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실패한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선수가 있었다. LG 트윈스 1차 지명을 받고도 7년간 2할대 타율을 벗어나지 못했던 박병호.
결국 트레이드됐지만, 넥센 히어로즈로 옮긴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4년 연속 홈런왕, 2년 연속 50홈런, 역대 최초 6회 홈런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파워 하나로 KBO를 지배한 '국민 거포'의 전설이 시작됐다.
고교 시절부터 예고된 괴력

2004년 전국 고교 야구 대회에서 성남고 박병호는 화순고를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이어진 휘문고전 첫 타석에서도 홈런을 쳐내며 고교 야구 사상 최초의 4연타석 홈런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국내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까지 사로잡았고, 보스턴과 미네소타 등에서 영입 시도가 있을 정도로 뛰어난 거포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185cm, 90kg의 단단한 체격과 포수 포지션의 이점, 당겨치기와 밀어치기 모두 가능한 타격 밸런스까지 갖춘 박병호는 모든 팀이 탐내는 선수였다. 2004년 6월 5일, LG 트윈스는 넓은 잠실 구장에서도 담장을 넘길 수 있는 그의 잠재력을 보고 1차 신인 선수로 지명했다.
LG에서의 7년, 높았던 프로의 벽

하지만 프로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나무 배트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데뷔 후 9경기 동안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고, 첫 안타 이후에도 타율은 2할을 밑돌았다. 경쟁자 정의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넘어갔고, 포수로서의 경쟁력도 약화되어 2군과 벤치를 오가는 신세가 됐다.

2006년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입대한 박병호는 2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프로에 복귀하며 포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타격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복귀 첫 개막전에서 2루타를 때려냈고,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증명했지만, 여전히 볼넷 대비 삼진 비율이 좋지 못했고 타율도 2할 언저리에 머물렀다.
2군에서는 좋은 타격을 보였지만 1군에서는 부진하는 패턴이 반복됐고, 결국 팀은 인내심을 잃었다. 2011년 7월 30일, LG는 박병호와 심수창을 넥센으로 보내고 송신영과 김상현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넥센에서의 새로운 시작

당시 넥센 히어로즈는 선수층이 얇았고, 2011년 전반기 최하위에 머물렀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득점, 안타, 홈런 등 모든 부분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이는 박병호에게 LG 시절과 달리 확실한 1루수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박병호에게 "네 멋대로 해라. 시즌 끝까지 4번 타자로 기용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트레이드 직후 첫 경기에서는 무안타였지만, 8월 5일 이적 후 네 번째 경기에서 홈런을 포함한 3안타를 때려내며 괴력을 폭발시켰다.
LG 시절 15경기에서 타율 1할대, 홈런 1개에 불과했던 그는 넥센 이적 후 단 51경기에서 타율 0.260, 홈런 12개, OPS 0.900에 달하는 성적으로 팬들을 놀라게 했다. 박병호는 "부진했을 때 조급했던 타격폼을 되돌아봤다. 감독과 코치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여유를 갖고 타구를 기다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전성기의 시작

트레이드 이후 잠재력을 완전히 터트린 박병호는 2012년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다. 133경기를 모두 4번 타자로 출전해 560타석 136안타, 타율 0.260, OPS 1.000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했다.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며 거포의 면모를 입증했고, 20도루에도 성공하며 20-20 클럽에도 이름을 올렸다.
팀은 6위에 머물렀지만 홈런, 타점, 장타율 세 부문을 석권하며 가을 야구 탈락 팀의 MVP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골든글러브도 품에 안았다. 그의 성공은 단순한 재능의 폭발이 아니었다. 약점으로 지적되던 몸쪽 공 대처를 위해 2012년 스프링캠프부터 타격폼 수정에 착수했고, 박흥식 타격 코치와의 작업 끝에 손의 위치를 어깨에서 귀 높이로 올리고 스윙 궤적을 간결하게 바꿔 타이밍을 잃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임팩트를 완성했다.
KBO 최초 50홈런의 위업

2013년에는 처음으로 3할이 넘는 타율과 홈런 37개, 117타점, OPS 1.000 이상으로 2년 연속 골든글러브와 MVP를 석권했다. 팀은 처음으로 가을 야구에 진출했다. 2014년에는 KBO리그 최초로 50홈런 고지를 밟으며 '국민 거포'의 계보를 이었다. 스윙을 어퍼스윙 형태로 변경하여 높은 발사 각도에도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대형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15년에는 5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최초 2년 연속 5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146개의 타점과 1.100이 훌쩍 넘는 OPS로 그의 파워 하나로 모든 부정적인 의견을 잠재웠다. 역대 최초 4년 연속 홈런왕이라는 그의 전성기를 설명하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MLB 도전과 아쉬운 결과

2015년을 끝으로 박병호는 더 큰 무대인 메이저리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인 역대 두 번째로 높은 1,285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기록하며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했다. 4월 16일 타겟 필드에서 142m에 달하는 초대형 홈런을 쳤는데, 이는 짐 토미의 기록을 뛰어넘는 그 구장에서 나온 최대 비거리 홈런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홈런을 제외한 나머지였다. KBO보다 5~8km 빠른 평균 구속과 140km 후반대 변화구를 던지는 MLB 투수들을 상대로 히팅 포인트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 특히 하이 패스트볼에 극도로 약한 모습을 보이며 2016년 하이 패스트볼 헛스윙률은 40%를 넘어섰다. 시즌 중반 트리플A로 강등된 박병호는 MLB 데뷔 첫해를 62경기 12홈런, 타율 2할 미만의 성적으로 마쳤다.
KBO 복귀와 또 다른 전설

2017년 11월 27일 연봉 15억원에 넥센과 계약하며 KBO 복귀를 공식화했다. 복귀 첫해인 2018년, 113경기 타율 0.345 OPS 1.100 이상, 43홈런 112타점으로 개인 네 번째 1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역대 두 번째이자 우타자 최초로 5년 연속 30홈런을 달성했다.
2019년 공인구 반발력 저하로 리그 전체에 홈런이 급감했지만, 박병호만은 달랐다. 유일하게 30홈런을 넘기며 다섯 번째 홈런왕에 올랐다. 2022년 KT 위즈에서 다시 한번 30홈런을 넘기며 KBO 역대 유일하게 여섯 번째 홈런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수많은 홈런과 함께한 20년의 여정을 마친 박병호. 역대 최초 4년 연속 홈런왕, 역대 최초 2년 연속 50홈런, 역대 최초 6회 홈런왕이라는 기록들은 이제 전설이 됐다. 힘 하나로 리그를 지배했던 그의 파괴력은 시간이 지나도 많은 이들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