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순환경제사회’ 꿈꾼다면 ‘수리받을 권리’부터

문준영 기자 2025. 10. 3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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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도시포럼] '새 제품 구매' 떠미는 현실
'수리할 권리' 보장하기 위한 세부 정책 절실
30일 열린 순환경제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지혜 한국환경연구원 순환경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제주의소리

[기사보강=3일 9:00]'제주라는 특수성 상 A/S업체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다. 타 지역의 A/S센터를 이용할 경우 운송비 부담이 크다.' 
'제주시새활용센터의 설문조사 결과 도민 46%가 타지역에 수리를 맡긴 경험이 있다.'
'수리하기는 어렵고, 새롭고 싼 제품들은 넘쳐나고,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대안이?'

30일 제주소통협력센터에서 열린 순환경제도시포럼에서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수리권)'가 집중 논의됐다. 폐기물 과포화에 시달리는 제주지역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순환경제'라는 방향성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발표에 나선 조지혜 한국환경연구원 순환경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수리권'이 세계적 흐름으로 떠오른 현실을 진단했다. 

조 위원은 "소비자들이 아무리 수리를 하고 싶더라도 제품이 수리하기가 정말 힘들다면 어렵다. 제품 설계 단계부터 수리 편의성을 고려해서 생산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리권은 순환경제의 핵심으로 산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게임 체인저"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조 위원은 "국제적으로 EU와 미국을 비롯해 수리권을 보장하기 위한 입법화가 이뤄졌다"며 "EU는 수리가능성을 요구사항으로 두는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을 운영 중이다. 기존의 에코디자인 지침보다 더 강화돼 모든 회원국에게 적용되는 일관된 규정"이라고 말했다.

또 수리비용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EU에서는 수리 바우처 등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으며,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중고 부품과 호환 부품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등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 제공을 보장하는 법안이 작년 통과된 것이 대표적이라고 소개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은 포괄적인 방향성 제시와 정보 제공 정도로 한정돼 있는 만큼 "기업에서 준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제시하고, 제도별 시행 시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수리권 관련 조항 시행령이 2025년 1월부터 시행됐는데 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해나가기 위해서는 각 조항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한 후속조치가 시급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밖에도 수리 용이성 우수 제품을 위한 정책적 지원, 수리 용이성 관련 평가 항목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평가 인증 기준 개선, 독립 수리업체를 위한 지원 강화, 리페어 카페(Repair Cafe) 확산 등을 제안했다.
30일 제주시,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제주시새활용센터, 제주탄소중립지원센터 주최로 열린 순환경제포럼. ⓒ제주의소리

올해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한 남준희 굿바이카 대표는 전기차의 급격한 보급속도에 비해 수리역량 구축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남 대표는 "전기차 보급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수리인력 양성, 수리용 부품 보급, 수리용 장비 개발 등은 매우 더디다"며 "이는 전기차 제조사들이 신모델 개발과 판매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구매자의 수리권은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앞으로 전기차들이 노후화될수록 전기차의 수리권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해서 양산하는, 상용화하는 산업은 현재 작동되지 않고 있다"며 "전기차 수리용 중고 부품 공급의 인프라가 형성되지 않았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부품 숫자는 적으나 더 비싸며, 수리용 신품 공급이 원활치 않고, 상태평가 기법도 개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상식 한국소비자원 전문위원은 "국내의 수리권 부분이 너무 포괄적이고 방향만 정해놓은 상황"이라며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몇 년 지나도 폐기하지 않고 수리할 수 있는 권리', '자가수리를 할 수 있는 권리', '공식수리센터'와 같은 합의까지 나아가기에는 먼 상태"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기업 뿐 아니라 정부나 소비자 쪽에서 많이 제안도 하고 협조를 받아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무 제주탄소중립지원센터 전문연구위원은 추진중인 자발적 탄소시장과 수리권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위원은 "제품을 수리함으로서 얼마만큼의 탄소를 감축했는지 산출하고,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이 있다"며 "수리권으로 인해 감축되는 탄소량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수리권을 확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30일 제주시,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제주시새활용센터, 제주탄소중립지원센터 주최로 열린 순환경제포럼. ⓒ제주의소리

차용석 제주인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제품들이 소량화, 경량화 되면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경우 분해 자체가 안되는 제품이 많아졌다"며 "제품을 쉽게 버리는 게 자본시장이 굴러가는 원리다. 결국 (제도적으로)강제화되지 않는 이상 (수리권 보장은)어렵다"고 강조했다.

장훈 후니패밀리 대표는 "제주에는 전자 폐기물 전문업체가 없어서 분리된 제품을 육지로 보내는데 그 과정에서 물류비가 발생하는 등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순환경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공임수리 인증 제도가 도입되면 사설 수리점을 더욱 안심하고 이용하게 될 것"이라며 "수리는 단순한 고장을 고치는 행위가 아니라 가계 부담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리페어카페를 운영하며 '일회용 사회에 저항하는 수리공동체'로 널리 알려진 수리상점 곰손의 강희영 대표는 제주지역에 △도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리 아카데미의 지속적 운영 △오일시장 일정에 맞춰 운영되는 제주 순환형 이동형 수리카페 도입 △부품과 관련해 공동구매의 장 만들기 등을 제안했다.

강 대표는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 없는 세상을 함께 고쳐보자"며 "제주에서부터 그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류은화 제주시새활용센터장은 "순환경제 시대의 새활용은 폐기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재활용과 제품 자체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재사용, 수리를 포함하고 있다"며 "자가수리에 관심있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도민들의 수리에 대한 인식조사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번 포럼을 계기로 도내 지속가능한 수리문화 확산을 위해 행정, 기업, 소비자, 환경단체가 함께 구체화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30일 제주시,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제주시새활용센터, 제주탄소중립지원센터 주최로 열린 순환경제포럼.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