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이 또 한 번 사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과거 식음료 중심 기업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탈바꿈했던 두산은 최근 친환경 에너지, AI 로봇, 반도체 소재를 축으로 한 ‘세 번째 성장 스토리’ 구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전통 제조업 기반 위에 미래 산업을 덧입히며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는 평가다.
위기 넘은 두산, 친환경 에너지로 재도약
두산의 출발점은 소비재 산업이었다. OB맥주, 식품, 생활산업 등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과감한 사업 재편을 통해 중공업 중심 그룹으로 체질을 바꿨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를 중심으로 발전설비·플랜트·인프라 사업을 키우며 ‘중후장대 그룹’ 이미지를 구축했다.
지금은 지배력을 상실한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현 HD건설기계), 두산엔진(현 한화엔진)을 포함해 두산밥캣 등 중후장대 명가에 걸맞은 체급을 갖춰갔다.
그러다 2020년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되며 두산그룹은 전례 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때 그룹의 핵심 동력 중 하나인 두산건설의 경영권을 잃게됐으며 두산인프라코어도 매각했다. 자구안 이행 속도를 높 결과 조기에 정상화 반열에 올랐고 당시 두산의 사례는 대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이후 두산은 내실화에 그치지 않고 3차 전환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과거 식음료 사업을 정리한 후 사업구조 재편에 나선 전례가 있고 기존 사업이 존폐 위기에 있는 만큼 추가적인 체질 전환이 불가피했다. 실제 두산에너빌리티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당시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전략 사업의 구조적 전환이 과제로 부상했다. 당시 국내 신규 프로젝트 발주가 끊기면서 원자력, 화력 등의 발전설비를 제작하는 발전부문의 수익이 급감했다.
이같은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흐름에 맞춰 전략 사업 재배치도 이뤄졌다. LNG 발전용 가스터빈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SMR사업(소형모듈원전)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다. 그렇다고 기존 발전플랜트 EPC와 주요 발전기자재 공급망으로서의 DNA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성장 전략 내 우선순위와 자본 배분 측면에서 상대적 비중은 다소 낮아졌다.
또한 2019년 ㈜두산 연료전지 사업부문을 법인화해 출범된 두산퓨얼셀은 수소산업 첨병으로 평가된다. 수소연료전지 시장은 대체로 대규모 초기 자본이 투입되는데 반해 대량 수주 기회가 제한적이어서 수익화가 더딘 편이다. 이와 달리 두산퓨얼셀은 발전용 연료전지 레퍼런스를 축적한 까닭에 적자 산업 내의 성숙 플레이어에 가깝다. 설립 초기부터 지난해 적자를 기록하기 전까지 흑자 구조를 유지했다.

협동로봇 넘어 솔루션 기업으로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을 앞세워 스마트팩토리·물류·서비스 로봇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향후 AI 융합 솔루션 기업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거론된다.
협동로봇 시장은 성장 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최근 들어서는 초기 기대치 대비 확산 속도가 더디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한계에 직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조업 경기 둔화와 고객사의 투자 보수화로 신규 도입이 지연된 데다 제품 차별화가 점차 약해지면서 가격 경쟁 역시 심화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단순 로봇 판매만으로는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렵고 자동화 솔루션·소프트웨어·서비스를 결합한 수익모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두산로보틱스가 작년 7월 원엑시아를 인수한 것도 이같은 시장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원엑시아는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위치한 첨단 자동화 솔루션 회사다. 기존 협동로봇이 로봇 팔(하드웨어) 중심의 제품 판매 성격이었다면 EOL/CMI 자동화 솔루션은 공정 전체를 자동화하는 시스템 사업이다. 협동로봇사업은 경쟁이 심한 반면 솔루션은 설계·유지보수·SI 매출 등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단 점에서 차별화된다.
특히 두산로보틱스가 거점 국가로 꼽는 곳이 북미 지역인데 원엑시아는 이 곳에서 팔레타이징, 박스조립 및 포장 등에 특화된 협동로봇 제조 솔루션을 제공해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선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원엑시아가 제공하는 솔루션은 5~6명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어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로 확장…SK실트론 인수 기대감
두산 전자BG와 두산테스나를 통해 반도체 소재와 테스트 영역을 동시에 확보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 증가는 중장기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최근 SK실트론 인수 추진이 가시화되면서 밸류체인 확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인수가 확정될 경우 웨이퍼부터 기판 소재, 패키징, 테스트로 이어지는 반도체 공급망을 한층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첨단 반도체 시대에 중요성이 높아지는 기판·패키징·테스트 중심 구조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 추산한 SK실트론의 연간 EBITDA(상각전 영업이익)는 1조원 안팎 수준이다. 지난해 ㈜두산의 EBITDA가 약 1조90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SK실트론 편입에 따른 이익 레벨 상향 효과가 예상된다.
또한 전자BG의 경우 2026년부터 2027년까지 총 5315억원 규모의 Capex(자본적지출) 투입이 예상돼 중장기 실적 가시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김수정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