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첫발이 전자담배로 갈아타기? 오답입니다

김태훈 기자 2026. 1. 31. 09: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굳은 결심으로 ‘금연’을 다짐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되기 전 직장인 박세준씨(45)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그가 올해 첫 번째로 금연에 도전해 담배를 피우지 않고 지낸 날은 14일, 연이은 두 번째 시도에선 6일이었다. 박씨는 “처음 2주 동안은 담배를 안 피우는 데 성공했지만 술자리에서 ‘딱 한 대만’ 하면서 입에 댔더니 그날 줄담배를 피우고 말았다”면서 “다음날부터 다시 금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잘 버티질 못해서 결국 그나마 전자담배로 바꾸는 쪽으로 나 자신과 타협을 했다”고 말했다.

2026년의 첫 달이 벌써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금연이란 신년 목표의 달성 여부가 가려지는 시기다. 금연 기간이 각오만큼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도전을 반복하면 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 궐련형 또는 액상형 같은 다양한 형태와 브랜드의 전자담배가 끼어들기도 한다. 전자담배는 기존 궐련(연초) 흡연보다 건강 유해성이 적으면서 금연을 도울 대안이 될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자담배가 궐련보다 건강에 덜 해로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조유선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전자담배에서 나오는 하얀 기체를 단순한 수증기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니코틴·중금속·발암물질이 혼합된 에어로졸이고 인체에 생물학적 영향을 미치는 활성물질”이라며 “인체에 유해한 입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연초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궐련보다 유해 물질 적다고 오해
금연 과정의 선택지로 타협 많아
양쪽 유형 함께 피우는 게 ‘최악’
흡연, 중독이자 질병으로 인식을
약물·상담 병행 땐 성공률 높아져
금연 20분만 지나도 혈압 정상화
체중 증가 등 부작용보다 이점 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분석 자료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의 타르 함량은 일반 담배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높게 측정되기도 했다. 전자담배를 통해 흡입하는 에어로졸에선 궐련 연기에는 없던 80여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전자담배의 가열 코일에서 용출되는 미세 금속 입자는 폐포 깊숙이 침투해 만성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일부 성분의 수치는 비교적 낮게 나올 수 있지만 신체가 받는 전체 독성 부담이 줄어든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전자담배 역시 궐련 담배처럼 심혈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담배와 관련된 기존 연구들을 종합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전자담배 사용자는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비사용자의 1.53배였다. 특히 과거 흡연력이 있는 전자담배 사용자는 심근경색 위험이 2.52배, 뇌졸중 위험은 1.73배로 상승했다. 그 원인은 니코틴이 혈압과 심박수를 높이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에어로졸 속 미세 입자가 혈관 내피세포 기능을 저하시켜 염증 및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폐 건강 역시 예외가 아니다. 폐활량 측정을 위해 숨을 최대로 들이마신 후 가장 빠르고 강하게 내쉴 수 있는 공기의 양을 측정한 1초간 강제호기량을 비교했을 때 전자담배 사용자는 비사용자보다 약 14%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전의 궐련 흡연 여부와는 무관하게 전자담배 흡연만으로도 만성폐쇄성폐질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궐련과 전자담배를 함께 피우는 경우엔 비흡연자 대비 만성폐쇄성폐질환 위험이 약 3.9배로 증가했다.

조유선 교수는 “임상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흡연 형태는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를 함께 사용하는 것인데,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80%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며 “이 경우 체내 독성물질에 대한 노출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심혈관질환 위험이 36%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궐련 흡연자들이 전자담배로 옮겨가는 경향은 국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도 궐련과 전자담배를 포함한 전체 담배 사용률은 감소하지 않은 채, 담배 유형만 바꾸는 ‘이동 현상’이 관찰됐다. 이런 변화를 두고 세계 각국 보건당국은 전자담배가 흡연을 더 오래 지속하도록 유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역시 전자담배 사용이 오히려 흡연 빈도와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공개했다.

궐련이든 전자담배든 니코틴과 타르를 포함한 다량의 유해물질을 흡입할 수밖에 없으므로 건강을 위해선 금연이 필수적이다. 금연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혼자서 참아내야 하는 의지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치료가 필요한 중독이자 질병으로 생각하면 다양한 방식의 보조를 받을 수 있다. 니코틴은 뇌의 보상체계를 자극해 금연을 시작하면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듯한 감정을 유발하며, 흡연을 통해 갈망을 해소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정서가 나타나도록 유도한다.

이규배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금연 실패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금연을 더 어렵게 만든다”면서 “금연클리닉에선 금단 및 갈망 증상을 조절하는 약물 치료와 흡연을 부르는 신호를 조절하는 상담 치료를 함께 진행해 금단증상을 줄이고 금연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연을 시작하면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를 보인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20분 정도만 지나도 혈압과 맥박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하고, 하루가 지나면 체내 일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면서 심장이 받는 부담이 줄어든다. 후각과 미각은 48시간 이내 개선되기 시작해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혈액순환과 폐 기능 등은 금연이 수개월간 지속되면 기간에 비례해 회복된다. 금연 1년 후에는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흡연자와 비교해 반으로 줄어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뇌졸중과 폐암 등 암 발병 위험도 점차 감소한다.

흡연 기간이 길거나 나이가 많더라도 금연의 효과는 분명하다. 담배를 끊고 며칠간 일시적인 허전함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도 있지만 흡연하지 않는 건강한 상태를 즐기는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금연 성공에 도움이 된다. 이규배 교수는 “금연 후 체중 증가나 스트레스를 걱정하는 분도 많지만 금연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고, 금연으로 오는 이득은 체중이 증가해도 유지되기 때문에 금연을 하는 것이 좋다”며 “과거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전문 의료진과 함께라면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