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할일 없을 덬들 위해 찌는 글 (스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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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스름하게 동이 트는 새벽,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다. 밝아오는 거리는 고요하고 한적했다. 몇 명의 분주한 사람들이 침묵과 어둠을 깨고 일을 하고 있었다. 아직 깜깜한 밤에 단잠을 물리치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 전까지 일을 마쳐야 했다. 형광 연두색 상하의에 회색 선이 둘러쳐진 옷을 입은 세 명은 한 조였다. 한 명은 운전을 했고, 다른 두 명은 지난밤 사람들이 내놓은 쓰레기를 쓸어 담아 차에 던졌다. 커다란 쓰레기차는 익숙한 거리를 급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작업은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이 반쯤 끝나가고 아침 해도 반쯤 떠올랐을 무렵 차는 한 골목에 정차했다. 한 지점에서 쓰레기를 싣고 후진해서 들어가야 하는 골목이었다. 두 명은 뒤편의 쓰레기를 집어 실은 뒤 차를 때려 다 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트럭은 후진하고, 두 명은 뒤쪽 난간을 밟고 걸터 서 있었다. 차는 평소와 같이, 하지만 그날따라 미묘하게, 약간 빠르고도 급한 느낌으로 움직였다. 한 발로 걸터 서 있던 사람의 한 쪽 다리가 그날따라 약간 더 비틀거렸다. 지탱하는 난간과 방금 오물을 밟은 신발 바닥 사이의 마찰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미끄러웠다. 그는 중심을 잃어버리는 느낌을 받았고, 곧 꼬꾸라졌다. 그의 눈앞에 오물로 더러워진 바닥과 자신에게 돌진하는 트럭의 바퀴가 보였다. 그 바퀴는 평소와 같은 기세로 구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있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2.
"끔찍했다."
누군가 말했다. 새벽 시간 이제 막 곡소리가 그쳐 약간 조용해진 참이었다. 우리는 의식 없는 사람 한 명만 누워 있는 중환 구역에 있었다. 또 누군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 몇 명이 죽는 겁니까. 바깥에서 선생님이 환자 유치해 오시나요." 응급실에서 자주 하는 농이었다. 환자가 넘치면 지나가는 말이라도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오늘은 정말 그 대상이 필요한 날이었다. "어제 아침부터 세 명인가 봐요.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 분 넘어가시면 네 명. 하지만 나는 유치는 안 해요. 현수막도 내가 안 걸었고." "에이."
약간의 여유와 고요였다. 대신 우리는 솜처럼 지쳐 있었다. 방금 마지막 환자가 사망해서 장례식장으로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교회에서 자전거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굉음을 울리던 오토바이와 부딪혔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던 그녀는 핸들을 비튼 채 날아갔고, 불행히도 그녀의 머리가 가장 먼저 아스팔트에 닿았다. 즉사에 가까운 뇌출혈이었다. 수술이 의미가 없는 정도였지만, 중환자실도 없어 그녀는 이 구역에서 처치를 받으며 몇 시간을 버텼다. 그 몇 시간 동안 그녀와 방금까지 같이 있던 교인과, 오늘 참석하지 않았던 교인이 몰려와 대기실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동안 울다가 찬송가를 부르다가 다시 울었다. 결국 아주머니는 변기에 앉은 채 뇌혈관이 터져서 온 아저씨 옆에서 죽었다. 교인들은 마지막으로 울부짖다가, 진단서를 받아들고 내려갔다. 그리고 약간 고요한 새벽이 왔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어제 아침 일을 생각했다. 그것은 벌써 삼사일 전 같았다.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말라서 자연사한 할아버지가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두 다리가 부러진 문신투성이 열일곱 살 아이도 있었고, 집에 있던 약이란 약은 다 먹었지만 대부분 비타민제와 소화제여서 집에 걸어나간 이십 대가 있었다. 그리고 점심 넘어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지금 살아있다는 것밖에 의미가 없게 된 아저씨가 왔다. 그가 지금 중환자실에서 사망자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반쯤 기입해 놓고 있었다. 또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서 한 번에 죽은 가장이 있었고, 그 아내가 쓰러져 응급실에서 못 나가고 환자 명부에 접수를 하는 통에 우리는 여섯 시간 동안 곡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사이에 폐렴, 요로감염, 장염, 뇌수막염, 위염 등의 환자들이 같이 곡소리를 들었고, 그리고 이 시간이 되었다. 근무는 스물한 시간이 넘었고 딱 세 시간 남았다. 이제부터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3.
그 새벽 카트 하나가 도착했다.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주황색 카트에 형광색 옷을 입은 사람을 데려왔다. 누가 봐도 청소부였다. 나는 새벽에 청소를 하다가 몸이 안 좋았구나 생각했다. 그에게 다가가자 대원이 말했다. "청소차에 다쳤대요.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가 아파요."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감고 말했다. "배가, 으으으. 배가." 청소차에 복부, 고통에 신음, 나는 그 형광색 옷을 걷었다. 볼록 나온 배에 타이어 자국이 사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뇌신경에 전류가 튀기는 것 같았다. "아저씨, 이 배 원래 이렇게 나왔어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신음했다. "으으." "빨리 중환 구역에 넣어요. 당장."
그는 그 옷차림 그대로 집중치료실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의료진과 그의 옷을 뜯어내듯 벗겼다. 차에는 보통 정면으로 치이지 않으므로 교통사고에서는 대부분 사지나 머리가 먼저 손상을 입는다. 적어도 옆구리나 골반이다. 앞쪽의 배가 아프다면 그것은 높은 확률로 차가 누워있는 사람을 타고 넘었다는 뜻이다. 이 사람은 청소부이므로 그 차는 쓰레기차일 것이다. 쓰레기차가 다른 차보다 몇 배쯤 무거울까. 몇 배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배에 있는 장기를 짓이기고 넘어갈 정도는 될 것이다.
"아저씨. 차가 타고 넘어갔어요?"
"네.... 으."
"배 말고 어디가 아파요?"
"어깨... 가슴도..."
나는 지금 막 벗겨지고 있는 그의 상체를 보았다. 과연 왼쪽 어깨 부분이 이상했다. 그건 누구라도 쉽게 어깨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괴상하게 납작해진 형태였다. 바퀴가 마지막으로 여기서 주저앉은 것 같았다. 타이어 자국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었지만 그 몸통이 어떤 경로로 지났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간략하게, 몸을 사선으로 타고 넘은 것이다. 지나간 자리의 갈비뼈는 다 깨져 있었고, 장기 손상으로 배는 이미 상당히 부풀어 보였다. 장갑을 낀 손으로 누르자 그 길 위의 살과 뼈가 전부 비정상적으로 출렁거리거나 뻐거덕거렸다. 
"이거, 외상 처치, 전부 준비해주세요. 수액, 혈액, 흉관, 라인, 폴리, 초음파, 엑스레이, 하여간 전부. 전부 준비합니다."
나는 그의 배를 어루만지며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나는 인간의 선악을 판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선량하고, 어떤 사람이 악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이 먼 듯한 내가 굳이 선량한 사람을 고르라면 이 사람일 것 같았다. 남들이 혼곤하게 자고 있는 새벽에 매일 같이 가쁜 잠에서 깨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에게 물을 죄가 도대체 무엇일까. 모두가 죄가 있는 이 세상에서 새벽부터 자신의 일을 하던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죄를 추궁당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를 살리고 싶었다. 적어도 이 사람은 죽으면 안 되었다.
"아저씨. 버텨요, 아저씨."
"아파요. 내가 발을 헛디뎠어요. 내 잘못이에요. 아. 아파."
"아저씨 안 죽어요."
"내가 잘못해서, 잘못이라고."
그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잘못. 자기가 그 육중한 쓰레기차에 깔려 놓고 잘못했다고, 이럴 수가 있는 걸까? 사람이. 왜 세상의 어떤 선량한 사람들은 이리 미련하게도 죽기 전까지 묵묵하게 선량한가. 그래서 자신을 누가 트럭으로 밟아도 탓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저씨. 안 잘못했어요. 살면 잘못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 준비 다 되면 모르핀도 줘요! 살 수 있어요 아저씨."
"으으 아파. 으으."
잠시 분주한 시공이 느리게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날아온 주사기를 들었고, 요란한 알람이 울렸다. 모니터에 맥박이 46으로 빨갛게 번쩍거렸다. 아래 수축기 혈압이 62였다. 나는 다시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망 직전의 얼굴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당연히 반응이 없었다. "모든 걸 중단하고 삽관부터 합니다. 빨리." 나는 주사기를 놓고 그의 턱을 벌렸다. 저항이 전혀 없어 삽관이 매끄러웠다. 넣고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맥박이... 나는 그의 목을 짚었다. 맥이 없었다.

4.
그에게 우리는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이 침대로 옮겨 누운 지 5분 만이었다. 어떠한 검사나 처치 자체가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사망할수록, 그 사람은 바깥에서 사망해서 들어온 사람과 가까웠다. 그러니 다만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간신히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의 복부는 그 5분 사이에도 더 부풀어 있었다. 나는 초음파 기계를 들고 꿀렁거리는 그의 복부에 댔다. 그 모니터는 흑백이었지만, 내 눈에는 바퀴가 밟아 으깬 장기에서 흘러나온 뻘건 피가 복강 내에 가득 차 있는 광경으로 보였다. 그 깨진 덩어리와 액체가 그 안에서 심폐소생술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건 당시 그 사람은 이미 죽었고, 다만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내 앞에서 죽기 위해 잠시 살아 있던 사람 같았다. '네 명이다. 중환자실에 누운 사람까지 다섯 명. 더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 새벽에 청소하던 사람까지... 제길. 마지막에 이...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다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이 아저씨가 무슨 죄가 있길래... ' 나는 욕설을 뱉고 싶은 지경이었다.
우리는 모두 결과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외상성 심정지는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면 그 확률은 더 올라갔고, 5분 만이었다면 돌아온 적이 없었다. 피가 준비된 것도 수술이 준비된 것도 심지어 어떤 장기가 어떻게 깨졌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머리가 다치지 않았으니 의식을 자연스럽게 잃어버리고 죽어갈 뿐이었다.
그 막바지에, 막 죽음을 선고하려는 때,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누군가 찾아왔어요." "보호자래요?" "아니요. 가해자라는데요." 나는 바깥에 나가 보았다. 같은 형광색 옷을 입은 사내가 있었다. 그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담당 선생님입니까?" "네." "어떻습니까?" "많이 다쳤습니다. 처음부터 살 수 있을 만큼 다치지 않았습니다." "죽는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돌아올 가능성이 없습니다. 돌아가실 겁니다." 갑자기 그는 잠시 열린 집중치료실 문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야야아. 이 새끼야. 살아야지. 살아야 돼. 야야." 
그는 환자 옆으로 뛰어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환자의 뺨을 쳐댔다. 당연히 잘 아는 사이였을 테고, 당연히 고의가 아니었을 테고, 당연히 예기치 못했을 테고, 당연히... 우리는 그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짚어 바깥으로 인도했다. "처치중입니다. 조금만. 있다가 면회시켜 드리겠습니다." "야아." 그는 어깨를 뿌리치고 의료진 사이에 쓰러져 바닥에 손과 발을 접은 채 엎드려서 신음했다. 그 동작은 꼭 기어서 어디론가 가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한 뼘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꿈틀거렸다. 사람들이 그를 들어서 바깥으로 옮겼다.

5.
그에게 확정적이었던 죽음이 찾아왔다. 트럭이 그를 타고 넘는 순간 그는 사망에 가까웠지만, 당시에는 숨이 붙어 있었기에 사망 시간은 내가 정해야 했다. 그 시각은 그가 침대에 누운 지 35분 후가 되었다. 이 새벽에 네 번째 사망자였다. 나는 처치실에서 그의 마지막 서류를 기입하며 이 사망자용 차트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피로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몽롱했다. 잠시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슬픔과 쓰레기와 차 바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았다. 그것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공평한 것들일지 몰랐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자신이 평생 치우던 쓰레기가 모여 그 자신을 깔아 죽인 인생 하나가 또 사라진 것이었다.
나는 분하게 심호흡을 하고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방금 들려 나갔던 그가 제발로 서 있었다. 정신이 온전한 듯 온전하지 않아 보였다. 당연한, 여기서 늘 있는 일처럼 당연한. 나는 자리로 돌아가 앉으려 했지만, 그는 그 눈빛으로 성큼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 말씀이십니까."
"선생님은 모르죠. 누구에게도 알게 할 일은 아니지만, 하여간 선생님은 죽을 때까지 모를 겁니다. 당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겁니다. 아니 당신이 아니라 그건 내가 한 일이군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평생 운전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운전하는 차바퀴로 많은 것을 딛고 밟아보았습니다. 나는 방금 전까지도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금 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느낌을 느꼈습니다. 트럭으로 가장 친한 친구를 밟으면 어떤 느낌인지 알겠습니까? 내 친구가 내가 운전하는 트럭 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물컹거리는, 살아 있는 생명을 밟는 느낌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차가 부드러운 것 위에 올라앉았다고 생각했고, 나는 즉시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순간적이었으니까요. 차는 바로 평평한 곳에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동시에 아득한 소리가, 내 차를 마구 두들기며 비명을 지르는 동료의 소리가 울렸습니다. 팍. 팍. 야. 팍. 야아. 팍. 야야야야. 팍. 나는 솔직히 귀를 울리는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길 바랐습니다. 내 인생 모든 것을 바꿔서라도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나는 차에서 튀어 내려왔고, 내 친구를 보았고, 내가 밟았다는 것이 확실했고, 제발 죽지만 않았으면 했고, 그리고, 당신이 내가 생각한 것을 방금 부정해주었습니다. 그게 당신이 한 일입니다. 내가 한 일입니다."
"..."
"나는 친구와 같이 죽고 싶습니다. 죽은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죽고 싶습니다. 아니면 방금 그 느낌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물컹거리는, 이상한 턱에 올라탄 듯한, 내가 무엇인가를 엄청난 무게로 짓밟는 느낌. 평생 운전을 했어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그 감각이 지금 제 발끝과 덜컹거리는 몸에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나는 이 발이라도 잘라내고 싶습니다. 아니, 나는 죽어야지 무슨 말입니까. 이 친구가, 내 친구가, 밟혀서 죽었는데, 내가 다른 어떠한 대가나 물질로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친구를 밟던 순간부터 나는 인생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 친구 마누라도 알고 이 자식들도 다 압니다. 그걸 내가 방금... 아, 이걸 선생님께 알아달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알아서는 안 되죠. 나만 알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죽겠습니다."
"... 실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뭐, 대체 뭐죠?"
"사망자분이 마지막까지 저와 대화를 했습니다.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남긴 말씀이셨습니다."
"아..."
그의 시선이 급하게 돌아갔다. 그는 주먹을 쥐고 옆에 있는 하얀 벽을 힘차게 내려쳤다. 굉음과 함께 그는 소리쳤다.
"아아. 개새끼. 마지막까지 자기가 잘못이라고... 개새끼. 내가 죽였는데. 아아. 잘못했다고? 잘못? 그래서 죽었냐? 나쁜 새끼. 아아."
그와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6.
끝내 다섯 번째 사람도 죽고야 말았다. 밤을 새워서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던 가족들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으로 쓰러져 오열했다. 나는 그 지긋지긋한 서류를 꺼내서 또 한 장 썼다. 내려오자 아침이 밝아 있었다. 스물네 시간이 전부 지나간 것이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놓아버릴 것 같은 정신으로 붐비는 아침 거리에 나왔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출근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일어나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겠군. 그래.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겠구나.' 나는 햇살 쏟아지는 정류장에서 퇴근을 위해 출근 버스를 기다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거리는 깔끔했고 쓰레기는 잘 치워져 있었다. 나는 부신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둘러서 쓰레기를 찾았다. 이번에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평범한 일과 평범하지 않은 일들 전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당신이 잠드는 일은 몇 개의 인생을 사라지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문장을 누가 언제 썼는지 생각하다 곧 포기했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짐작하고 싶지도 않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가령 친구를 트럭으로 타고 넘어가는 느낌 같은, 그런데 그는 그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할 수 있을까. 납덩이같은 죄책감과 내가 처단한 많은 인생들. 눈앞이 밝게 암담해졌다. '의사 한 사람의 인생은 백 사람의 인생과 마찬가지다. 그걸 견뎌내지 못하면 의사가 될 수 없다.' 이 문장은 또 누가 말했더라. 수업시간이었던가. 나는 정말로 용기가 없었는데. 두려웠는데.
버스가 정차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개수가 너무 많아 눈물이 났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들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들고 눈을 감고 있었다. 버스는 주행하며 덜컹거렸다. 머릿속이 아득한 공간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버스는 무엇인가를 평범하게 밟아내고 있었고, 사람들은 평범하게 같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평범한 차바퀴, 평범한 선량함, 평범한 슬픔, 그리고 평범하게 우리가 밟는 것들... 송곳이 마음속에 들어 전신을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매일같이 바꾸어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9월 1일 수필.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837106476342761&id=10000130280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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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반고 출신 공대 새내기에요.
평소처럼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과제에 퀴즈에 시험에 한창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 며칠전에 제출했던 과제와 퀴즈 결과가 나왔더라구요.

슬프게도
저는 평균에도 한참 못미치는 점수를 받았어요.

매일매일 도서관이나 집에서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시험 직전까지도 문제풀이에 매달렸는데,
남들이 잘하는 친구들의 과제를 베끼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풀어보려고 잠도 안자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점수는 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아주 형편없게 나왔더군요.
속상하고, 기운이 쑥 빠졌어요.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회의감도 많이 들었구요.
그냥 전부 드랍해버리고 싶었고, 포기해버리고 싶었어요.
다른친구들처럼 영재고 과고친구들의 답지를 베껴낼껄,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날 밤에, 저는 아빠랑 통화를 하면서 과제와 퀴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너무너무 힘들다고, 고등학교때는 그래도 하는 만큼은 나왔던 것 같은데,
여기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쳐져있는 것 같다고.
열심히 하나 안하나 똑같으면 그냥 열심히 안하면 되지 않냐고.
나만 아등바등 사서 고생하는 것 같다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고, 전화로 조금 투정을 부렸어요

아버지는 제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셨어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이야기를 해주셨죠.


"재작년인가 작년인가...일본에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교수가 있었거든?
그 교수는 동경대 물리학과를 다녔는데, 대학 다닐때 성적이 어땠을 거 같니?"

"음...안좋았다..?"

"그양반은 성적이 안좋은 정도가 아니야. '꼴찌' 였어 '꼴찌'"

"...."

"물론 동경대면 우리나라의 서울대와 같은 수준의 명문대학이지.
근데 너도 지금 느끼고 있을 거 아니냐, 아무리 서울대라도, 그안에서 꼴찌라는게 얼마나 비참할지."

"...."

"그런데 말이다, 그게 학부과정때는 그랬는데, 좀지나서 석사과정.. 박사과정...
그렇게 나가다보니까 정말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들이 치고 올라간다고 한다더라.
꼴찌였던 그 양반도, 예상이나 했겠니, 자기가 노벨상을 받을거라고."

"학점이 안나올 수 있어. 
거긴 강남애들 특목고 애들이 판치는 서울대잖냐. 
걔네들이 초등학교때부터 했던거를 너는 고작 한달 하고 그친구들 수준을 바라는 건 말이 안되지.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야,
그냥 그 자체를 즐겨. 네 머리속이 뭔가로 채워지는 기분을 즐기라고.
결과가 안좋아도 훌훌 털고,
그래 괜찮아
배웠으면 된거야.
내가 재미있게 했으면 된거야.
몰랐던걸 알았으니까 그걸로 만족해.
이런 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해봐.
좀더 멀리보자고.
서울대는 교수들이 훌륭하게 가르쳐서 명문대학인 것이 아니야.
오히려 명문대학일수록 교수들은 불친절해.
가르쳐주는거 하나도 없으면서 어마무시할정도로 어려운 과제를 내주고, 학생들 보고 알아서 이해하라고 나몰라라 하고.
그런데 그 와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겨내는 학생들, 그학생들이 나중되면 정말 크게 성장하게 될거다.
포기만 하지마. 힘든거 어려운거 좀만 견디고, 그냥 자체를 즐겨.
학점 좀 안나오면 어때.
아빤 베껴서 잘나온 A+과제보다도 우리 **이가 밤새면서 한 B-과제가 훨씬 자랑스럽다.
힘내고, 너무 기죽어 있지말고.
훌훌 털고, 내일도 힘내서 과제할 수 있게 오늘은 푹 자두자.
알았지?"


.

제가 아빠의 자식이었던 것에 감사했던 밤이었어요.
그 후에도 저는 여전히, 퀴즈며 시험이며 평균보다 안 나올 때도있고, 잘나올 때도 있고,
하여튼 학기초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성적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빠 말대로 힘내고 포기하지 않으려구요.
징징대기에는 앞으로 배워야 할것이 너무너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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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Unbreakable Kimmy Schmi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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