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 가면, 일반 휘발유보다 리터당 200원 이상 비싼 '고급 휘발유' 주유기가 있습니다. 왠지 '고급'이라는 단어 때문에, "내 차에 좋은 보약을 먹인다"는 생각으로, 혹은 "더 잘 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한 번쯤 넣어볼까 고민하게 되죠.

하지만, 만약 당신의 차가 이 차가 아니라면, 당신의 그 행동은 자동차 성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그냥 돈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똑같은 행동일 수 있습니다.
'고급'의 정체: '품질'이 아닌 '성격'의 차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충격적인 사실은, '고급 휘발유'가 '일반 휘발유'보다 품질이 더 좋은 기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휘발유의 유일한 차이는, 바로 '옥탄가(Octane Number)'라는 숫자의 높낮이뿐입니다.
옥탄가란?: '불이 잘 붙지 않고, 잘 버티는 정도'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옥탄가가 높을수록, 높은 압력과 온도에서도 제멋대로 폭발하지 않고 잘 견딥니다.
고급 휘발유: 이 '옥탄가'가 높은 휘발유일 뿐입니다.
'이 차'의 정체: '고성능' 터보, 슈퍼차저, 고압축비 엔진

그렇다면, 왜 '잘 버티는' 기름이 필요할까요? 바로, 높은 압력으로 기름을 쥐어짜서 힘을 내는 '고성능' 엔진들 때문입니다.
고성능 엔진의 숙명: 스포츠카나 터보차저가 달린 고성능 엔진들은, 일반 엔진보다 훨씬 더 높은 압력으로 공기와 연료를 압축하여 폭발적인 힘을 냅니다.
'노킹'이라는 심장병: 이때, 옥탄가가 낮은 '일반 휘발유'를 넣으면, 기름이 압축을 견디지 못하고 점화 플러그가 불꽃을 튀기기도 전에 제멋대로 '조기 폭발'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를 '노킹(Knocking)'이라고 부르며, 엔진이 "칼칼칼"하는 소리를 내며 출력이 떨어지고, 심하면 엔진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고급 휘발유의 역할: '고급 휘발유'는, 바로 이 높은 압력을 끝까지 버텨주어, '노킹' 현상 없이 엔진이 제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당신의 차량 설명서나 주유구 덮개에 "고급 휘발유 권장" 또는 "RON 95 이상"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고성능' 차량이라면, 고급 휘발유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일반 차에 '고급유'를 넣으면?

그렇다면, '일반 휘발유' 세팅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자동차에 고급 휘발유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반 엔진은, 옥탄가가 낮은 일반 휘발유 조건에서도 노킹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이런 엔진에 옥탄가가 높은 기름을 넣어준다고 해서, 없던 힘이 갑자기 생겨나거나 연비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고급 휘발유에는 엔진 때를 청소하는 '청정 첨가제'가 조금 더 들어있어, 아주 미미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그 가격 차이를 메울 만큼의 가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고급 휘발유'는,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약'과도 같습니다. 건강한 일반인(일반 차)이 비싼 약을 먹는다고 더 건강해지지 않는 것처럼, 당신의 차가 고성능 차량이 아니라면, 그냥 마음 편히 '일반 휘발유'를 주유하는 것이 당신의 지갑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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