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당구(PBA) 2026-27시즌 개막전 첫날, 가장 주목받은 경기는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128강 대진표에서 김영원(하림)의 상대는 김규준이었다. 직전 시즌 드림투어(2부)에서 7시즌 만에 1부 무대로 승격한 선수. 지난 3월 월드챔피언십 트로피를 손에 쥔 최연소 챔피언과의 격차는 경력으로도, 성적으로도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이날 경기는 대회 초반 의례적으로 소화되는 '강자 확인전'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당구는 점수판이 닫히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김영원은 만 19세다. 2022-23시즌 챌린지투어(3부)에서 15세로 프로 무대를 밟은 뒤, 드림투어 준우승 2회를 거쳐 1부에 올라왔다. 1부 데뷔 첫 대회 결승, 통산 최연소 우승(17세 23일), 통산 최연소 월드챔피언(18세 4개월 25일). 2시즌 만에 PBA 역사의 기록 세 개를 바꿨다. 나이와 성취의 괴리가 이 정도면, 128강 첫 경기는 당연히 수월할 것이라는 시각이 형성된다.
1세트가 그 기대를 뒷받침했다. 6이닝 만에 15-0. 완봉에 가까운 압도였다. 2세트도 하이런 13점을 얹어 15-8, 스코어는 2-0이 됐다. 이쯤 되면 무난한 승리가 그려진다.

3세트에서 흐름이 끊겼다. 김영원은 3세트 14이닝 동안 4점에 그쳤다. 4-15 완패. 4세트는 더 복잡했다. 초반 7-3 우세를 잡았음에도, 이후 11타석에서 2점만 올리며 역전을 허용했다. 16이닝 끝에 11-15. 세트스코어는 2-2 동점이 됐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간단히 정리하면, 김규준의 전략이 통했다. 경기 초반 김영원의 리듬에 말려들지 않고, 안전한 수비 쿠션을 바탕으로 세트를 길게 끌었다. 4세트 16이닝이라는 숫자가 그것을 보여준다. 당구에서 세트를 길게 가져갈수록 상대의 실수 가능성은 높아진다. 1부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가 구사한 방식치고는 노련했다.
승부치기에서 판이 다시 뒤집혔다.
첫 이닝, 두 선수 모두 2점. 2이닝, 선공을 잡은 김규준이 1점에 머물렀다. 후공 김영원에게 기회가 왔다. 2-3의 상황, 1점을 얻으면 동점, 2점 이상이면 승리. 김영원은 스리뱅크 샷을 시도했고, 정확히 득점했다. 4-3, 경기 종료.

이 장면이 김영원을 단순한 '재능 있는 어린 선수'와 구분 짓는 지점이다. 통산 승부치기 성적은 7승 2패, 승률 77.8%. PBA 정상급 선수들도 승부치기에서는 심리적 부담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트 내내 리듬이 흔들렸던 선수가, 결정적 순간에는 뱅크샷을 선택하고 성공시켰다. 이것이 단순한 운이 아니라는 증거가 7승 2패라는 누적 수치다.
다만 이번 경기에서 3, 4세트를 내리 내준 원인은 따로 분석이 필요하다. 2-0 이후 경기 운영 방식에서 집중도가 낮아진 건지, 아니면 상대의 구체적인 패턴 변화에 적응이 늦었던 건지. 시즌 첫 경기라는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64강 이후 더 강한 상대와 맞붙을 때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일 오후 10시 30분, 김영원의 64강 상대는 원호수다. 두 선수의 PBA 투어 통산 맞대결은 1승 1패. 2부 투어 결승에서는 원호수가 4-3으로 이겼고, 지난 시즌 1부 투어 64강에서는 김영원이 3-1로 설욕했다. 각자 한 번씩 이겼고, 다음 경기가 세 번째 대결이 된다.

원호수는 전날 강상구를 3-0으로 완파하고 컨디션을 점검했다. 김영원은 진땀을 뺐다. 체력 소모도 있고, 심리적 변수도 생겼다. 하지만 지금까지 데이터를 보면, 김영원이 고비를 겪은 직후에 무너진 전례가 없다.
시즌 첫 경기의 불안한 출발이 단순한 적응 과정인지, 아니면 2026-27시즌 전체에 걸쳐 반복될 변수의 예고편인지는 64강에서 가늠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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