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단계: TGV 조립국에서 KTX-산천으로 ‘국산화 시동’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알스톰과의 기술제휴로 1세대 KTX(시속 300km급)를 도입했을 때, 한국은 설계·제어·신호는 외산에 의존하고 조립과 일부 정비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1996년 ‘350km/h급 한국형 고속차량 HSR-350X(G7) 프로젝트’를 시작, 70여 개 산·학·연이 참여해 핵심부품 국산화에 착수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2008년 순수 국내 기술을 토대로 한 KTX-산천이 등장했고, 2010년 상용 운행에 들어가며 고속차량 부품 국산화율 약 87%를 달성했다.

동력분산식 KTX-이음·청룡, 320km 시대 개막
이후 한국은 동력집중식(기관차가 앞에서 끄는 방식)에서 벗어나, 차량 여러 대에 동력을 분산 탑재하는 EMU(동력분산식)로 전환했다. EMU-250(KTX-이음)은 시속 260km급 동력분산식 열차로, 가속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승객 공간도 확대한 차량이다. 2024년 공개된 KTX-청룡(시속 320km급)은 한국형 고속철도 기술의 정점으로, 시속 300km 도달 시간을 기존 KTX-산천보다 약 2분 줄이고, 소음·진동을 줄인 차세대 차량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프랑스·독일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300km 이상 급 자체 고속차량 기술을 확보하고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로 분류된다.

KTCS·ETCS 호환, ‘시스템 수출’까지 가능한 철도 강국
고속철도는 차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열차 제어·신호·관제까지 포함한 ‘시스템’이 핵심이다. 한국은 유럽 공통 신호 규격(ETCS)과 호환되면서도, 국내 독자 신호체계 KTCS(Korean Train Control System)를 구축해 열차-선로-관제센터까지 모두 자국 기술로 설계·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마치 자동차의 내비게이션·도로 인프라·교통관제를 한 나라 기술로 통합 구현하는 것과 같다. 덕분에 한국은 차량+신호+유지보수+운영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패키지 철도 수출’이 가능한 수준에 올라섰다.

우즈베키스탄 첫 수출, K-고속철의 해외 진출 신호탄
2024년 우즈베키스탄은 기존 스페인 탈고(Talgo)를 제치고 한국 현대로템의 KTX-이음 기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7량 1편성(총 6편성, 42량), 약 2,700억 원 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부하라 등 1,216km 구간에 투입될 예정인 이 열차는 핵심부품을 포함해 87% 이상 국내 생산품으로 구성되며, 128개 국내 부품 중소기업이 동반 진출하는 ‘패키지 수출’ 구조를 띤다. 차량 공급뿐 아니라 유지보수·운영 기술 이전도 포함돼 있어, 본격적인 K-고속철도의 글로벌 진출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전국 2~3시간대 생활권, 향후 350km/h 증속까지 준비
국토부와 철도업계는 인천~부산·목포를 2~2시간대 초반에 잇는 전국 고속철도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발 KTX·신규 고속선 정비, KTX-청룡 추가 도입(코레일·SR 합산 30편성 이상 계획)과 함께 일부 구간에서는 350km/h급 증속 실험도 검토 중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지방 간 이동 시간을 크게 단축하고, 경제·물류·관광 등 전반에서 ‘2시간 생활권’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년 만에 ‘기술 식민지’에서 ‘시스템 수출국’으로
정리하면, 한국 고속철도의 지난 20년은 프랑스 기술 의존-조립국에서 시작해, 자체 차량 개발(G7·산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KTX-이음·청룡), 독자 신호체계(KTCS), 첫 해외 수출(우즈벡)까지 이어진 ‘완전한 기술 자립’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설계·제작·운영·유지보수·부품 생태계는 철도산업 전반의 동반 성장과 수출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 이제 KTX는 단순한 고속열차를 넘어, 한국의 기술·외교·산업 경쟁력을 실은 ‘K-철도’의 간판으로 세계 시장을 향해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