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화 북한인권대사 “정권 따라 ‘北 인권’ 고무줄 대응 안 돼… 분명한 정체성 있어야” [세계초대석]
인도적 지원 등 건설적 관여 병행해야
진보정부, 北정권의 눈치 본 것은 잘못
韓, 北인권결의안 복귀 정상화로의 길
정권 상관없이 원칙 지켜야 대화 길 열려
여야 의원들 만나 실질적 일 하고 싶어
北 핵 위협과 인권 문제는 동전의 양면
따로 볼 일 아냐… 같이 풀어야 해결 가능
국제사회 北문제 피로감 없게 관리 중요
이신화(57)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의 신념 중 하나는 북한 인권 문제를 푸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책임 규명’이라는 점이다. 이 북한인권대사는 지난 14일 고려대학교 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을 살리기 위해 인권 유린을 하는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임 문재인정부 집권 기간 남북관계를 고려한다는 명목으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에 확고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이 작금의 북한 인권 문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달 10일 세계인권선언 74주년과 내년 3월21일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출범 10주년을 앞두고 북한 인권 개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 대사를 만났다. 다음은 이 대사와 일문일답.
―외부에서 북한 인권 책임 규명을 외쳐도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시절 르완다 독립조사위 사무총장 특별자문관으로 책임 규명을 했다. 그때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책임’(accountability)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2014∼2017년에 유엔 사무총장 직속 평화구축 펀드에서 일했을 땐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선 책임 규명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책임 규명만으로는 북한 정권을 움직일 수 없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건설적 관여가 필요한 이유다.”
―건설적 관여에는 인도적 지원이 포함되나.
“정상화로 가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 했는데 (문재인정부 집권 기간) 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고려해서 하지 않았던 것인데, 정권이 바뀐다고 왔다 갔다 하지 않아야 북한과도 이야기해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어떤 공간을 말하나.
“2005년 이후로 유럽연합(EU)은 유엔에서 꾸준하게 ‘펜홀더’(특정 위원회에서 협상을 주도하거나 결의안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로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주도해왔다. 비공식적이지만 북한이 EU에 그 역할을 중단하면 대화 재개를 고려해본다고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정권에 따라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니 오히려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고 북한에 빌미를 주는 꼴이다.”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저에 대한 욕을 이것저것 많이 늘어놨더라. (북한이) 제 발언과 행동을 보고 있다고 느꼈고, (그런 이유에서 북한을 향한) 발신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그나마 잘 된 것처럼 보고하는 것이 여성 인권이다. 그렇지만 나에 대한 북한 당국의 언사를 보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여전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이 유엔 인권이사국 선거에서 탈락한 것은 이례적이다.
“전 정권을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중견국이 되면서 여러 외교 과제도 많고 의욕도 많지만, 우선순위에 따라 외교 전략을 짜서 큰 전략하에서 외교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엔 외교전에 ‘스윙보터’(부동층)가 많은데, 제가 이번에 뉴욕(유엔총회)에 가서 느낀 것은 그 폭이 과거보다 넓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인권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북한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 비핵화부터 풀어야 인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사일 개발 비용과 주민들을 먹여 살릴 비용이 다르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인권 유린은 동전의 양면이다. 두 가지를 같이 풀어야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어 희망적이다.”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에 충분한 관심이 있나.
“5년 만에 제가 북한인권대사 자리를 채웠는데 미국 백악관에서 북한인권담당특사를 임명하지 않은 지는 거의 6년째다. 일단 이 자리를 채워야 한다. 미국에서도 (북인권특사의) 필요성은 얘기하는데 정치적으로 여러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는 것 같다.”
―대사께서 생각하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필요조건은.
“간단하게, ‘먹을 권리’와 ‘알 권리’다. 다른 세부 내용은 그 두 가지 안에 다 들어가 있다. 1948년 12월 유엔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 인권의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적시돼 있다. 이에 근거해 북한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으면 한다. 70년이 지난 나치의 인권 만행도 아직 책임 규명을 하는 것처럼 인권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임기 중 성과를 내고 싶은 단·중·장기 과제는.
“먼저 북한 인권의 개념을 규정하고 제도화를 공론화하려 한다. 또 국제기구들이 코로나19 이후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내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다. 중국의 탈북자들이 제3국으로 추방되면 한국에 데리고 오는 역할을 과거 ‘조용한 외교’라고 했는데 그보다는 ‘신중한 외교’(deliberate diplomacy)를 통해 지원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보편적 인권 속에서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유엔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규탄했다.
“전 정권을 탓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탓하는 순간 생각이 다른 절반은 이 문제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북한 인권만 얘기하고, 진보는 한국 인권만 얘기한다. 해외 의원들이 저에게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진짜 이해가 안 된다고, 여야가 북한 인권에 대해 왜 생각이 다르냐고 물어보더라. 누가 정권을 잡든 ‘리퍼블릭(Republic) 오브 코리아’ 아닌가? 이에 대한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지난 정권이 잘못한 것 아닌가.
“월북이냐 아니냐는 초점이 아니다. 설사 월북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데려와서 왜 그랬는지 우리 법으로 처리하면 된다. 원칙을 안 지킨 것이 문제다. 잘못한 사람은 저 위에 있는데 우리끼리 싸우고 있으니 (북한에) 빌미를 준다. 우리끼리 싸우느라고 북한을 ‘건방지게’ 만들었다.”
대담=송민섭 외교안보부장, 정리=홍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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