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국 우선주의로 만든 관세 장벽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내내 “미국 우선”을 내세우며 자동차와 부품을 무역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 연장선에서 수입 자동차 부품에 최대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내 생산·투자를 늘리는 기업에 한해서만 완화·예외를 인정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겉으로는 자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법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해외 공장에 의존해 북미 시장을 채우던 다국적 완성차 업체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조치였다. 관세 부담을 피하려면 공장을 옮기거나, 미국 내 투자를 크게 늘리라는 강한 압박이었다.

멕시코·아시아 의존이 발목 잡은 미국·일본
이 제도가 연장되자 가장 먼저 흔들린 쪽은 오히려 미국·일본 업체들이었다. GM·포드 등 미국 빅3는 미국 공장도 있지만, 멕시코와 아시아 공장에서 만든 차량과 부품을 역수입해 미국 시장을 채우는 비중이 높다. 일본 업체들 역시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멕시코·동남아 공장에서 들여오는 물량이 적지 않다. 이 구조에서는 미국이 정한 ‘현지 생산·부품 비율’ 기준을 충분히 맞추지 못해, 원가에 15~25%에 이르는 관세를 얹어야 하는 차종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자국 기업을 돕겠다며 만든 규칙이, 정작 그 기업들에 가격 경쟁력 리스크를 안기는 역설을 낳았다.

20년 전 결정이 지금 ‘무기’가 된 현대차
반면 현대차는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을 ‘수출 시장’이 아니라 ‘생산 기지이자 내수 시장’으로 보는 전략을 세웠다. 2004년 앨라배마 공장을 시작으로, 2010년 기아 조지아 공장, 최근에는 전기차 전용 메타플랜트까지 더해 북미에서 연간 100만 대 안팎을 생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동시에 핵심 부품 200여 개를 현지·역내에서 조달하는 비율을 꾸준히 높였다. 이 덕분에 미국 정부가 “현지 생산·부품 비율이 높은 업체만 관세를 완화하겠다”고 기준을 세웠을 때, 현대차는 자연스럽게 수혜 조건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20년 전 ‘먼 길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현지 생산 전략이, 지금은 관세 폭풍을 피하는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 된 셈이다.

빅3·일본이 흔들릴수록 상대적 이익이 커진다
관세 25%는 완성차 가격·마진 구조에서 치명적이다. 같은 세그먼트에서 경쟁하는 모델이 관세로 인해 10~15%만 비싸져도,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대체재를 찾는다. 미국·일본 경쟁사의 일부 차종이 관세 부담을 가격에 전가하거나, 프로모션 여력을 줄이는 동안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은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가격 전략을 유지할 수 있다. 이 효과가 누적되면, 단순히 1~2년의 판매 호조를 넘어 브랜드 선호도·점유율·딜러망 안정성까지 차이를 만든다. “관세 전쟁의 승자는 일본도 유럽도 아닌, 사전에 준비한 한국”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관세 회피를 넘어 ‘미국 내 토종 브랜드’ 이미지까지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질수록, 미국 소비자의 체감 이미지도 바뀐다. 단순 수입차가 아니라 “우리 동네 공장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회사”라는 인식이 쌓이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조지아 공장은 지역 경제의 핵심 고용처로 자리 잡았고, 전기차·배터리·철강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투자는 미국 정치권에게도 ‘나쁜 외국 기업’이 아닌 ‘함께 가야 할 파트너’로 비친다. 미국이 관세·보조금·환경 규제를 무기로 흔들 때마다, 현대차는 오히려 “그럼 더 투자하겠다”며 생산을 키우는 쪽을 택했고, 이는 시간이 갈수록 규제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을 겨냥한 규칙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력을 키우자
트럼프식 관세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한국·일본·유럽을 겨냥한 ‘압박 카드’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미리 현지화 전략을 깔아둔 현대차에 유리한 경기장이 됐다. 규칙을 바꿔도 유연하게 버틸 수 있는 생산·부품·투자 구조를 갖춘 기업만이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
한 번 더 규칙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한국 기업들이 선제적 투자와 현지화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체력과 자율성을 더 키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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