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혁명' 덕에 슬라이더도 뜨네

최민규 2022. 10. 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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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안과 밖] 구속 상승은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모두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빠른 공을 가장한 변화구들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흔치 않은 공을 구사하는 투수는 희소성의 이익을 본다
빌리 와그너. ⓒAP Photo

올해 KBO리그는 강속구의 시즌이다.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44.2㎞로 역대 최고다. 구속 상승은 2018년 시즌부터 시작됐다. 패스트볼이 빨라지면서 슬라이더가 효과를 내고 있다. 여타 구종에 비해 투구 효과성을 측정하는 구종 가치(PV) 상승이 두드러졌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현재진행형인 현상이다.

패스트볼 ‘구속 혁명’의 원조는 메이저리그다.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2002년부터 패스트볼 구속을 집계해왔다. 2002년 메이저리그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89.0마일이었다. 환산하면 시속 143.2㎞로 올해 KBO 포심 평균보다 떨어진다. 2002년 처음으로 시속 90마일을 넘겼고, 2009년 시속 91.2마일, 2015년 시속 92.1마일, 2019년엔 시속 93.1마일로 소수점 앞자리를 바꿔왔다.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올해는 시속 93.6마일로 역대 최고다. 2002년 메이저리그에서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시속 96마일(154.5㎞)을 넘은 투수는 빌리 와그너 단 한 명이었다. 올해는 무려 202명이다. 패스트볼 중 포심만 따로 분류하면 시속 93.9마일(151.1㎞)이다. 올해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 포심 평균 구속을 넘어서는 한국인 투수는 안우진, 고우석, 조요한 등 여섯 명뿐이다.

뉴욕 메츠의 제이콥 디그롬. ⓒREUTERS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포심을 던지는 투수는 도니미카공화국 출신 오른손 루키 호안 두란(미네소타)이다. 평균 구속이 무려 시속 100.8마일이다. 선발투수로는 2018~2019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2연패한 뉴욕 메츠의 제이콥 디그롬이 시속 99.3마일을 던지고 있다. 환산하면 시속 159.8㎞로 올해 일본 프로야구(NPB)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사사키 로키보다 시속 1.3㎞ 빠르다. PV 기준으로 가장 위력적인 포심을 던지는 투수는 휴스턴의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다. PV 23.7로 전체 1위다. 39세 나이에도 평균 시속 95.1마일 포심을 던지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포심보다 구속이 떨어지지만 무브먼트가 큰 투심 패스트볼 비중이 높다는 게 특징이다. 올해 KBO리그 투심 구사율은 8.9%, NPB에선 5.0%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15.3%에 이른다. 패스트볼 속도 못지않게 무브먼트를 강조해온 야구 문화 차이도 있다. 미국 야구의 패스트볼(Fastball)은 ‘빠른 공’이라는 뜻이다. 이 공을 일본에서 ‘직구’로 번역해 한국에도 수입됐다. 곧게 나아가는 공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투심을 금기시하는 지도자도 있었다.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은 시속 169.1㎞

올해 메이저리그 투심 평균 구속은 시속 93.3마일로 포심 못지않다. 가장 빠른 싱커를 던지는 투수는 뉴욕 양키스의 왼손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이다. 평균 시속 100.3마일을 자랑한다. 채프먼은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진 사나이다. 2010년 8월24일 시속 105.1마일(169.1㎞)짜리 포심을 던져 역대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포심 평균 구속은 2018년부터 두 자릿수로 떨어졌지만 투심은 매년 평균 시속 100마일 이상을 스피드건에 찍고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변화 중 하나는 투심 패스트볼의 퇴조다. 2008~2015년엔 투심 구사율이 매년 20%를 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올해는 15.3%까지 떨어졌다. 포심 비율은 비슷하다. 투심은 ‘싱커(Sinker)’, 즉 떨어지는 공으로도 불린다. 메이저리그는 1990년대 ‘스테로이드 시대’부터 홈런이 급증했다. 그래서 투수들은 땅볼 유도에 유리한 싱커 비중을 높여왔다. 땅볼/뜬공 비율이 중요한 투수 지표로 받아들여진 것도 이 시기부터다. 그러자 타자들은 낮은 공을 걷어올리는 어퍼스윙을 하기 시작했다. 야구는 도전과 응전의 게임이다. 투수들은 이에 대응해 싱커를 줄이고 스트라이크존 높은 쪽으로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는 변화를 줬다.

뉴욕 양키스의 아롤디스 채프먼. ⓒEPA

싱커의 퇴조와 함께 슬라이더가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2018년부터 슬라이더는 PV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효과적인 구종이 됐다. 구사율도 급격히 올라갔다. 2008년 리그 전체 슬라이더 구사율은 12.3%에 그쳤다. 2019년 18.3%로 싱커(15.1%)를 역전했고 올해는 22.3%로 20% 벽을 넘어섰다. 2015년부터 PV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구종이 슬라이더다.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빨라진 포심은 이 기간 PV가 모두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투구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슬라이더가 왕좌에 오른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패스트볼 구속 증가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씨는 “워낙 패스트볼이 빨라지면서 빠른 공처럼 오다 꺾이는 슬라이더가 반사이익을 얻은 셈이다. 예전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느린 횡슬라이더가 오히려 효과적인 구종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뉴욕 메츠 프런트 출신 대니얼 김은 “투구의 물리적 특징이 데이터로 측정되면서 더 효과적인 슬라이더를 가능케 하는 ‘피치 디자인’의 영향도 크다”라고 말했다.

올해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딜런 시즈다. 슬라이더 구종 가치가 29.3으로 1위다. 모든 구종을 통틀어 1위이기도 하다. 올해 최고의 공으로 손색이 없다. 슬라이더를 앞세워 시즈는 데뷔 4년 차에 최고 시즌을 맞고 있다. 가장 빠른 슬라이더를 던지는 선발투수는 역시 디그롬이다. 디그롬의 슬라이더 평균 구속은 시속 93.1마일에 달한다. 구원투수까지 포함하면 필라델피아의 샘 쿤로드가 시속 93.5마일로 가장 빠르다.

빠른 공처럼 오다가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도 슬라이더와 마찬가지로 패스트볼 구속 향상으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구종이다. 올해 전체 구종 가운데 PV 1위는 슬라이더이지만 100구당 PV 1위는 스플리터다. PV/C 0.59로 슬라이더(0.30)를 앞선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부상을 우려해 스플리터를 던지는 투수가 드물다. 올해 전체 투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그친다. KBO리그는 6.4%, 스플리터 또는 포크볼이 투구의 기본으로 통하는 NPB는 10.0%로 차이가 크다.

그런 만큼 스플리터를 던지는 투수는 ‘희소성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급성장한 투수로는 LA 다저스의 오른손 더스틴 메이와 탬파베이의 왼손 셰인 매클라나한이 꼽힌다. 유망주에서 사이영상을 노릴 수준까지 올라왔다. 올해 스플리터 구종 가치 1위가 곤솔린, 2위가 매클라나한이다. 매클라나한의 스플리터는 체인지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공을 잡는 그립은 분명히 스플리터다. 스플리터 구종 가치 상위 8명 가운데 세 명이 NPB 출신인 기쿠치 유세이,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라는 점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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