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을 통해 비로소 조선 식민 지배 문제를 알게 됐다"
"팔레스타인을 통해 저는 일본의 식민주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일본인 가정에서 평범하게 공부하고 대학까지 가서 역사 수업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만나면서 저는 처음으로 조선 식민지 지배의 문제, 재일교포의 문제, 오키나와의 문제, 아이누모시리(일본 홋카이도 선주민 '아이누의 땅')의 문제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 <가자란 무엇인가>(오카 마리 지음·김상운 옮김·두번째테제 펴냄·215쪽)의 저자 오카 마리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교수는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주도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이 벌인 이스라엘 공격은 이스라엘과 서방이 명명한 "테러"가 아닌 "점령군인 이스라엘군에 대한 저항"으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0월7일 이전에 50년 이상의 이스라엘 점령과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으로 불린 16년 이상의 가자지구 봉쇄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의 "시작"을 "테러"로 강조하는 것은 "불편한" 점령 역사를 지우고 이 싸움의 "대의명분"을 가리고자 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민간인을 끌어들이는 작전의 옳고 그름은 엄격하게 따져야 하지만 (10월7일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의) 이 군사 공격 자체는 점령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실행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기를 쓰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며 "조국을 점령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대의명분이 있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이 역사적 맥락이야말로 이스라엘에게 가장 불편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은 이스라엘 주장처럼 지난해 10월7일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며 역사적 맥락을 단절한 채 가자지구 전쟁을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로 테러 집단의 섬멸을 목표로 한 보복"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75년 전부터 서서히 이어져 온 '점진적 집단학살'의 총결산"이라고 본다.
저자는 "현재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식민지 지배의 굴레로부터 해방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섬멸의 폭력을 행사하는 식민지주의 국가 사이의 '식민지 전쟁'이나 다름없"다며 "이 점령이라는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 한,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초기 가자지구에 대한 식량과 연료 반입까지 차단하며 완전 봉쇄한 것을 비롯해 이후에도 충분한 구호품 반입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들어 왔다. 가자지구 주민 대부분이 심각한 기아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스라엘이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병원 습격도 여러 차례 저지른 끝에 의료도 붕괴된 지 오래다. 따라서 전쟁 초기부터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는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저자는 그러나 이 "인도적 위기" 또한 이스라엘 점령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거듭 창출돼 왔고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정치적 문제"임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며 경계감을 표출한다. 그는 16년간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사람과 물자의 반입과 반출이 통제돼 경제기반이 파괴되며 이미 전쟁 전 가자지구 실업률이 40%가 넘었고 주민들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희망을 잃은 가자지구 젊은이들의 자살도 급증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때는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 손으로 개척해 나가는 그런 정치적 주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령과 봉쇄가 계속됨으로써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없으면 오늘을 연명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며 "인도적 위기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자지구,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정치적 문제다. 그런데도 거대한 인도적 위기가 끊임없이 창출됨으로써 인도적 문제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말살하고 조국 해방이라든가 독립 국가라든가 난민의 고향 귀환이라는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게 하려고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창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해 10월20일과 23일,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2주가 지난 상황에서 일본 교토대와 와세다대에서 한 강연을 엮은 것이다. 그러나 전쟁 발발 1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사상자만 늘었을 뿐 본질적인 상황은 같거나 악화되고 있어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가 이미 이스라엘 공격을 "집단학살"로 규정한 지난해 10월20일 무렵 가자지구에선 3700여 명이 숨진 상황이었지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인용한 가자지구 보건부 자료에 의하면 이달 16일 기준 가자지구 사망자는 4만2409명으로 그 10배가 넘는다. 부상자는 9만9153명이다. 전쟁 전 가자지구 인구 220만 명의 2%가 사망한 것이다.
일본인인 저자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점령 문제를 접하며 비로소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밝힌 점은 한국인들의 이목을 끈다. 저자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미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와 그 후속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갖고 있다. 2005년 교토 우토로 지구를 방문한 팔레스타인 배우 줄리아노 메르 카미스는 일제에 징발돼 군사 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된 조선 노동자들이 이후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에서 살던 곳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해 투쟁 중이라는 설명을 듣고 "우리 난민촌에서 난민 1세, 2세 할머니들이 투쟁하는 것과 같다"며 "동아시아 땅에서 우리와 같은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가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은 "식민주의"라며 "그것은 일본 역사의 문제, 일본에 사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강연에서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에 대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것, 일본 정부에도 관련해 항의하는 것 외에 "일본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들었다. 저자는 "일본에도 인종주의, 혐오가 있다. 하마스=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것과 조선학교를 적대시하는 것은 정말 똑같은 구조"라며 "우리가 우리의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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