꿈꾸었고 조선에도 오래 나와 있었던 위안스카이(원세개)는 조선 여자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부하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해. “결혼해라. 조선 여자들은 똑똑하고 뛰어나다. 조선 남자들보다 백 배 낫다. 조선 남자들에게 한 가지 재주가 있다면 그 똑똑한 여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재주다.” 120년도 더 전의 객쩍은 소리를 귀담아들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코웃음을 치면서도 한쪽 발이 약간 저려오기는 한다. 우리 역사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모질었는지, 남자들이 얼마나 지질하게 굴었는지에 대해서는 새삼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동일방직의 남성 노동자들은 그중에서도 특출하게 지질한 존재였다. 여자들한테 밀린 것이 ‘싸나이’ 명예에 똥칠이라도 했다고 봤던지, 그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노조에 사사건건 발을 걸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런 못난 동료들과 회사, 나아가 노동조합을 불온시하는 정부의 탄압까지, 어마어마한 거한(巨漢)들의 뭇매에 맞서 눈물겹게 싸워야 했어.

그러던 중 1978년 2월21일이 왔다. 이날은 노조 대의원 선거 날이었어. 날이 채 밝기도 전인 새벽 5시30분, 소스라치게 놀라 지르는 비명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회사 편을 든 남성 노동자들이 노조가 준비해둔 투표함을 몽둥이로 박살내버리고 노조 사무실의 모든 기물을 부순 거야. 그래도 투표하러 달려오는 여성 노동자들 앞을 웬 물통을 든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가로막았다. 그들은 저마다 고무장갑이나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어. 불길한 예감도 잠시. 그들은 곧 여성 노동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틀어쥔 것은 황망하게도 인분, 즉 똥물이었다. 수십 년 뒤에도 같은 남자로서 수치심을 자극하는 이 지질한 남자들은 여성 조합원들에게 똥물을 뿌릴 뿐만 아니라 옷을 들추어 그 속에 집어넣고 강제로 입을 벌리고 쏟아붓기까지 했어. 부모를 죽인 원수도 아니고, 재산을 통째로 들어먹은 사기꾼도 아니며, 매일같이 한데 어울려 일하고 밥 먹고 인사 나누던 직장 동료들에게 그렇게 한 거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모욕이 벌어지는 동안 현장에 있던 경찰 둘은 구경만 했다. 어디 구경뿐일까. 전 중앙정보부 직원 최종선씨에 따르면 동일방직 노조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의 중앙정보부가 중앙정보부 경기도지부를 제치고 직접 노조 와해 공작을 진행하고 있었다. 즉 똥물 테러는 결국 그 과정에 벌어진 추악한 해프닝이었지.

갑자기 누군가 달려들어 내 입에 똥을 집어넣는다면, 똥물을 뿌린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수치심을 넘어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을까.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역시 그랬다. 수백 번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역한 냄새에 구역질하며 그들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통곡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신고를 받아야 할 경찰은 가해자 편이고, 호소해볼 만한 언론사는 정부의 통제하에 있었다. “똥을 먹고 살 순 없다”라고 울부짖던 여성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스친다. “증거!” 그러나 카메라가 귀하디 귀한 시절, 똥 범벅이 된 자신들의 모습을 담을 카메라를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우일영상 가서 아저씨 불러와!”

우일영상은 원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영원한 추억과 우정’을 남기기 위해 즐겨 찾던 단골 사진관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설명조차 못하고 꺽꺽거리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에 붙들려 사진관 주인 이기복씨는 카메라를 들고 노조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처참한 몰골을 필름에 아로새겼지.

“노조원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사진 속 여공의 표정을 들어다본다. 여덟 팔 자로 다문 입은 금세라도 흐느낌으로 미어터질 것 같고, 똑바로 앞을 응시하지 않는 눈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범벅이 된 빛을 쏘아낸다. 부르쥔 주먹이 덜덜 떨리고 있음은 누가 봐도 짐작할 수 있어. 그들의 푸른 작업복에 뭉텅이로 박힌 똥물들은 1978년 대한민국 역사에 들이부어진 오물로서 오늘도 싯누렇게 빛나고 있단다. 그러나 그 똥물 세례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고 선 사진 속 노동자는 잔인하면서도 졸렬했고 사악하면서도 지질했던 독재와 악질 자본, 그리고 그 하수인들보다 더 늠름했다. 똥물 세례를 받은 쪽보다 퍼부은 쪽이 더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그렇게 사진 한 장은 역사의 증거로 남는다.

‘지역 차원이 아닌 중앙 차원에서’ 동일방직 노조 박살을 기획·연출하고 있던 중앙정보부와 그 외 끄나풀들이 똥물 냄새에 둔감할 리 없었다. 곧 이기복씨의 사진관에 살기등등한 정보기관원들이 들이닥쳤지. 사람 하나 곤죽 만드는 일쯤은 손톱 깎기보다 쉽게 했던 사람들임을 이기복씨 역시 모르지 않았어. 그러나 사진관을 천직으로 삼아 그 후로도 25년을 같은 자리에서 일했던 무던한 사진사 이기복씨는 이 골리앗 같은 중앙정보부원 앞에서 침묵의 용기를 발휘한다. “필름 없습니다. 노조원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당신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예, 압니다. 그런데 없는 걸 어떡합니까.”

후일 이기복씨는 이렇게 회고했어. “(공장에 뛰어갔을 때) 10여 명의 여공들이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노조 사무실과 사무장실 천장과 벽에 온통 똥물이 묻어 있었습니다. 또 몇몇 여공들은 바닥에 누워 울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참담한 광경이었을까. 평소 정치에는 하나도 관심 없고 데모라면 고개를 흔드는 이라도 발을 구르며 분노했을 거야.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매서운 칼끝이 향했을 때 자신이 품었던 분노를 드러내기란, 작게나마 발 내디뎌 그 분노를 100분의 1이라도 표현하기란 힘들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이기복씨는 그 공포를 넘어섰던 거야.

역사는 ‘위대한 업적’과 ‘결정적 사건’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누군가의 위대함은 결코 한 사람의 걸출함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아. 누군가의 위대함은 그보다 훨씬 많은 누군가의 하찮은 손과 발에 의해 끌어올려진 것이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우뚝 서기 마련이야. 동시에 ‘결정적’ 사건에 이르는 도상은 수없는 사람들이 도전하고 싸우며 짜낸 피와 살과 눈물들로 포장돼 있다. 그렇듯 역사는 차마 이것만은 참지 못하고 일어선 사람들, 그리고 차마 그들을 외면하지 못한 사람들, 한없이 작아 보이나 더할 수 없이 위대한 인간들이 몸으로 써 내려간 기록이야.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 그리고 사진사 이기복씨처럼 말이다. 

김형민(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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