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안에 60억명이 죽는다는 ‘멸종설’ 사실일까?

한겨레 2024. 9. 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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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36) ‘인류 멸종 박람회’ 사건1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2022년 4월 의료진 복장을 한 국제 환경단체 \'멸종 저항\' 소속 활동가들이 들것에 실린 지구 모형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이번 세기 안에 60억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정말 무서워요. 짐 싸서 화성으로 이주해야 할까요? 비밀리에 화성 이주민을 모집하는 기업으로부터 제안이 왔어요. 전 재산을 팔아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리해서라도 가고 싶어요.

무시무시한 ‘인류 멸종’ 제보가 온 날,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에 있었어요. 전 세계 행성 조사반의 ‘홈커밍 데이’로, 모든 요원이 런던 베이커가 221b번지에서 모이는 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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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역에 도착해 버스로 갈아타려고 밖으로 나가니, 거리가 엉망진창이었어요. 워털루 다리를 건너는 버스들이 가질 못하고, 역 앞에서 정체를 빚은 거죠. 홈스와 왓슨은 하는 수 없이 워털루 다리를 걸어서 건너가기로 했죠. 기후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다리를 점령했기 때문이었어요.

시위 참가자들은 워털루 다리 여기저기에 화분을 갖다 놓았어요. 한 참가자가 하얀 분필로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라는 구호를 아스팔트에 쓰고 있었어요. 피켓을 내려놓고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 자는 사람들, 침을 튀기며 연설하는 사람들, 남들이 뭘 하거나 말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었죠.

멸종에 저항하는 사람들

차량 정체에 짜증 난 왓슨이 화분을 옮기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어요.

“다리 위에 꽃집 차리실 거예요?”

“우리는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이라는 신생 조직입니다.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크거나 꽃을 피우기 직전의 나무 47그루를 직접 골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니, 시민들도 따라서 나무를 갖다 놓기 시작했어요. 거리를 되찾은 거예요! 온실가스가 나오는 기다란 굴뚝을 산소를 내뿜는 숲으로 바꾼 거죠!”

어떤 나무는 이미 꽃을 피워 꿀벌을 끌어들였어요. 벌을 무서워하는 홈스와 왓슨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가다 보니, 베이커가 221b번지에 도착했죠.

벨기에의 에르퀼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대위, 미국의 엘러리 퀸, 하와이의 찰리 챈 등이 차례로 나와 기후변화 시대 벌어진 각종 살인사건과 사기와 협잡 그리고 복수와 음모론에 대한 해결 과정에 대해 보고했어요. 최근 가장 잘나가는 엉덩이 탐정과 명탐정 코난은 명탐정 김전일이 주최한 유소년 프로그램에 참석해 얼굴을 보지 못했고요.

홈커밍 데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어요. 구레나룻을 한 한 남성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어요. 이름은 로저 할람, 멸종저항의 공동 창립자라는 직함이 붙어있었죠.

“이번 세기 안에 대량 살상과 기아 등으로 60억 명이 죽습니다. 우리는 지금 멸종의 미래로 향하고 있어요! 과학이 말하는 바입니다.”

왓슨이 고개를 갸웃했어요.

“제보자가 말한 게 저거였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현재 인구가 82억 명인데 60억 명이 죽으면 인류 멸종 수준 아닙니까?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멸종저항은 아까 워털루 다리를 점거한 그 단체 아닌가요?”

‘기후변화’란 무엇일까

신입 기자였을 때입니다. 며칠간 한여름 열대야가 계속되자, 선배가 지시했어요.

“어제 이 선배님의 잠을 설치게 한 열대야가 기후변화 때문인지 아닌지 취재해 기사 쓸 것.”

저는 과학자들한테 전화를 돌려 물어봤어요. 다들 한심하다는 듯 답했죠.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왜 그들은 답하지 않았을까요?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기상과 기후를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하죠.

사람이 하루하루 느끼는 ‘기분’이 날씨라면, 기후는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짧은 시간 시시각각 변화하는 날씨 현상을 ‘기상 현상’ 그리고 이 같은 기상 현상들의 긴 시간 평균적인 상태와 패턴을 ‘기후’라고 하는 거죠. 기상학에서는 일반적으로 30년 평균값으로 기후를 구해요. 보고서마다 다른 기준을 쓰기도 하고요.

그럼, 기후변화는 무엇일까요? 지구가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홀로세)에서 ‘조급하고 불같고 변덕스러운 성격’(인류세)로 변한 거예요. 어떨 때는 열불을 냈다가(폭염), 한 달 동안 화가 가라앉지 않기도 하고(열대야 지속), 어떤 때는 한없이 냉정해요(한파).

날씨가 마음에 안 들면 ‘이게 다 기후변화 탓이야’ 하는데, 정확한 말은 아니죠. 앞에서 봤듯, 기상과 기후는 ‘인과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어제의 열대야는, 불같은 성격을 만든 외부 요인,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루 종일 켜놓아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을 높이는 데 일조한 에어컨 때문이에요.

왜 과학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길 꺼릴까요?

과학적인 연구의 결론은 특정한 환경과 조건 그리고 변수를 정의한 뒤에 나와요. 이를테면, ‘이번 세기 안에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과학적 결론이 나오려면, 멸종의 정의,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최소 개체수, 그러한 개체수가 죽음에 이르는 온도나 해수면 상승의 한계치 등 무수한 항목을 정의해야 해요.

우리는 ‘지구가 뜨거워 → 내가 힘들어 → 인류가 멸종해’ 같은 단순한 로직으로 생각하지만, 과학적 권위는 그처럼 무수한 변수를 생략한 직관에서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기후변화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을 과학적으로 답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이유죠.

또 한 가지, 우리는 과학의 본질을 고려해야 해요.

과학은 ‘진화하는 지식의 총체’예요. 여기서 밑줄 쳐야 할 단어는 ‘진화하는’이죠. 과학은 진리의 유동체에 가까워요. 지금 연구되고 있는 아이디어 중 많은 것들이 나중에 불완전하거나 틀린 것으로 밝혀질 거예요. 진리로 밝혀진 것도 수정이 될 테고요. 과학의 진리는 한시적이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과학은 믿을 수 없어’ 하면서 불가지론자가 되어야 할까요? 그건 아니에요. 과학인 것과 과학이 아닌 것을 판별하는 문해력을 갖추면, 우리는 최대한 진리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요.

과학 지식은 어떻게 생산될까요? 과학자들은 자기의 주장을 실은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해요. 그러면 학술지는 평가위원들에게 검토를 의뢰하고, 일정한 조건을 갖춘 논문을 학술지에 싣죠. 이를 본 다른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비판, 수정의 의견을 내거나 이를 발전한 논문을 같은 과정을 거쳐 학술지에 싣는 거죠. 즉, 과학적 주장은 ‘검증가능한 명제’로 ‘동료 검토’(peer review)를 거쳐 학술지에 실리고 끊임없이 수정되는 특징을 갖습니다.

이러한 동료 검토를 거치지 않은 과학적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반박불가능한 주장은 종교에 가깝죠. 스티븐 호킹이 “1000년 이내에 인간은 멸종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어요. 우주물리학의 대가가 남긴 아주 유명한 말이지만, 학술지를 통한 동료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어요.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홈스가 말했어요.

“인류 멸종이라…어려운 사건의 첫걸음은 가장 권위있고 대다수가 인정하는 집단의 의견을 듣는 게 순서야.”

왓슨이 미소를 지었지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을 말씀하시는군요.”

IPCC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세계 과학자들이 모인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입니다. 수시로 정기 보고서와 특별 보고서를 내는데, 정기 보고서의 경우 1990년 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2023년 6차 보고서까지 냈어요.

IPCC 보고서는 아주 중요해요. 유엔 산하 국제기구와 기후변화 외교 협상에 참고 자료로 활용되거든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IPCC 권력의 핵심에서 일하는 핵인싸 박사에게 화상전화를 걸었어요.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가 하품을 하면서 나타났죠. 왓슨이 물었어요.

“핵인싸 박사님, 홈스 반장과 제가 인류 멸종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IPCC 보고서에 나왔나요?”

“우리가 상정한 시나리오가 네 개인가 다섯 개인가 되는데, 미래에 상정한 위험 사건에 인류 멸종은 없어요. 가만있자, 이건 비밀이니, 누구에게든 말하면 안 됩니다.”

핵인싸 박사가 ‘쉿’을 하면서 전화를 끄려고 했죠. 왓슨이 얼굴을 찌푸렸어요.

“에이~ 보고서 읽어보면 다 나오는 거잖아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단이 2018년 10월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48차 총회에서 채택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이 예상한 최악의 시나리오

IPCC 6차 보고서는 크게 네 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제6차 보고서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네 가지 시나리오를 볼게요.

인류에게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는 SSP1-RCP2.6이에요. 재생에너지 기술 발달로 화석연료 사용이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미래입니다. 2050년까지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해 이번 세기말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상 오르지 않는 경우예요.

두 번째 시나리오는 우리의 노력이 조금 못 미칠 경우예요. SSP2-RCP4.5 시나리오로, 기후변화 완화 및 사회경제 발전 정도를 중간 단계로 가정해요. 이번 세기 중반에도 현재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하면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를 3도 밑으로 잡는 상황이죠.

세 번째 SSP3-RCP7.0 시나리오부터는 크게 걱정되는 상황이에요 기후변화 완화 정책에 각국이 소극적이며, 기술개발 또한 늦어져 기후변화에 취약한 사회구조이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늘어 2100년에 현재 수준의 두 배에 이르며,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는 세기말에 3도를 넘어요.

네 번째는 최악의 시나리오죠. SSP5-RCP8.5 시나리오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는 경로를 상정했어요. 2050년에 현재 수준의 2배에 이르고, 2100년에는 4도를 초과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의 탄소 중독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는 상황, 그러니까 세계 각국이 여전히 산업기술의 빠른 발전에 중심을 두고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미래죠.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 또한 여전하고요.

핵인싸 박사가 말했어요.

“인류 멸종이라…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네 번째 최악의 시나리오이겠지. 홈스, 왓슨 자네들도 많이 읽어 봤잖나?”

홈스와 왓슨은 기습 질문에 얼어붙고 말았어요.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둘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죠. 박사가 말을 이었어요.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번 세기말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가 3.3도에서 5.7도 아닌가. 해수면은 최소 63센티미터에서 최고 1.01미터까지 상승할 거고. 분명히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그 정도로 인류가 사라질까?”

핵인싸 박사가 겁먹지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어요.

“반장님, 이거 보세요!”

왓슨이 노트북을 가리켰어요. 로저 할람이 공유한 페이스북 포스트였어요. ‘인류 멸종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일 것.’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건가?”

“그런 건 아니고 박람회라고 하는데요. 행사명이 ‘인류 멸종 박람회’? 한국 서울의 코엑스에서 열린다고 해요. 인류 멸종 걱정주의자와 준비주의자 그리고 제5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고 하는데요. 로저 할람도 온다고 하는데요. 오우! 일론 머스크도 온대요! 스티븐 호킹은 죽기 전에 영상 메시지를 남겨두고 갔대요!”

“당장 서울로 돌아가자고!”

둘은 런던 히드로공항으로 출발했어요.

*10월7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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