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하원 표결 건너뛰고 연금개혁 강행 …프랑스 정국 강대강 대치 속으로
야당 반발… 불신임 투표 준비
파리에서 수천명 항의 시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연금개혁 법안 관련해 의회 표결 없이 정부가 강행처리할 수 있도록 한 헌법 49조 3항을 발동했다. 야당은 정부 불신임 투표 준비에 들어갔다. 파리에서는 반발시위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이날 오후 3시로 예정된 하원의 연금개혁 법안 표결 몇 분 직전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한다고 발표했다. 야당 의원들은 즉각 야유를 퍼부었다. 좌파 정당 연합인 뉘페스 의원들은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항의해 국회 일정이 중단됐다. 일부 의원들은 “64세는 안 된다”고 적힌 피켓을 의사당에서 흔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개혁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재정적,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며 특별헌법 권한 발동의 이유를 밝혔다.
당초 마크롱 대통령은 우파 야당인 공화당을 설득해서 표결을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표 계산 결과 하원 통과가 불확실하다는 계산이 나오자 특별 헌법 권한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연금개혁 법안은 상·하원에서 모두 가결돼야 통과되는데 집권 여당 르네상스는 대선 2주 만에 열린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하원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상원은 이날 최종 연금개혁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93표, 반대 114표, 기권 38표로 가결했다. 법안은 퇴직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화당이 제안한 일을 일찍 시작한 노동자의 경우 조기 퇴직이 가능하고 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워킹맘을 위해 최대 5% 보너스 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은 드골 정부 시절인 1958년 제정됐다. 현재까지 100회 사용됐다. 일반 법안에 대해서는 회기당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지만 예산안과 관련해서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 대통령의 강한 권력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비민주적 헌법 조항으로 평가돼 왔다.
정부가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하면 야당 의원들은 24시간 내 정부 불신임 투표안을 제출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이 아닌 총리와 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이다.불신임 투표안은 하원 의원 10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이튿날 본회의에서 표결한다. 불신임 투표안이통과되지 않아야 법안이 유효하다. 여·야 모두 의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신임 투표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헌법 49조 3항 발동에 대한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논란이 뜨거운 법안을 의회 권력을 무시하는 비민주적 헌법 조항으로 처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24는 헌법 49조 3항 발동을 두고 “연금개혁 찬반 어느 쪽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핵 옵션”이라고 평가했다.
야당 의원들은 연금개혁 법안의 정당성이 훼손됐다고 잇따라 논평을 냈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대통령이 국가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국회에서도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비앙 루셀 공산당 대표는 “이 정부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다섯 번째 공화국에 합당하지 않다. 의회는 끝까지 조롱과 굴욕을 당했다”고 밝혔다.
헌법 49조 3항 발동 소식이 전해지자 파리 등 주요 도시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국회의사당 근처 콩코르드 광장에서는 수천명의 인원이 모여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시위를 벌였다. 콩코르드 광장 집회에 참여한 사미아는 “헌법 49조 3항은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이었다”고 르몽드에 말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경찰은 최루탄 등을 쏴서 시위대를 해산했다. 로이터통신은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마르세유, 보르도, 리옹 등에서도 밤늦게까지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 내무부는 전날 전국에서 310명이 체포됐다고 17일 밝혔다.
노동조합의 두 달간 지속된 연금개혁 반대 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노조는 49조 3항 발동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논평을 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연금개혁 반대 운동이 성과를 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노동총연맹(CGT),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 등 주요 노조는 오는 23일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추가 파업과 행동을 촉구했다.
파리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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