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 쏘고 그물 덮고 드론 띄우고…기발한 거목 탐구법 [ESC]
30m 나무들 빽빽한 열대우림 속
나뭇잎 채집에 갖은 묘수 동원
눈높이를 맞추는 일의 다정함
거대한 나무는 어떻게 채집할까? 한국에서는 식물채집 때 크게 고민한 적 없는 질문이다. 나무가 열대우림의 나무만큼 크지 않고 밀집되어 있지 않아 쉽게 방법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석사 때 처음 열대우림의 식물을 채집하면서 그 질문에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열대우림에서였는데, 그때는 한국에서도 종종 썼던 고절기를 이용해 높이 있는 가지를 잘랐다. 고절기는 낚싯대처럼 늘릴 수 있는 가위로 금속 봉으로 되어 무겁고 최대한으로 늘리면 매우 휘청거려 그 끝에 달린 가위를 가지에 정확히 가져다 대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힘이 부족해서 고절기를 이용한 식물채집엔 영 소질이 없었다. 게다가 고절기는 최대한으로 늘려도 거대한 열대우림에서 역부족이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나무를 잘 타는 현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숲속에서 열매나 약초를 채집하는 사람이었는데 외국인들을 만난다고 양복을 입고 와서 우리를 웃게 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그의 예의에 고마웠다. 그 등반가는 양복을 입고도 약초 바구니를 등에 지고 맨발로 빠르게 나무를 타서 감탄을 자아냈다. 아마존에 가기 전까지 열대우림의 큰 나무를 채집하는 방법 중 내가 경험해 본 건 고절기와 나무 등반가가 다였다. 이론적으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현미경 대신 쌍안경 쓰게 될 줄이야
이번 아마존 열대우림 탐험에서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흥미로운 방법들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현지 브라질 식물학자들과 탐험했을 때 그들은 몇 가지 간단하고 고전적인 방법으로 경이롭게 임무를 수행했다. 아마존의 나무들은 30m로 매우 높고 빽빽하게 밀집되어 나무 아래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건 나무 기둥뿐이다. 만약 손이 닿는 곳에 나무 기둥에서 뻗어 나온 작은 가지와 잎사귀가 있다면 그걸 채집해 식물 종을 알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또한 나무 기둥과 주변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어린나무와 기둥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나무에 달라붙어 사는 착생식물이나 기생식물이 복잡하게 함께 자라고 있어 어떤 잎사귀가 그 나무의 것인지 헷갈리기 쉬웠다. 그래서 나무 기둥의 표면 질감과 무늬를 잘 구별하는 게 중요한데 그마저도 이끼나 지의류가 촘촘히 덮거나 무늬처럼 자라나 알아보기 힘들 때도 있었다.
현지 식물학자들은 정글도라 불리는 팔 길이 정도의 긴 칼로 나무 기둥 일부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냈다. 열대우림의 나무는 상처를 내면 특수한 수지나 수액을 분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고무는 고무나무에서 분비된 흰 수지로 만들어진다. 나무는 다양한 색, 투명도, 점도를 가진 진액을 냈다. 그 진액과 나무의 나이테에 따른 색, 결을 확인하여 기록하는 게 종 구별에 중요했다.
나무 기둥에서 얻은 나무 조각으로는 정보가 부족해 나뭇잎을 확인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건 꽃과 열매이지만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에 위치하기에 그것을 확인하기란 불가능했다. 땅에 떨어진 꽃과 열매도 많지만 빽빽한 밀림에서 그것이 어느 나무에서 온 것인지 알아내긴 어렵다. 식물학자들은 쌍안경을 이용해 나무 기둥을 따라 올려다보며 나뭇가지 끝을 찾아내고 거기에 달린 나뭇잎을 관찰했다.
나도 쌍안경을 빌려서 나뭇잎을 살펴보았으나 하늘을 메운 나뭇잎들 사이에서 내가 알고자 하는 나무의 나뭇잎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높은 곳에 달린 나뭇잎들은 모두 비슷해 보였고 크기를 예측하기 어려웠으며 햇빛이 역광으로 비춰 시커멓게 보여 온전한 한 개의 형태를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현미경으로만 잎을 많이 관찰했지, 쌍안경으로 잎을 관찰해야 할 줄이야.
이후의 과정은 더 경이로웠다. 새총으로 작은 돌을 쏘아 한두 장의 나뭇잎을 맞춰 떨어뜨린다. 바둑돌만 한 작은 돌로 나뭇잎을, 정확히는 잎자루를 맞춰 온전한 나뭇잎을 얻는다. 하늘에 얼기설기 얽힌 여러 종류의 나뭇가지와 겹겹이 층을 이룬 나뭇잎 중에 원하는 나무의 나뭇잎을 맞춰 떨어뜨린다는 게 내겐 신기에 가깝게 보였다. 식물학자들은 나뭇잎이 팔랑거리며 떨어질 때 눈을 떼지 않고 빽빽하고 험한 숲을 헤쳐나가 나뭇잎을 잡아챘다. 나뭇잎이 멀리 떨어져 놓치게 되면 그 이후는 더 놀라웠다. 가을에 낙엽이 지는 온대지역과 달리 열대우림에는 1년 내내 나뭇잎이 떨어진다. 갈색 낙엽은 물론 비바람이나 동물에 의해 갓 떨어진 초록색 잎도 가득해서 방금 떨어진 나뭇잎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매번 정확하게 자신들이 떨어뜨린 나뭇잎을 주워왔고 이름을 맞췄다.
평화롭고 거대한 생명체의 경이로움
미국에서 온 생태학 연구팀을 도와 열대우림에 들어갔을 때는 다른 방법으로 식물을 채집했다. 그 연구팀은 광합성을 측정하기 위해 충분한 크기의 가지를 채집해야 해서 현지 나무 등반가를 고용했다. 아마존의 나무는 거대해서 등반가는 나무를 올라가서도 고절기를 이용해 가지를 채집했다. 연구자들은 드론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드론은 아래쪽에 로봇 팔과 회전식 톱이 달려있어 가지를 붙잡고 썰어냈다. 그들은 울창한 숲 때문에 종종 드론을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작은 드론을 잃어버렸는데 운이 좋게도 한 연구자가 우연히 숲속에서 그것을 찾아내 주워왔다.
드론이 나뭇가지를 가져오는 걸 구경하며 우리는 다른 채집 방법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열기구를 타고 숲 위를 날아다니며 채집하는 방법과 숲 위에 그물을 깔아 그 위를 기어 다니며 식물을 채집하는 방법을 모두 경험해보고 싶어 했다. 얘기를 나누며 나보다 큰 나무를 마주하려는 전 세계 식물학자들의 노력이 귀엽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모두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미국으로 돌아와 정원에 자라고 있는 스트로브잣나무 아래에서 이 글을 쓰며 새삼 이 평화롭고 거대한 생명체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나무를 알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늘 아름다울 것이다.
글·사진 신혜우 식물분류학자
미국 스미스소니언에서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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