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 외국서 태어났으면…" 22년 함께한 김혜자의 찬사 [스토리후]
[편집자주] 뉴스와 이슈 속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뉴스와 이슈를 짚어봅니다.
배우 김수미(본명 김영옥)가 25일 오전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개성 넘치는 외모로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 엄니' 역을 푸근하게 소화해냈던 연기계의 큰 별이 졌다.
경찰에 따르면 고(故) 김수미는 이날 아침 심정지가 발생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 판정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 5월 여러 공연과 방송 일정을 소화하다 피로 누적으로 병원에 입원, 회복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김수미는 1949년 10월 24일 전북 군산의 말랭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오남매 중 막내였던 김수미는 군산국민학교(현 군산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서울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8세에 아버지를 여읜 김수미는 부친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김수미는 자신이 서울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며 "어릴 때 고구마 밭이 우리 일곱 식구의 생계였는데, 아버지가 그 밭을 몽땅 팔아서 내 서울 방을 얻어줬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인은 지난 5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부친을 그리워했다. 김수미는 "아버지께서는 늘 내가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용기를 주셨다"며 "그때 (서울에서 학교 다니며) 읽었던 책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회상했다.
김수미는 "내가 겨울방학 때 (군산에) 내려오면 뱃짐을 싣고 나르는 선창가에 가 보라고 했다"며 "그곳에 가면 아버지가 비료 포대를 나르고 계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산 선창가에서 겨울 칼바람을 이겨내며 새끼를 가르치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김수미는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합격했으나 진학에는 실패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던 아버지가 떠나면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
이후 김수미는 만 21세 나이로 MBC 공채 3기 탤런트 시험에 도전했고, 당당히 합격해 1970년 10월 브라운관 입성에 성공했다.
이국적인 외모 탓에 데뷔 초 많은 배역을 얻지 못한 김수미는 한동안 무명 생활을 이어갔다. 방송국에선 그를 드라마보다 먼저 예능 프로그램에 내보냈고, 김수미는 △오늘의 요리(1982~1985) △토요일 정보 총집합(1987~1989) 등에서 진행을 맡았다.
데뷔 10년 차가 됐을 때 김수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작품과 만났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MBC의 대표 드라마 '전원일기'가 그 작품이었다. 김수미는 당시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시골의 할머니를 연기했다.
작품 속 아들 '일용' 역의 배우 박은수보다 김수미의 나이가 두 살 어렸다. 하지만 김수미는 치열한 캐릭터 분석을 통해 '일용 엄니'로 완벽하게 변신했고, 드라마의 대성공을 이끌며 무려 22년이나 같은 배역을 연기하게 됐다.
1986년 김수미는 연기자에게 최고의 상이라고 할 수 있는 'MBC 연기대상'을 품에 안았다. 당시 그는 '전원일기'에서의 활약뿐 아니라 주말 드라마 '남자의 계절'에서도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김수미의 배역이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는 점이다. 김수미는 조연으로서 연기대상을 받은 최초의 배우였다. TV 채널 수가 지금보다 현저히 적고, OTT 서비스도 없는 시대에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이었다.
김수미와 '전원일기'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김혜자는 "(김수미는)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됐을 것"이라며 "너무 많은 걸 가진 배우인데 (시대상 때문에) 그를 표현해 줄 수 있는 배역이 없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2000년 이후 김수미는 코미디 연기의 달인이자 욕 연기의 대가로 변신했다. 그 계기는 2005년 영화 '마파도'와 2006년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흥행이었다. 두 작품을 통해 김수미는 젊은 세대에게 '친근한 욕쟁이 할머니' 이미지로 다가가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 같은 이미지를 앞세운 김수미는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이끌었고, 2015년에는 '전국의 욕 달인들이 모여 TV쇼에서 대결한다'는 내용의 영화 '헬머니' 단독 주연을 맡기도 했다.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는 목적의 예능 분야에서도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김수미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연기 외에도 '요리'가 있었다. 연예계에서 뛰어난 손맛으로 유명했던 그는 2005년 자기 이름을 내건 '김수미 간장게장' 판매에 나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그는 게장뿐 아니라 김치, 젓갈 등을 제조 및 판매하는 업체 나팔꽃F&B를 설립해 대중에게 사업가 면모도 보여줬다. 2018년에는 요리 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을 진행하기도 했다.
1970년 데뷔 이후 54년이란 세월 동안 푸근한 일용 엄니,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인 다정한 어머니, 무섭지만 친근한 욕쟁이 할머니 등으로 변신해 온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김수미. 그의 몸은 떠났으나 고인이 남긴 작품과 연기는 대중의 추억 속에서 계속 살아갈 예정이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정창규와 딸 정주리, 아들 정명호, 며느리이자 후배 배우인 서효림 등이 있다.
채태병 기자 ct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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