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식 공격의 색다른 재미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 리뷰
왜 맨날 팬티 하나만 입어요?
게이머마다 소울류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의 공격패턴과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대응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어떤 패턴의 공격을 하든 나는 다 알고 있으며, 거기에 맞춰 회피하고 반격할 수 있다’가 될 때까지 적과 함께 맞고 때리기를 반복한다.
‘유다희’양과 수십번 만난 후, 비로소 적 하나에 대한 모든 패턴과 타이밍 파악이 끝났을 때야 비로소 다음 적을 찾으러 간다. 적과 초면이면 일단 어떤 패를 가졌는지 두들겨 맞으면서, 그 패를 모두 확인하고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고통을 즐기는 자체 ‘하드모드’를 통해 게임값의 본전을 뽑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러니 방어구나 무기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거나 맞으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걸 선택하기 때문이다.
‘엘든링’ 이후, 이런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게임이 최근 출시됐다. 바로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인왕’의 뼈대를 이번에는 ‘코에이’의 전공 시리즈인 ‘삼국지’에 이식했다.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들과 함께 요괴를 물리친 ‘안진’ 도노에 이어, 이번에는 삼국시대의 ‘의용병’이 되어 온갖 괴물들과 삼국지의 영웅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다시 우려먹고 본전 뽑을 게임이 또 생긴 나는 즐거운 마음에 또다시 ‘빤스런’을 시작했다.
적립식 공격의 핵심 ‘기세’
‘와룡’의 핵심 전투 시스템을 요약하자면, ‘기세’를 기반으로 한 ‘적립식 공격’이라 할 수 있다. ‘기세’를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재미가 달라진다. 플레이어와 적들은 모두 기세 게이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기세가 밀리면 공격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기세는 적을 공격하거나 적의 공격을 받아쳐서 높일 수 있다. ‘와룡’은 전반적으로 회피나 방어보다는 적극적인 전투를 추구하는 게임이다. 싸움을 피하지 않고 즐겨야만 기세를 높일 수 있고, 적을 쉽게 없앨 수 있다. 물론, 일반 평타 공격만으로도 적의 체력을 깎을 수는 있지만, 적들이 쉽게 맞아주진 않는다.
알만한 게이머들은 이미 알겠지만, 소울류의 게임은 결국 ‘리듬 게임’이다. ‘와룡’에 등장하는 적들 역시 온갖 형태의 ‘때리는 척 하다가 안 때리고, 엇박자에 때려버리기’의 타이밍 비틀기로 덤벼든다. 특히 ‘와룡’은 기본적으로 적의 공격을 회피하거나 구르기로 피하던 게임과는 조금 다르다. 비슷한 게임으로는 ‘세키로’에 가깝다. 적의 공격을 타이밍 맞춰 받아치는 것이 중요하다. 적의 공격패턴과 타이밍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특정 방향으로 구르거나 피할 필요도 없다. 적을 락온 해놓고 ‘받아치기’만 제대로 해줘도 어느새 전투는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다른 게임에서의 ‘패링’은 위험도가 높은 만큼 적을 한 번에 무력화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플레이어 역시 큰 피해를 보는 양날의 검이다. ‘다크소울’의 패링이 묵직한 한방이었다면, ‘와룡’에서의 패링은 가볍고 빠른 연속기에 가깝다. 받아치기에 한번 성공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적이 5번 공격한다고 한다면, 이 5번의 공격을 모두 받아칠 수 있다.
‘적의 공격 - 플레이어의 패링 - 적이 무방비 상태가 됨’이 아니라, ‘적의 공격 - 받아치기 - 적의 이어지는 공격 - 다시 받아치기 - 적의 공격이 끝남 - 받아치기로 쌓은 기세를 활용해 공격’의 식이다. 물론 적의 기세 게이지가 몰려있는 상황이라면, 적의 공격을 무시하고 곧바로 무력화할 수도 있다.
날아오는 화살이나 마법 같은 원거리 공격도 받아칠 수 있다. ‘그럼 모든 패턴과 타이밍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와룡’은 ‘회피’와 ‘방어’도 할 수 있다. 적들의 필살기인 ‘비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공격을 방어할 수 있으며, 방어를 하고 있는 중에도 받아치기를 할 수 있다.
스태미너의 개념도 기세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방어 - 플레이어의 스태미너 소모 - 스태미너 소모로 공격 기회를 잃음’의 페널티가 없다. 적의 공격 패턴을 모르면 일단 막고, 정확하게 파악한 공격에 받아치기만 제대로 하면 된다. 방어로 감소한 기세는 받아치기로 회복할 수 있으니, 플레이어에게 상당히 유리하다. 그동안 원거리 무기를 막는 정도에 그쳤던 그간의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쉽고 친절한 게임이다. 특히 보스전의 경우에는 받아치기로 쌓은 기세를 소모하는 게 공격의 주된 핵심이다 보니, 방어+받아치기라는 거의 사기적인 기술만 제대로 익혀도 보스를 쉽게 클리어할 수 있다.
그만큼 그동안 소울류에 진입장벽을 느꼈던 게이머들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모르는 건 막고, 아는 건 받아치면서 이어지는 템포 빠른 전투의 손맛도 의외로 괜찮다. 물론 기존의 팬들에게는 난이도가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런 게이머들은 나처럼 방어하지 않고 오로지 받아치기만으로 패턴을 맛보는 ‘자체 하드모드’를 선택한다면, 소울류 본연의 고통스러운 맛을 느껴볼 수도 있다.
사기를 올리는 ‘군기’와 ‘표기’
‘와룡’은 기본적인 캐릭터의 레벨도 있지만, 스테이지마다 할당된 ‘사기 랭크’ 시스템이 존재한다. 일종의 스테이지 레벨이다. 적들의 머리 위에는 저마다 숫자가 있는데, 이는 적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주는 수치다. 사기가 높은 적들의 공격력은 더 아프게 들어오고, 파란색 - 노란색 - 빨간색 순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플레이어의 사기는 적들을 쓰러트리고 올릴 수 있다.
적에게 죽으면 사기가 감소하고, 적들이 사용하는 필살기인 ‘비기’에 맞아도 사기가 떨어진다. 대신 ‘비기’를 제대로 받아치면 한번에 기세를 회복하고, 적을 무방비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일단 안죽고, 안맞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적들이 온갖 비틀기 타이밍의 ‘비기’로 공격해오고,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운 ‘히히 약오르지’의 자리에서 원거리 공격을 해온다. 처음 마주하는 스테이지를 모두 한번에 클리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최소한의 사기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스테이지 곳곳에 놓인 ‘군기’와 ‘표기’를 찾으면, 플레이어의 사기 랭크 상한인 ‘불굴 랭크’가 오른다. 특히 군기는 일종의 ‘화톳불’과 같다. 체력을 회복할 수 있고, 또 소모한 아이템을 충전할 수도 있다. 물론 휴식을 하면 스테이지의 적들도 리셋된다. 표기는 ‘군기’와 달리 일회성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랭크 상한을 올릴 수 있다.
게임 장르의 특성상 나뉘는 길도 많다보니, 간혹 길을 잘못 들어 사기가 높은 적들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스테이지에 숨겨진 군기와 표기를 빠트리고 오진 않았나 길을 잘 살펴보는 것이 좋다.
2:1로 덤비면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적의 공격패턴과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여기에 맞춰 대응하는 것을 즐기는 입장에서, 스테이지를 동행하는 영웅들의 친절함은 사실 불편하기만 하다. ‘와룡’은 다양한 삼국지 영웅들이 스테이지를 도와주는 동료로 등장한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적들을 맹렬히 뛰어가서 해결해주는 모습은 고맙지만, 패턴과 리듬을 망가트리는 난잡한 전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입장에서는 귀찮은 존재다. 특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날뛰기 시작하면 갑자기 분위기는 ‘삼국무쌍’이 된다. 여기에 혼자 앞서다가 구해달라고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그 동료를 구해주다가 적의 비기에 맞기라도 한다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와룡’에서는 ‘비겁함’이란게 없다. 특히 서브 스테이지에서는 보스들 역시 주로 짝을 지어서 등장한다. 물론 락온을 바꿔가며 양쪽 공격을 받아치는 재미도 있지만,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 게이머라면 즉시 영웅을 불러내서 머릿수를 맞춰주는 것이 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투’ 근본
전투 시스템 외적인 부분에서는 ‘인왕’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캐릭터 육성은 ‘힘’ ‘민첩’ ‘체력’의 스탯을 ‘오행’으로 바꿨을 뿐이다. 여기에 각 속성에 맞는 무기들이 있어, 특정 속성에 맞는 무기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능력치를 한쪽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각 장비는 재료를 소모해 강화할 수 있고, 무기에 부여된 각종 스탯도 바꿀 수 있다. 세트 아이템은 보유한 장비 개수에 맞춰 각각의 효과가 발동된다.
‘인왕’을 했던 게이머라면 아마 파밍을 위한 빨간색 칼무덤, 수리검과 표창메타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이 있을 것이다. 이번 ‘와룡’은 장비를 맞추기 위한 극도의 파밍이 필요 없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방어+받아치기’로 인해 전투가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장비빨이 없어도, 플레이에 큰 지장은 없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능력치 상승보다는 심리적 안정과 만족감에 가깝다.
장비를 파빙하고 강화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낸 만큼, 다양한 무기들을 사용하면서 공격 모션과 타이밍, 특수 기술들을 살펴보는 쪽에서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인왕’에서 내가 가장 열받았던 부분은 물에 발만 살짝 담갔는데 어이없이 죽어야 하는 것, 그리고 악랄하게 배치해놓은 원거리 적들이었다. 이번 ‘와룡’은 대놓고 짜증 나게 했던 요소들은 모두 걷어냈고, ‘프롬’과는 다른 ‘코에이’만의 스타일을 조금씩 굳혀가려는 모습이 보이는 게임이다. 이 장르라고 해서 굳이 어렵게 만들지도 않았고, 다른 게임처럼 보이려 하기보다는 자기들만의 색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거 꼭 어려워야 해? 쉬워도 재밌을 수 있잖아’의 ‘코에이 만의 기세’를 잘 담아냈다. ‘삼국지’를 40년 가까이 우려낸 ‘코에이’다. 그만큼 삼국지 팬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임이며, 특히 이 장르에 진입장벽을 느꼈던 게이머들도 ‘고통받는 재미’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가장 최신작임에도 오히려 입문작으로 추천할 수 있을 만큼 기존과 다른 색다른 재미의 전투가 담겨있다. 합이 착착 맞는 홍콩 액션영화에 대한 추억이 있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게이머라면 플레이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PS나 XBOX로 플레이하세요!
글/ 더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