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는커녕… 반도체 업계에 번지는 ‘전기대란’ 걱정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2024. 10. 10. 09:01
[Focus] 재계 곳곳서 ‘곡소리’ 흘러나와
전기자동차 화재는 아직 명확하게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한 분위기다. 배터리의 과도한 충전이 원인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많지만 반박하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전기자동차 화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배터리관리시스템(BMS·Battery Management System)'이나 '배터리실명제' 등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지만 관련 업계에선 아직 입장차가 크다. 관련해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될 경우 전기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기업들의 사업장에도 변화가 생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론 전기를 공급해서 소비한 후 '비용 문제'가 있다. 전기요금은 매년 오르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도 역시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서 올릴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선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 반도체 기업들을 중심으로 전기 관련 세제감면 혜택을 대폭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많았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짙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대만의 TSMC의 사례를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대만은 TSMC로 하여금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greement)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전력 수요량 경매제도를 운영해 요금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대만전력은 2015년 5월부터 대만 전역의 전력 수요를 관리하기 위해 경매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TSMC가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TSMC 같은 고압, 대량의 전력이 필요한 주요 대기업들은 경매 입찰을 통해 확보한 전력을 되팔 수 있다. 이를 통해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어 기업들엔 유용하다. 만약 경매 입찰 가격이 좀 높게 책정되더라도 PPA에서 전력을 비싸게 팔아 조절하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으로서 지닌 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기 어렵다.
● 반도체 기업들에 전력난은 생사의 문제
● 2032년까지 수도권에 하루 약 56GW 더 필요
● 지역 주민 반발로 ‘전기 고속도로’ 끊겨
● 대만 TSMC 살린 ‘전력수요량 경매제도’ 검토 필요
최근 재계 곳곳을 방문하거나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전기'에 관한 이야기를 꼭 듣게 된다. 어떤 이는 "제22대 국회에선 '곡소리'가 앞마당까지 흘러나온다"라고도 했다. 입법 동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의 집무실을 방문한 재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아우성이라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서 전력난은 '생사의 문제'에 가깝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는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이에 관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세계에 나가 경쟁을 한다. 이 가운데 사람이 부족해서 겪는 인력난이나 물이 부족해서 겪는 용수난보다도 전기 때문에 발생할 전력난이 더 시급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시점까지 맞물리면서 전력난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더 커진 점도 분명 있다.
특히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서 전력난은 '생사의 문제'에 가깝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는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이에 관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세계에 나가 경쟁을 한다. 이 가운데 사람이 부족해서 겪는 인력난이나 물이 부족해서 겪는 용수난보다도 전기 때문에 발생할 전력난이 더 시급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시점까지 맞물리면서 전력난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더 커진 점도 분명 있다.
국회는 이에 응답하고 있다. 실제 여야 의원들이 나란히 발의한 이른바 '반도체특별법' 내용을 보면 모두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는 취지의 내용이 빠지지 않고 담겼다. 9월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국가 기반 전력망 확충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모두 기업의 강력한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전기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전기를 어떻게 얼마나 만들어야 하느냐'는 생산 문제가 우선이다. 다음은 '전기를 어떻게 필요한 곳으로 끌고 가느냐'의 배전 문제, '받은 전기는 어떻게 보관하느냐'는 충전 문제가 이어진다. '전기를 사용한 대가는 어떻게 지불해야 하느냐'는 요금 문제가 마지막에 있다.
정부는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5월 29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발표한 뒤 소식이 없다. 이때 발표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초안, 맛보기였고 확정안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가 협의를 거치고 결정해서 최종적으로 수립하고 발표해야 한다. 계획안은 올해부터 오는 2038년까지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에너지를 만들어서 공급할지 구상이 담긴다. 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경영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절차가 당초 예정됐던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올해를 넘길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계획을 세워서 정책으로 풀어나가기에도 전기 문제는 예단하기 어렵고 변수, 결함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기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전기를 어떻게 얼마나 만들어야 하느냐'는 생산 문제가 우선이다. 다음은 '전기를 어떻게 필요한 곳으로 끌고 가느냐'의 배전 문제, '받은 전기는 어떻게 보관하느냐'는 충전 문제가 이어진다. '전기를 사용한 대가는 어떻게 지불해야 하느냐'는 요금 문제가 마지막에 있다.
정부는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5월 29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발표한 뒤 소식이 없다. 이때 발표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초안, 맛보기였고 확정안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가 협의를 거치고 결정해서 최종적으로 수립하고 발표해야 한다. 계획안은 올해부터 오는 2038년까지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에너지를 만들어서 공급할지 구상이 담긴다. 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경영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절차가 당초 예정됐던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올해를 넘길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계획을 세워서 정책으로 풀어나가기에도 전기 문제는 예단하기 어렵고 변수, 결함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더 많은 전기 만들어야
전문가들의 시각을 종합해 보면, 지금보다 전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제다. 그렇게 때문에 우선 우리가 전기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발전'의 문제부터 풀어야 하는 것이다.
학계와 재계에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여러 변화 등을 고려해 앞으로 더 필요한 전력량을 분석한 보고서를 잇달아 내놨다. 전망은 조금씩 다르지만, 수치는 대략 같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 따져봤을 때, 하루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력량은 10~21기가와트(GW)로 추산된다. 수도권에 필요한 전력량의 약 4분의 1 규모다. 여기에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1224개)가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조성될 예정이란 점을 감안하면 2032년까지 수도권에는 약 56GW가 더 필요하다는 한국전력의 보고서도 있다. 각 가정이 쓰는 전력량도 매년 더 덥고 추워지는 기후변화 탓에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런 사정도 반영해야 한다. 그러면 향후 더 만들어서 보내야 하는 전력량은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다.
예상 전력량을 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적합한 에너지와 발전 방식을 선별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따르고 있는 '탄소중립' 기조도 지켜야 해,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을 적용하기로 윤곽은 잡아놨다. 정부가 내놓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 초안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으로 2030년까지 72GW를 생산하고 이를 차츰 확대해서 2028년까지 재생에너지 120GW를 보급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목표가 현실화될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종류별 균형을 맞춘 유럽의 사례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10%에 가깝게 태양광에 편중돼 있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태양열이라는 건 아무래도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수급하기 어려운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한국전력공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든 발전량 가운데 12.4%가 태양광, 10.4%가 풍력이었다. 둘만 10%를 넘었고 바이오(8.0%) 등은 모두 10%를 넘지 못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금 풍광이 좀 좋은 곳이라고 하면 모두 자연보호구역이라 발전소 설치가 어려운, 사회적 문제들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제약들 때문에 전문가들이 최근 눈여겨보는 것이 '해상풍력'이다. 바다 위에서 발생하는 강한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우린 동해안이 특히 해상풍력 발전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해상풍력은 바다 위에 띄워서 설치해야 하는 발전선과 바다 아래로 전선을 깔아야 하는 등 제반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든다는 점이 문제다.
또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동해안에 있는 화력발전소다. 동해안에 포진한 화력발전소는 총 8개인데 대부분 가동을 멈췄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발전이 정부 정책상 우선시되면서 뒤로 밀린 것이다. 전기를 만들어도 송전할 수 있는 통로가 사라진 영향도 컸다. 현재 우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전력시장 운영 규칙'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든 전력을 우선적으로 송전 용량으로 할당하도록 하고 있다. 화력발전소는 대량의 화석연료를 불에 태워서 물을 끓이고 이 과정에서 생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때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발생해 대기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발전 때 나오는 탄소를 포획, 격리하는 기술(CCS·Carbon Capture Storage)이 발달했고, 화석연료는 청정 수소 연료로 전환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요 전력량을 해결하기 위해 화력발전소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예상 전력량을 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적합한 에너지와 발전 방식을 선별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따르고 있는 '탄소중립' 기조도 지켜야 해,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을 적용하기로 윤곽은 잡아놨다. 정부가 내놓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 초안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으로 2030년까지 72GW를 생산하고 이를 차츰 확대해서 2028년까지 재생에너지 120GW를 보급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목표가 현실화될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종류별 균형을 맞춘 유럽의 사례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10%에 가깝게 태양광에 편중돼 있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태양열이라는 건 아무래도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수급하기 어려운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한국전력공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든 발전량 가운데 12.4%가 태양광, 10.4%가 풍력이었다. 둘만 10%를 넘었고 바이오(8.0%) 등은 모두 10%를 넘지 못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금 풍광이 좀 좋은 곳이라고 하면 모두 자연보호구역이라 발전소 설치가 어려운, 사회적 문제들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제약들 때문에 전문가들이 최근 눈여겨보는 것이 '해상풍력'이다. 바다 위에서 발생하는 강한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우린 동해안이 특히 해상풍력 발전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해상풍력은 바다 위에 띄워서 설치해야 하는 발전선과 바다 아래로 전선을 깔아야 하는 등 제반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든다는 점이 문제다.
또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동해안에 있는 화력발전소다. 동해안에 포진한 화력발전소는 총 8개인데 대부분 가동을 멈췄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발전이 정부 정책상 우선시되면서 뒤로 밀린 것이다. 전기를 만들어도 송전할 수 있는 통로가 사라진 영향도 컸다. 현재 우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전력시장 운영 규칙'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든 전력을 우선적으로 송전 용량으로 할당하도록 하고 있다. 화력발전소는 대량의 화석연료를 불에 태워서 물을 끓이고 이 과정에서 생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때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발생해 대기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발전 때 나오는 탄소를 포획, 격리하는 기술(CCS·Carbon Capture Storage)이 발달했고, 화석연료는 청정 수소 연료로 전환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요 전력량을 해결하기 위해 화력발전소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하남에서 막힌 '전기 고속도로'
전기를 만든 후엔 필요한 곳까지 운반하는, 배전과 송전 문제에 직면한다. 전기를 보내려면 관련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는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전봇대를 하나 세우더라도 해당 지역의 자연을 해칠 수 있고, 각종 소음 등 유해한 환경이 지역 주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고 있는 이른바 '전기 고속도로'는 현재 수도권을 진입하기 전 경기 하남시에서 막혀 있다. 하남시는 8월 21일 지역 주민의 반대 등을 이유로 한국전력이 신청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을 불허 처분했다. 한국전력은 동서울변전소를 증설해서 수도권까지 200㎞ 이상 이어지는 동해안-수도권 초고압 직류송전(HVDC) 송전선로로 배달된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배분하려 했는데 돌발변수가 생긴 것이다. 발전소에서 만든 교류 전기는 발전소 근처 변환소에서 500kV(킬로볼트)의 초고압 직류로 바뀌어 200㎞ 이상 길이의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타고 주 소비처인 수도권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이후 소비처 인근의 최종 변환소에서 다시 초고압 직류 전기를 배전망에 흘려보낼 수 있는 교류 전기로 바꿔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하남시에 만들려는 해당 변전소가 없으면 2026년 6월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당초 정부와 한전은 수도권 전력공급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2026년 6월까지 동서 방향의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2036년까지 남북 방향의 서해안 송전선로를 첨단 HVDC 방식으로 설치하겠다는 일정을 세웠는데 이 역시도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의 용량은 총 8GW로 이미 착공돼 건설 중인 신가평변환소로 4GW가, 동서울변환소로 4GW의 전기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동서울변환소 건설이 불가능해지면 당초 계획은 반토막이 나, 4GW의 전기만 옮기게 된다. 한국전력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하남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남시의 행보는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법적 조치가 이뤄질 경우에도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어 송전 문제가 당장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남시에 만들려는 해당 변전소가 없으면 2026년 6월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당초 정부와 한전은 수도권 전력공급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2026년 6월까지 동서 방향의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2036년까지 남북 방향의 서해안 송전선로를 첨단 HVDC 방식으로 설치하겠다는 일정을 세웠는데 이 역시도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의 용량은 총 8GW로 이미 착공돼 건설 중인 신가평변환소로 4GW가, 동서울변환소로 4GW의 전기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동서울변환소 건설이 불가능해지면 당초 계획은 반토막이 나, 4GW의 전기만 옮기게 된다. 한국전력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하남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남시의 행보는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법적 조치가 이뤄질 경우에도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어 송전 문제가 당장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불붙은 배터리 이슈… "요금은 대만 참고해야"
전기가 별탈 없이 운송되면 그때부턴 충전하고 잘 활용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재계는 8월 1일 인천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서 발생한 '전기자동차 화재'와 이에 따라 촉발된 전기 배터리 이슈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배터리는 전기를 보관하는 수단으로, 전기를 어떻게 소비하고 절약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기업들은 최근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용 전력량과 비용을 줄이는 등 '고효율 공정' 방식을 찾고 있다. AI 발전으로 로봇들의 공장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는 현재, 기업들의 각종 공정은 앞으로 더욱 많은 전력을 소비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차원이다.
전기자동차 화재는 아직 명확하게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한 분위기다. 배터리의 과도한 충전이 원인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많지만 반박하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전기자동차 화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배터리관리시스템(BMS·Battery Management System)'이나 '배터리실명제' 등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지만 관련 업계에선 아직 입장차가 크다. 관련해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될 경우 전기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기업들의 사업장에도 변화가 생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론 전기를 공급해서 소비한 후 '비용 문제'가 있다. 전기요금은 매년 오르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도 역시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서 올릴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선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 반도체 기업들을 중심으로 전기 관련 세제감면 혜택을 대폭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많았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짙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대만의 TSMC의 사례를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대만은 TSMC로 하여금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greement)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전력 수요량 경매제도를 운영해 요금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대만전력은 2015년 5월부터 대만 전역의 전력 수요를 관리하기 위해 경매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TSMC가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TSMC 같은 고압, 대량의 전력이 필요한 주요 대기업들은 경매 입찰을 통해 확보한 전력을 되팔 수 있다. 이를 통해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어 기업들엔 유용하다. 만약 경매 입찰 가격이 좀 높게 책정되더라도 PPA에서 전력을 비싸게 팔아 조절하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으로서 지닌 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기 어렵다.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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