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고 또 먹는다…‘초가공식품’의 위험한 유혹 [건강하십니까]

송형국 2025. 10. 2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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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유튜브를 켜면 '먹방'이 넘쳐납니다. 식품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합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카페, 손 안의 배달 앱…. 언제 어디서나 '맛의 유혹'이 펼쳐집니다. '신상' 과자 포장을 보면 '단짠 부드러운' '소금우유크림맛' '향긋한 쉬폰 케이크맛' '밀크바나나맛'과 같은 알 듯 모를 듯한 수식어가 가득합니다.

포장 뒷면 성분 표기를 보겠습니다. 글루탐산나트륨, 농축대두단백, 폴리인산나트륨, 정제소금, 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 산성피로인산나트륨, 데어리스프레드, 하바네로맛시즈닝…. 인공 첨가물들의 향연입니다. 첨가물 자체는 모두 식품위생법상 기준을 통과한 것들입니다. 이들을 절묘하게 배합하고 원재료 변형의 공정을 거치면 외면하기 어려운 '초가공식품'의 맛이 탄생합니다.

■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이란?

초가공식품이란, 원재료 특성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산업적으로 정제·변형·조합된 가공식품을 말합니다. 2006년 브라질의 한 연구팀이 개발한 NOVA 식품 분류법에 의한 구분으로, 식품 가공 단계를 나누는 기준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식품은 ▲1단계: 과일, 채소, 육류, 생선, 곡물 등 원료 그대로의 식품 ▲2단계: 설탕, 소금, 식용유, 버터 등 원재료를 정제한 수준의 식품 ▲3단계: 천연 식품을 분쇄, 발효시키거나 조미료를 결합한 수준의 빵, 치즈, 통조림, 와인 등의 가공식품 ▲4단계: 원재료 분쇄·압출·튀김 등의 공정을 거치고 색소·감미료·방부제·향료 등 인공 첨가물을 다량 배합한 '초가공식품' 의 단계로 나뉩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공식품 대부분이 초가공식품에 해당합니다.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피자, 햄버거와 감자튀김, 케첩과 마요네즈, 콜라 등 탄산음료, 상당수의 냉동·즉석 식품이 초가공식품입니다.

■ "중독성 유발할 수"…개인 의지만으로는 어려워

문제는 이들 식품 중 적지 않은 경우가 중독적이라는 점입니다. "먹고 나서 후회하고, 살찐 것을 알고도 또 먹게 된다"는 게 초가공식품에 빠진 이들의 호소입니다. 개인 의지력만의 문제일까. 김성민 가천대길병원 대사비만센터 교수는 "비만센터를 찾는 환자 중에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우는 분도 있다"며 "잔뜩 먹고 나서 또다시 먹게 되는 악순환을 고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초가공식품의 인공첨가물과 가공법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맛, 인위적인 식감 등은 우리 뇌의 쾌감 회로를 효과적으로 공략합니다. 이에 따라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지속되면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미국 미시건대 연구팀은 미국 전역 인구에 대한 표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50~80세 고령층 2,038명 대상의 이 연구에서 조사 대상의 12.4%가 '초가공식품 중독 상태'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초가공식품을 먹지 않으면 금단 증상이 오고, 지속적인 의존성을 보인 겁니다. 초가공식품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중요한 연구 결과로, 국제 학술지 'ADDICTION'에 지난 9월 게재됐습니다.

■ "비만·제2형 당뇨병·심장병·우울증 등과 연관"

가정에 초가공식품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사회일수록 비만 유병률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집에 있는 식품 중 초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은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비만 유병률이 낮고, 반대 경우인 영국이나 독일은 비만 인구 비율이 매우 높았습니다(아래 그림 참조). 다만 그래프에 나타난 것처럼 그 상관 관계가 정비례하지는 않는 나라도 있었습니다.

카를로스 아우구스토 몬테리오 외, ‘초가공식품의 유럽 19개국 가정 내 보관 비율과 비만’ 연구(2017).


초가공식품은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심장병·우울증 등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보고 또한 잇따르고 있습니다. 초가공식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리온 네슬레 뉴욕대학교 식품·영양·공중보건학 명예교수는 "(초가공식품은) 더 많은 열량을 먹도록 부추기면서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더 먹게 된다"며 "그것이 바로 초가공식품의 목적"이라고 단언합니다.

유해성 보고가 잇따르면서 미국에서는 논란이 재점화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국, 농무부 공동으로 초가공식품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통일된 정의를 확립하기 위한 조사 작업에 7월 착수해, 식품 업계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초가공식품에 대한 법적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가면서 이달부터는 학교 급식에서 단계적 퇴출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서구 곳곳에서 초가공식품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하면서 식품 업체들의 대체 제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같은 시리얼 제품이라도 인공 첨가물을 최소화하고 통곡물을 사용하는 등의 방식입니다. 사회 분위기가 기업을 바꾸는 사례입니다.

■ "한국 성인 섭취 에너지 중 초가공식품 비율 25% 이상"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개념 정립도 불명확한 실정입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기반으로 한 '한국인 성인 초가공식품 섭취 실태' 연구 결과, 한국인은 1998~2005년 기간에는 전체 섭취 에너지의 17.41%를 초가공식품을 통해 얻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6~2019년에는 26.71%로 급증했습니다. 다만 2020~2022년 코로나19 기간에는 25.33%로 다소 낮아졌습니다.


전체 섭취 열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한국인의 먹을 거리 중 초가공식품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저렴하고 간편하고, 게다가 맛있다고 느껴지는 초가공식품을 갈수록 많이 먹게 되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규제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김성민 교수는 "사회적으로 트랜스지방에 대한 경각심이 부각되면서 식품업체들도 이를 포함하지 않는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대세로 삼게 됐듯이,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식품을 생산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식품 업체들 스스로 건강한 방식의 제조법을 만들어나가는 동시에, 이를 이끄는 소비자들의 선택이 '초가공식품 과잉'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자료분석 이지연, 홍성현
그래픽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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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 기자 (spianat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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