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치를 할 때[편집실에서]
한국사회에서 대중에게 불신을 많이 받는 직업군을 고르라면 아마 국회의원이 첫 번째로 꼽힐 겁니다. 심지어 국회 안에서도 ‘쓸데없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의 국회의원 1명당 인구수는 17만여명으로 아주 많은 편에 속합니다. 지난해 1월 SBS 취재팀이 OECD국가의 인구수 대비 국회의원 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프랑스는 7만여명, 영국은 4만여명, 이탈리아는 9만여명이었습니다. 나라별 사정을 고려해야겠지만 인구로만 보면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이 계속 나오는 것은 그만큼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또는 대중이 그렇게 여긴다는 의미일 겁니다. 국회의원의 일은 바로 ‘정치’고요.
권모술수, 모략 등을 의미하는 ‘정치질’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에 대한 불신은 심각합니다. 그러나 정치는 이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정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은 다음 달래고 조정해서 타협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사회의 갈등을 조정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바로 정치입니다.
지금 정치가 가장 필요한 분야 중 하나는 연금개혁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곳도 연금개혁입니다. 연금 전문가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지난봄 나온 책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서해문집)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정치의 부재죠. 보험료를 인상하고, 연금액을 조정하고, 지급 대상을 축소하고, 퇴직금을 연금화하는 건 모두 정치의 영역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모두가 연금개혁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누구도 행동하지 않았어요. 정치가 시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설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판단을 미뤄온 대가가 눈앞의 연금재정 위기입니다.”
지난 9월 4일 보건복지부가 ‘연금개혁 추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연금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이후 처음입니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2%로 유지하는 모수개혁 방안이 먼저 눈에 띕니다.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 자동조정 장치 도입도 큰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연금개혁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이제야말로 국회가 정치할 때입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는 앞으로 전개될 ‘연금정치’를 전망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연금개혁을 한 2007년에도 많은 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있었기에, 무엇보다 정치가 작동했기에 개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떨까요. 부디, 모두가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너무 늦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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