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옥도 ‘전통’입니다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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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알던 한옥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근 〈한옥 적응기〉를 펴낸 정기황 작가(48)는 이 집 앞을 인터뷰 장소로 택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게 도시 한옥이다.
도시 한옥은 그리 대접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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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알던 한옥의 모습이 아니었다. 외벽에는 알록달록한 장식물이 붙어 있었고 처마 밑은 코발트색 페인트로 칠했다. 전신주와 연결된 굵은 전선이 서까래에 꼬여 있었다. 기둥의 ‘개 소변 금지’ 문구는 화룡점정이었다.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북촌 한옥마을이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 〈한옥 적응기〉를 펴낸 정기황 작가(48)는 이 집 앞을 인터뷰 장소로 택했다. “지은 지 80년쯤 된 경기형 민가로, 사람이 오래 살며 잘 관리한 집”이라고 했다. 이런 집도, 이런 집이야말로 ‘전통’에 속한다고 정 작가는 말한다.
〈한옥 적응기〉는 정기황 작가의 석박사 논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건축학과에서 설계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한국 건축과에서 배우는 설계는 모두 서양에서 온 것이었다. 한반도 기후나 지형에 맞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서양 건축은 본고장 건축가들을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전통가옥에 관심이 향했다. 특히 ‘도시 한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한옥은 조선 시대, 양반 중에서도 최상류층이 거주하는 넓은 집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이런 집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게 도시 한옥이다. 기와지붕을 비롯한 한옥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되 더 작고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도시 노동자가 주로 도시 한옥에 들어왔다. 정기황 작가는 당시 집주인들의 이중적 욕망이 주거 형태에 반영되었다고 말한다.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신분 상승의 꿈이 작은 기와집이라는 형태로 발현됐다.”
도시 한옥은 그리 대접받지 못한다. 정 작가는 “사회적으로 한옥의 기준이 조선으로 회귀하려는 듯한 느낌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부터 한옥의 요건을 까다롭게 정한다. 서울시는 북촌 등지에 ‘한옥 형식’에 맞게 건축물을 짓거나 고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정 작가에 따르면 “1930년대에는 거의 없었던 조선의 형태로 창이나 벽을 짓도록 강요한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조선의 형식과도 다르다. ‘누군가의 상상 속에 있는 조선’인 셈이다”. 책에서 그는 이 모호한 전통을 개발해낸 게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설명한다. 통치 정당성을 위해 전통 건축을 상징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정기황 작가는 경직된 전통 탓에 거주자의 취향이 묻히고 ‘집에 대한 상상력’이 소멸할까 봐 걱정했다. “어린이 건축학교를 20년 넘게 했다.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요즘 아이들은 똑같이 생긴 아파트만 그린다. 전체 가구 대다수가 비슷한 공동주택에 살고, 스스로 원하는 집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국가 주도의 획일성’이라는 측면에서 정 작가는 오늘날 한옥 보존 정책이 과거 아파트 정책과 닮았다고 말했다. “‘이쪽으로 가’ ‘여기에 만들어’라는 건 이제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주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제 뜻을 펼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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