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힙하게’…멤버 장례식장서 추모공연 펼친 ‘칠곡할매래퍼’
“무석이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 무석이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
대구 달서구의 한 전문장례식장에서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로 구성된 경북 칠곡 할매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대표곡인 ‘에브리바디해피’가 울려 퍼졌다.
할머니들 앞에는 뒤집어쓴 힙합모자와 헐렁한 티셔츠, 거미 모양의 금속 장신구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서무석 할머니(87)의 영정사진이 놓였다. 힙합 뮤지션 다운 스웩(Swag) 넘치는 모습이었다.
‘우리’ 대신 ‘무석’을 넣은 랩 공연은 서 할머니를 위한 추모 공연이다. 수니와 칠공주라고 쓰인 검은색 셔츠를 맞춰 입은 할머니들은 힙합 뮤지션처럼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으며 연신 랩을 뱉어냈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써니’의 친구들이 춘화의 장례식장에서 눈물보다는 그 시절에 췄던 춤으로 친구를 보내주는 모습이 겹쳤다.
서 할머니는 지난 1월 림프종 혈액암 3기로 3개월 이상 생존하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8월 그룹 활동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이다.
할머니는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지면 그룹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걱정에 가족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열린 ‘한글주간 개막식’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고 이틀 뒤인 6일부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1년간 함께 전국을 무대로 공연을 해왔던 그룹 멤버들도 이때 서 할머니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됐다.
서 할머니와 25년 지기 친구이자 그룹 동료인 이필선 할머니(86)는 공책에 쓴 편지를 영정사진 앞에서 읽었다. 그는 “아프다는 말도 안 하고 혼자 그렇게 가버리니 좋더냐”며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좋아하는 랩 많이 부르고 있거라. 보고싶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니와 칠공주의 음악 선생님인 정우정(54)씨는 투병 사실을 숨기고 공연을 이어온 서 할머니를 추억했다. 서 할머니는 지난 4일 광화문광장 공연이 끝나고 칠곡으로 내려오는 차에서 대뜸 “내가 노래를 한 곡 들려주고 싶은데 들어봐라”며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정씨는 “평소에 매우 점잖으시고 혼자 직접 나서서 노래를 부르신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며 “지금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병원에서 혈액암 판정을 받자마자 할머니의 래퍼 활동을 만류했었다. 하지만 랩을 하며 아이처럼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가슴앓이만 해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장녀 전경숙씨(65)는 “진단을 받은 뒤 보호 차원에서 어머니의 공연을 매번 따라다녔다”며 “너무 즐거워하시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한글을 배우고 삶에 대한 시를 쓰고 그 시를 랩으로 바꾸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평생 누리지 못했던 천국 같은 1년을 보내고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대환영을 받고 가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칠곡군 지천면 황학골에서 태어난 서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등 시대적 상황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이후 칠순이 넘어 칠곡군이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워 가난과 여자라는 성별을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시를 썼다. 이후 ‘수니와 칠공주’의 멤버로 활동하며 각종 방송과 국가보훈부의 ‘보훈아너스 클럽 위원’으로 활동했다.
서 할머니의 발인은 오는 17일 오전 8시30분에 엄수된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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