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 놓는 기사들… 택시 절반이 놀고 있다
“가방끈 짧아도 되고 남자·여자도 안 따집니더. 운전만 단디 할 수 있으면 됩니더. 일단 여섯 달만 타보이소!”
17일 오전 부산시 부산시민공원. 법인택시 기사 채용 박람회가 열렸다. 요즘 택시 기사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부산시와 부산시택시운송사업조합이 처음 합동 설명회를 연 것이다.
부산 시내 법인택시 회사 10곳이 부스를 차렸다. 사람들의 눈길을 잡기 위해 깔끔하게 세차한 택시 3대를 전시했다. 택시노조 간부까지 나섰다.
“운전대 함 잡아보소. 부산시랑 회사가 적응하라꼬 달달이 40만원썩(6개월간) 수당도 줍니더.”
임채웅 전국운수서비스산업노조 부산본부 사무국장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이동율 한남교통 대표는 “택시는 144대인데 기사는 75명뿐이라 택시 절반이 논다”며 “경영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박람회장은 썰렁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부스를 찾은 사람은 120명. 그러나 실제 지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배재원 부산시 택시운수과 주무관은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 같다”며 “지하철과 유튜브에도 홍보 영상을 만들어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부산시 법인택시 기사는 2019년 1만649명에서 지난달 5630명으로 5년 새 반 토막이 났다. 법인택시는 총 9500여 대. 사실상 택시 10대 중 4대는 기사가 없어 차고지에 멈춰 선 상황이다.
택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때 젊은 기사들이 대거 배달 업계로 빠져나간 데다 월급도 300만원 안팎으로 적어 기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에는 택시 잡기 어렵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오는데 (택시 수요가 높은) 연말이 다가와 걱정”이라고 했다.
문 닫는 택시 회사도 나오고 있다. 택시 업계 관계자는 “2022년 60년 넘게 영업해온 유명 택시 회사가 쓰러졌고, 지금도 2~3곳은 사실상 폐업 상태라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고 했다.
택시 기사 모시느라 머리가 아픈 것은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아예 외국인 택시 기사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인력난이 심각한 택시에도 외국인을 투입하려는 것이다.
서울연구원은 지난달 작성한 ‘운수업계 외국인 인력 도입 방안’ 보고서에서 “서울 택시가 정상 운행하려면 기사 4만명이 더 필요한데 현재 상황에선 추가 채용이 불가능하다”며 “외국인 택시 기사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법인택시를 정상 운행하려면 교대 근무를 고려해 택시 1대당 택시 기사가 2명 이상 돼야 한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현지에서 한국어와 운전 교육을 받게 한 뒤 택시 회사와 연결해주자고 연구원은 제안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비자 문제가 걸린다. 연구원은 “현재 H-2(방문취업)나 F-4(재외동포) 비자를 가진 외국인만 택시를 몰 수 있는데 이를 필리핀 가사관리사처럼 E-9(비전문취업) 비자를 가진 외국인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시민도 만만치 않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최모(44)씨는 “택시를 탔는데 외국인 기사가 운전하면 불안할 것 같다”며 “말도 안 통하고 길도 잘 모를 것 아니냐”고 했다.
택시 업계는 외국인 기사 도입에 긍정적이다. 김태훈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 부이사장은 “시범 사업이라도 해보면 좋겠다”며 “우리나라 사람과 외모가 비슷한 몽골인부터 우선 검토해보자”고 했다.
이상욱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서울시에서 받은 ‘법인택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3만527명이던 서울시 법인택시 기사 수는 지난달 2만171명으로 5년 새 1만356명(34%) 감소했다. 같은 기간 법인택시는 총 2만2603대로 변화가 없었다.
이 시의원은 “법인택시가 정상화돼야 출퇴근길 시민 불편도 완화할 수 있다”며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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