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아닌 오너 리스크에 발목, '사모펀드' 체제 남양유업의 반년
60년 오너 경영 끝낸 남양유업
사모펀드 체제 6개월의 기록
횡령 혐의 고소 당한 홍 전 회장
수백억원 퇴직금 소송도 진행 중
남양유업 상반기 매출 줄어들어
이미지 쇄신 요원하지만…
물러서지 않는 양측 분쟁 지속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쥔 지 반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원식 전 회장은 남양유업에 "440억원대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고, 남양유업 측은 홍 전 회장을 200억원대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수백억원대 소송전이 이어지는 한 남양유업의 경영 정상화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양유업이 '60년 오너경영'의 막을 내린 지 반년이 훌쩍 흘렀지만, 그림자는 쉽게 걷히지 않고 있다.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은 최근 200억원대 횡령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를 새 주인으로 맞은 남양유업이 올 8월 홍 전 회장 등이 201억원 규모의 횡령 및 배임수재 행위를 저질렀다며 고소한 결과다.
해당 사건을 배정받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7일 홍 전 회장의 주거지와 남양유업 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2021년부터 이어진 홍 전 회장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간 경영권 분쟁이 올해 1월 한앤코의 최종 승소로 마무리됐지만, 양측의 소송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참고: 홍 전 회장 일가는 지난 4월 모두 사임했다.]
홍 전 회장이 남양유업에 제기한 퇴직금 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다. 홍 전 회장은 지난 5월 남양유업 측에 443억원 규모의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소송을 제기했다. 홍 전 회장이 요구하는 퇴직금 규모는 남양유업의 자기자본(2023년 6782억원)의 6.54%에 달하는 금액이다. 남양유업 측은 "퇴직금 산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주장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3월 남양유업 감사로 선임된 심혜섭 변호사는 남양유업을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3월 열린 남양유업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보수 한도를 50억원으로 정하는 안건'을 결의했는데, 여기에 최대주주(당시 지분율 51.68%)이자 직접 보수를 받는 이해당사자인 홍 전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한 건 상법 위반이라는 취지였다.[※참고: 상법 제368조 제3항은 "총회의 결의에 관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셀프 보수' 책정을 두고 법원은 "남양유업 정기 주총에서 이뤄진 보수 한도 승인 결의를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이 판결에 따라 남양유업은 퇴직금 산정 절차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양측의 소송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 과제➊ 실적 = 문제는 각종 논란 끝에 경영권을 내려놓은 홍 전 회장이 언론에 언급되는 게 남양유업으로선 좋을 게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쌓인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예컨대 남양유업은 지난 8월 '준법·윤리 경영 강화 쇄신안'을 발표하고, '컴플라이언스 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13년 '대리점 갑질 논란', 2021년 '불가리스 사태' 등으로 분노한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겠다는 거다.
하지만 실적 회복 시그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남양유업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4786억원(이하 누적치)으로 전년 동기 대비(5011억원) 되레 감소했다. 상반기 영업적자 역시 234억원으로 전년 동기(-223억원) 대비 11억원 늘었다.
주력 사업 부문인 우유·분유 시장이 축소하는 만큼 사업 다각화를 꾀해야 하지만 성과가 더디다는 점도 문제다. 경쟁사인 매일유업이 사업 다각화 효과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상반기 매일유업의 유제품(우유·분유) 매출 비중은 60.7%, 음료 등 기타 매출 비중은 39.3%를 기록했다. 사업 다각화의 결과로 매일유업의 매출액은 매년 증가세(2022년 1조6856억원·2023년 1조7830억원)다.
반면 남양유업의 유제품 매출 비중은 70.3%로 높은 수준이다. 당연히 남양유업 대리점주의 어려움도 지속하고 있다. 점주 A씨는 "경영진이 교체된 지 반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실적에서 큰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 과제➋ 주가 = 남양유업이 불씨를 되살려야 하는 건 실적뿐만이 아니다. 홍 전 회장이 한앤컴퍼니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2021년 7월 80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아직 50만원대(10월 17일 57만9000원)에 머물고 있다. 남양유업이 주가 부양책을 내놓음과 동시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소각, 주식 분할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예컨대 남양유업은 지난 6월 24일 NH투자증권과 200억원 규모의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12월 24일까지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9월 23일 기준 매입한 주식은 목표치의 42.29%인 총 1만8082주(주당 평균 매입 가격 53만4143원)다. 9월 19일엔 231억원을 들여 보유하고 있던 보통주 4만269주를 소각했다. 이로써 남양유업의 보통주는 72만주에서 67만9731주로 감소했다.
주식 거래 활성화를 위해 액면 분할도 추진한다. 보통주와 우선주의 1주당 액면가액을 5000원에서 500원으로 10대 1 액면 분할한다. 액면 분할 완료 시 주식 수가 10배 증가해 주식 거래가 활성화할 것이라는 게 남양유업 측의 기대다. 하지만 각종 주가 부양책에도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한앤컴퍼니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인 1월 5일 종가(60만5000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안승호 숭실대(경영학) 교수는 "중요한 건 남양유업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인지 보여주는 '브랜드 재정립'"이라면서 "그러기 위해선 먼저 홍 전 회장과 회사의 갈등이 봉합돼야 하는데 양측 모두 쉽사리 물러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 경영 정상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이리저리 상처를 입은 남양유업은 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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