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EU, 미국 등쌀에 본의 아니게 다시 가까워지나?
[최수정의 유럽 외교전]
혼란에 빠진 유럽연합(EU) 수뇌부
러-우전쟁 종전 관리, 기후대응 대책 등
곳곳에서 유럽 이익 관철 쉽지 않을 듯
유럽은 다시 중국으로..돌파구 찾을 듯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전세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트럼프 당선자가 유세기간 말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종식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예상으로 유럽은 대응방안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또 무역분야에서 EU산 제품에 대해 미국이 관세를 올리겠다고 예고한데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트럼프 당선이후 EU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지를 살펴본다.
첫째, 유럽은 러-우전쟁 '일방적 종전' 수용 쉽지 않다
바이든 정부시절 EU는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부 유럽 정치권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EU의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러-우 전쟁의 휴전이나 종전 이후 러시아의 팽창이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때문에 이 시점의 일방적 휴전 또는 종전 유도는 또 다른 비극을 유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EU 이사회에서 늘 미운오리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지원을 반대하는 피터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발언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었다.
그러나 지금 트럼프가 당선된 상황에서는 미국을 제외한 NATO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큰 문제다. 지원 중단을 둘러싸고 매우 큰 갈등이 예상된다. 어떤 식으로 전쟁을 중단할 것이냐 그 방법을 놓고 우크라이나와 서유럽이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 자명하다.
미 대선 전인 10월 초 NATO 전 사무총장인 옌스 스톨텐베르크는 조기 휴전 또는 전쟁종료에 대한 구상으로, 우크라이나에게 일부 영토 포기와 함께 NATO 회원국 가입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트럼프 역시 러시아의 주장을 수용할 수 있어 스톨텐베르크의 제안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지난 6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자의 측근들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20년 유예안'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안은 현 전선 동결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상실한 20% 영토에서의 비무장지대화(化)가 포함되어 있다. 즉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국경 밖으로 빼내되 상실한 영토에 대한 우크라이나 귀속도 허용하지 않는 선에서 양측의 무력사용행위를 동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에는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과 관련한 어떠한 안전보장 체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우크라이나의 전쟁복구비용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트럼프측이 제안하는 전쟁종결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미국의 추가적인 무기공급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미국의 지원이 끊어지면 유럽이 대신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역량이 될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가 추구하고 있는 EU 및 NATO 가입 중에서 EU 가입은 가능할지 몰라도 NATO 가입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EU가 바로 우크라이나에게 회원국 자격을 부여할 수도 없다. 보통 회원국 후보가 되면 평균 5년 정도의 협상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역량을 입증하고 EU가 원하는 수준의 개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쟁 종료 후 5년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EU에도 NATO에도 가입하지 못한 채 당장 영토의 20%를 상실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약소국의 설움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둘째, 트럼프식 기후대응정책 유럽에겐 협박이다
바이든 시대에는 미국과 EU가 서로 협력하며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EU가 추구하는 미래전략인 기후위기 대응에 나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취임하면 글로벌 기후협정(일명 파리협정)의 재탈퇴가 예상된다. 유럽이 주축이 되어 추구하고 있는 기후위기대응조치는 곧장 미국없이 운영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정확히는 탈퇴의사 기탁 후 1년이 경과해야 그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2025년 1월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을 발동한다 해도 그 다음해인 2026년부터 조약의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EU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만큼, 파리협정 재탈퇴와 함께 글로벌에너지 패러다임을 다시 화석연료 중심으로 변경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유럽 클린테크 기업들 상당수는 2024년 미국 청정에너지 프로젝트를 취소하거나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생산방식에서 저탄소에너지 투자에 대한 정부 지원이 사라진다면 사실상 EU가 주축이 되어 운영 중인 탄소시장의 위상 또한 위태로와질 가능성이 높다. 태양열, 풍력 등 친환경에너지 생산에 투자해 온 유럽은 새로운 종류의 위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친환경에너지의 생산단가가 여전히 높은 와중에 트럼프식 화석연료로의 회귀(원자력 에너지 포함)는 산업경쟁력 자체에 대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엔이나 EU가 전세계 국가들에게 화석연료는 과거의 유산이며, 미래세대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봤자 과연 얼마나 그들이 똘똘 뭉쳐 트럼프식 에너지 접근법을 파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미 언론을 통해 언급되었듯이 트럼프는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을 적극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지난 8일 로이터 통신은 EU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발표가 있자 바로 미국의 셰일가스 수입을 늘릴 것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2021년 앙헬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트럼프는 강한 어조로 "독일이 추진하던 노르트스트림(Nordstream) 파이프라인 사업은 매우 위험하며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당시 메르켈 총리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독일과 미국의 에너지 갈등이 다시 재현된다면 트럼프는 독일에게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면 다시 노르트스트림을 가동할 것인가?”라고 반드시 물을 것이다.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 한 개는 파괴되어 보수에 상당기간이 걸린다고 하나 여전히 다른 하나는 살아 있다. 독일의 경제회복이 더딘 이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격의 급등이 독일에 미친 악영향이 크다. 그런 면에서 독일은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인한 글로벌 탄소시장의 후퇴를 우려하면서도 러-우 전쟁의 종전이 가져다주는 러시아 가스 재도입 유혹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셋째, 그래서 EU는 다시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다
유럽은 코로나 팬데믹 위기가 끝나자마자 러-우 전쟁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U를 포함하여 미국 외 모든 국가들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EU는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로부터 싼 천연가스를 공급받지 못하면서 그 어려움은 어느 곳보다 심각했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GDP 성장률은 2022년 1.8%에서 2023년 -0.3%로 급감했으며, 올해도 0.15%로 예상되고 있다.
독일은 한국과 유사하게 수출형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로 수출 수익이 줄어들면 당연히 국가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유로화의 금리 인상, 그리고 올해부터 가속화된 대중국 무역정책 변화는 독일 기업들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EU의 대중국투자 중 독일의 비중은 2022년 71%, 2023년 62%, 2024년 상반기 57%로 나타난다. 비록 그 비중은 낮아졌지만 절대액이 독일기업의 중국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23년부터 공식적으로 독일 기업들을 상대로 대중국투자를 제고할 것을 경고해왔다. 그러나 재중 독일상공회의소는 중국투자 독일기업들 대부분이 중국외 지역으로 위험을 분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이유로 중국시장을 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60% 이상의 고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EU나 한국의 경우 기본적인 관세 10~20%가 추가 부과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관세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중국은 그나마 우호저인 관계인 유럽에 더욱 정성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EU가 중국 전기차에 대해 35%의 고관세를 부과할 것을 예고하고 있지만, EU 입장에서나 중국입장에서나 미국의 일방주의적 조치에 대해 반감을 가질 상황이 올 것이다. 지난 5일자 폴리티코(www.politico.com)는 이미 중국 지도부가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미 외교에서 어려움에 처한 중국입장에서 유럽은 항상 돌파구 역할을 했다. 유럽 또한 중국의 거대시장이 갖는 매력, 다자주의 접근을 선호하는 성향 등에 따라 중국과의 접근을 닫은 적이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끊을 경우 유럽 나름대로 지원책을 찾아나설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위해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비동맹주의 국가들의 영향력을 이용할 가능성이다.
유럽이 지금까지 공을 들여온 국제사회의 규범주의, 다자협력체제, 전지구적 기후변화대응은 미국이 협조하지 않는다해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유럽은 자신들의 가치를 존중해줄 국가들과의 연합을 위해 새로운 협력 동반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만약 중국이라면 유럽은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 역시 미국과 반목하는 가운데 새로운 리더십의 원형을 유럽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하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우선주의' 전략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각 국가와 지역협의체들은 각각 자신들의 이익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협력동반자를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러-우 전쟁의 종결도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이루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쥔 패권국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국제사회는 193개국의 주권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미국이 유엔에서 행사할 수 있는 표는 1표일 뿐이다. 국가들의 부침이 있겠지만, 모든 국가들이 미국 때문에 파산한다든지, 미국의 식민지로 전략해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국가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이합집산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2기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어떤 식으로든 버텨낼 것이다. 희망을 품고서든, 절망에 눌려서든.
※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