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해군 현대화 사업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서 일본이 뒤처지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모가미급 호위함 8척 수출을 목표로 공들여 왔던 일본이 망설이는 사이, 영국과 이탈리아, 터키가 잇따라 계약을 따내며 시장을 장악해버린 것이죠.
특히 영국 밥콕(Babcock)사가 최근 에로우헤드 140 프리깃함 추가 2척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우리가 안 팔면 다른 나라가 팔 것"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냈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 같습니다.
영국, 40억 파운드 규모 해양 파트너십으로 대박
밥콕은 지난 21일 인도네시아와 40억 파운드(약 7조 9천 억원) 규모의 해양 파트너십 계획에 따른 첫 번째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에로우헤드 140 프리깃함 2척을 추가로 공급하는 것인데, 이로써 인도네시아 해군은 총 4척의 아로헤드 140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밥콕은 이미 2021년 9월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PT PAL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PAL이 국내에서 2척을 건조하도록 했었죠.
1번함은 2025년 12월 진수 예정이며, 이번 추가 계약으로 총 4척 체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영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명확합니다.
자금 조달이 확실했다는 점이죠. 다른 경쟁국들이 제안만 하고 실질적인 금융 패키지를 제시하지 못하는 동안, 영국은 정부 차원의 금융지원을 통해 인도네시아가 실제로 함정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게다가 PAL이 독일 및 터키 기업과 협력해 에로우헤드 140의 설계를 인도네시아 요구사항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면서, 현지 조선산업 육성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이탈리아와 터키도 가세, 시장 점유율 확대
인도네시아 해군 현대화 시장에서 웃고 있는 건 영국만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조선업체 핀칸티에리(Fincantieri)는 2021년 6월 카를로 베르가미니급 프리깃함 6척 건조와 마에스트랄레급 프리깃함 2척 매각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거래는 자금 조달 문제로 난항을 겪었고, 결국 2024년 3월 파올로 타온 디 레벨급 초계함(PPA) 공급 계약으로 수정됐습니다.
계약 규모는 11억 8천만 유로(약 1조 7천억 원)에 달하며, 납기를 단축하기 위해 이탈리아 해군이 발주했던 건조 중인 PPA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하기로 했죠.
이 함정은 2025년 7월 인도네시아 해군에 인수될 예정입니다.

터키 역시 이 경쟁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2025년 7월 터키는 이스탄불급 프리깃함 2척을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PAL이 건조하는 에로우헤드 140 프리깃함에 탑재되는 전투 관리 시스템, 레이더, 센서, VLS(수직발사대), 미사일이 모두 터키제라는 것입니다.
터키는 단순히 함정을 파는 것을 넘어, 핵심 무기체계 공급자로서 인도네시아 해군과 깊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죠.

일본은 왜 뒤처졌나? 4년간의 지지부진
일본은 2021년 3월 인도네시아와 방위장비·기술이전 협정을 체결하며 모가미급 호위함 8척 수출을 목표로 했습니다.
당시 주인도네시아 일본대사 스기겐지가 방위주재관(1등 해령)을 대동하고 프라보워 당시 국방장관(현재 대통령)과 국방부 고위 관료들을 만나 미쓰비시중공업(MHI)으로부터 프리깃함을 판매하기 위한 계약 프로세스를 논의했죠.
2025년 4월에는 인도네시아 주일대사가 "일본과 프리깃함 공동 개발·건조에 관한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당시 이시바 총리와 나카타니 방위상 방문 시에도 이 의제가 논의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협의만 계속될 뿐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습니다.
일본이 망설이는 사이 영국, 이탈리아, 터키는 계약을 따냈고, 인도네시아 해군의 함정 조달 계획은 점차 채워져 갔습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2025년 11월 외무·방위 담당 각료 협의(2+2)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샤프리 국방장관을 요코스카 기지로 초대해 모가미급 호위함을 시찰시켰습니다.
이 자리에서 고이즈미 장관은 "인도네시아와의 방위 협력을 스피드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일본이 방위장비를 이전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팔 것"이라고 위기감을 드러냈죠.
하지만 이미 시장은 경쟁국들에게 넘어간 뒤였습니다.
인도네시아 해군, 이미 포화상태
현재 인도네시아 해군이 확보하거나 확보 예정인 함정을 살펴보면, 일본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에러우헤드 140 프리깃함 4척, 이스탄불급 프리깃함 2척, 파올로 타온 디 레벨급 초계함 2척이 이미 확정됐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스코르펜 에볼브드-풀 LIB 잠수함의 현지 건조가 2026년 6월 개시될 예정이며, 이탈리아 경항모 가리발디 도입에 대한 협의도 진행 중입니다.

이 정도면 중형 해군국가의 전력 증강 계획으로는 상당히 야심찬 수준입니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이미 주요 함정 소요를 충족시킨 상태인 것이죠.
여기에 일본제 전투 관리 시스템이나 레이더를 채용하는 모가미급 호위함이 끼어들 공간이 있을까요?
특히 에로우헤드 140과 이스탄불급 프리깃함에 탑재되는 핵심 무기체계가 모두 터키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해군 입장에서는 정비와 운용의 효율성을 위해 가능한 한 시스템을 통일하고 싶을 테니까요.
금융 패키지가 승부를 갈랐다
일본이 뒤처진 결정적 이유는 금융지원의 부재입니다.
이탈리아, 영국, 터키가 성공한 핵심 요인은 바로 정부계 금융기관을 통한 융자 패키지 제공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당장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서방 국가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수출신용기관(ECA)을 통해 저금리 장기 융자를 제공하며 계약을 따냈죠.

반면 일본은 무기 수출에 특화된 신속한 융자 체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있긴 하지만, 방위장비 수출을 위한 금융지원 체계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입니다.
일본 정부가 무기 수출 3원칙을 방위장비이전 3원칙으로 완화하며 수출 의지를 보였지만, 실제 수출을 뒷받침할 금융 인프라는 따라오지 못한 것이죠.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린다"는 순진한 생각으로는 국제 무기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은 셈입니다.
재도전은 가능할까?
고이즈미 방위상의 발언으로 봐서는 일본이 모가미형 호위함 수출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해군의 주요 함정 소요는 이미 채워졌고, 남은 시장은 크지 않습니다.
만약 일본이 정말로 재도전하려면 JBIC를 통한 강력한 융자 패키지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경쟁국들이 이미 제공하고 있는 수준의 금융지원 없이는 기술적 우수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번 사례가 명확히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시간도 문제입니다. 영국, 이탈리아, 터키는 이미 납품 일정까지 잡혀 있는 상태에서, 일본이 새롭게 끼어들려면 인도네시아를 설득할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기술 우위만으로는 어렵고, 가격 경쟁력이나 추가적인 기술이전, 또는 현지 생산 확대 같은 파격적인 제안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어쨋든 일본 방위산업계는 이러한 지금까지의 관행을 깨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에 무기 수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