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로 갈아탄 아르메니아, 한국산 K2 전차에 높은 관심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2024. 10. 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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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 방한해 무기 구매 협의… 국산 장갑차·전투기·미사일 수출 가능성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내각은 대대적인 군비 증강을 선언하며 한국과 대규모 무기 거래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지난해 총선 결과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물러나고 친독일 성향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집권함에 따라 한때 한국의 폴란드 무기 수출 계약이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한국산 K2 전차. [뉴스1]

폴란드 정권 교체에도 K-방산 수출 전망 '양호'

투스크 총리는 폴란드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친독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집권 이후 독일·프랑스·폴란드 3국 협력 체제인 '바이마르 삼각동맹'을 제창하면서 이전 정권에서 결정된 주요 무기 획득 사업에 대한 이른바 '적폐 청산'을 진행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방산 강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한국이 폴란드라는 유럽 수출 교두보를 구축한 것을 껄끄럽게 여겼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폴란드에 차세대 전차 공동개발 사업(MGCS) 협력을 제안하는 등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한국산 FA-50 경전투기.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 현지에선 "한국이 수출한 FA-50GF 전투기가 작전 불가능 상황이 됐다"거나 "K2 전차 후속 계약이 취소될 수 있다"는 등의 부정적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 정부에서 한국산 무기 대규모 구매 사업을 주도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전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투스크 정부가 한국산 무기 도입 사업들을 대거 취소하거나 취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K-방산의 폴란드 잭팟이 물거품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배경이다. 다행히 10월 초 폴란드 군비청은 올해 연말까지 계약을 체결하기로 확정한 중요 사업 목록을 연이어 발표했다. 여기에 한국산 무기가 이름을 올리면서 폴란드 수출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불식됐다. 특히 K2 전차의 경우 폴란드가 직수입한 K2GF 1차분 180대에 이어 현지화 버전 K2PL 60대가 포함된 2차분 180대 구매 계약이 사실상 확정됐다. 당초 양국이 합의한 1000여 대 수출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현지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음에도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도 K2 전차, K9 자주포 등 한국산 무기가 우수한 성능과 신뢰성, 저렴한 가격, 빠른 납기를 모두 갖췄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최근 유럽 국가들 수요가 급증한 전차 시장에서 한국산의 경쟁력이 크다. 한국 K2 전차는 경쟁 모델인 미국 M1A2, 독일 레오파르트 2A8과 비교했을 때 화력과 기동력은 더 뛰어나고 방어력은 대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경쟁 모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납기는 2~3년 이상 빠르다.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최전선 국가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폴란드가 느끼는 러시아발 안보 위협이 다급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다른 나라 무기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컸다.

한국산 무기가 강한 매력을 어필하는 상황은 루마니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K9 자주포 구매 계약을 체결한 루마니아는 K2 전차 현지 평가를 실시했고, '레드백' 장갑차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데다, 지근거리에 미승인 친러 국가로서 러시아군이 주둔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루마니아가 한국산 무기를 대거 구매하려는 것도 러시아발 안보 위협 '덕분(?)'이라는 얘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욕, 다시 말해 그가 유럽에 가하는 안보 위협이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의 무기 수출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K-방산 유럽 진출의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푸틴 대통령 덕에 최근 전혀 예상치 못한 나라에서 한국산 무기 러브콜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아르메니아다.

‘생계형 친러' 아르메니아의 변신

5월 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정상회의에서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왼쪽)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파시냔 총리는 외교·안보 노선을 기존 친러에서 친미로 급격히 바꾸고 있다. [뉴시스]
옛 소련에서 독립한 아르메니아는 그간 서아시아의 대표 친러 국가로 여겨졌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이자, 비교적 최근까지 여단급 규모의 러시아 지상군이 주둔했던 나라다. 아르메니아는 항구가 없는 내륙국으로 국토 대부분이 척박한 산악지형이다. 인접한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가 대단히 나쁜 탓에 오랫동안 '생계형 친러' 국가로 존속해 왔다. 실제로 아르메니아 주둔 러시아군은 빈약한 군사력을 가진 이 나라의 사실상 보호자 노릇을 해왔다. 그런데 2020년과 2022년 연이어 벌어진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 이후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아르메니아는 2020년 아제르바이잔과 영토 분쟁을 벌이던 나고르노카라바흐(아르차흐)를 놓고 충돌했다. 국지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지자 전반적 국력에서 아제르바이잔에 미치지 못하는 아르메니아는 두 달 동안 전쟁 끝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 패전으로 아르메니아 전국에서 니콜 보바이 파시냔 총리 퇴진 운동이 벌어졌다. 극심한 혼란 끝에 파시냔 총리는 2021년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져 극적으로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2022년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과 다시 충돌하며 발생했다. 당시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물론 아르메니아 본토의 군사기지를 직접 공습하는 등 강수를 뒀다. 이때 파시냔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아르메니아-러시아 상호방위조약을 이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에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여단급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기에 푸틴 대통령이 결단만 하면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을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파시냔 총리의 간청을 거절했다. 다급해진 파시냔 총리는 CSTO와 유럽연합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그해 9월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처한 파시냔 총리는 러시아의 손을 뿌리치고 미국 손을 잡기 시작했다.

2022년 9월 파시냔 총리는 러시아의 성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을 아르메니아로 불러들여 사상 최초의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 이듬해 1월에는 "분쟁이 발발했음에도 돕지 않는 안보기구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며 CSTO 회원 자격 동결을 발표했다. 올해 5월과 6월에는 각각 아르메니아 주둔 러시아군 철수, CSTO 탈퇴 선언이 잇따랐다. 이어서 7월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아르메니아 국방부에 미군 출신 민간인 고문이 상주하기 시작했고, 8월에는 미국 협조 아래 아르메니아군을 NATO 표준으로 재무장시킨다는 합의가 나왔다.

아르메니아 국방장관 방한의 진짜 목적

이처럼 아르메니아가 급격히 친미 노선으로 기울자 러시아는 9월 현지 친러 인사들을 동원해 쿠데타를 시도했다. 그러나 쿠데타 시도는 간단히 제압됐고, 파시냔 총리의 반러 정서를 더욱 심화시켰다. 아르메니아군의 친서방 노선과 나토 표준 무기 도입이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아르메니아 국방장관의 방한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9월 9일 서울에서 열린 '2024 인공지능(AI)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고위급 회의(REAIM)'에 수렌 파피키안 아르메니아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아르메니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파피키안 장관의 REAIM 참석은 표면적 이유였고, 방한의 진짜 목적은 한국산 무기 구매를 위한 협의에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아르메니아는 국방장관 뿐 아니라 국가안전보장회의 아르멘 그리고리안 서기도 한국에 보냈다고 한다. 이들 인사는 방한 기간 중 국내 전차공장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옛 소련 시절인 1970년대 도입되기 시작한 T-72 전차. [위키피디아]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아르메니아는 현재 운용 중인 노후 소련제 전차를 한국산 전차로 대체하려고 나섰다. 아르메니아는 K2 전차는 물론 중고 K1 전차 도입도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메니아 육군은 T-72 전차 100여 대와 T-54 전차 1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아르메니아군 주력전차인 T-72는 1970년대 생산된 초기형 모델이고, T-54는 1950년대 만들어진 퇴물이다. 둘 다 현대전 수행이 불가능한 모델이다. 자국군을 나토 표준에 맞춰 재편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아르메니아 정부 입장에선 이들 전차가 교체 1순위인 셈이다.

아르메니아는 17만 명의 정규군을 보유했지만 올해 국방예산은 14억 달러(약 1조9000억 원)에 불과한 나라다. 1대 250억~400억 원에 달하는 미국제 M1A2 전차나 400억~500억 원이 넘는 독일제 레오파르트 2A8 전차를 대량 구매할 여력은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메니아의 적국인 아제르바이잔은 90대 이상의 T-90S와 400대 이상의 T-72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이스라엘과 손잡고 T-72 전차 개량 사업에도 나섰다. 아르메니아로선 이에 맞설 고성능 전차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과 성능, 납기를 모두 만족시키면서 나토 표준 사양인 전차는 사실상 한국산이 유일하다.

현지에서 K2 전차는 물론 중고 K1 계열 전차 구매설까지 나오는 이유는 제한된 예산으로 가급적 많은 신형 전차를 확보해야 하는 아르메니아의 절박한 상황 때문이다. K2가 미국·독일제 전차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대당 가격이 150억~200억 원에 육박한다. 따라서 아르메니아로선 그 외에 '물량'을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는 저렴한 전차도 필요한 것이다. 이에 따라 K1 계열 전차의 사상 첫 중고 수출이 이뤄질 수도 있다.

무기-광물 절충교역 고려할 만

주목할 만한 것은 아르메니아가 대체해야 할 무기가 전차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르메니아는 수백 대의 소련제 노후 장갑차와 야포도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게다가 최근 아제르바이잔의 신형 전투기 도입에 대응하려면 전투기와 방공 무기도 일신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산 장갑차나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 등의 아르메니아 추가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 아르메니아에는 최근 삼성전자가 9세대 낸드 메모리에 사용하기 시작한 몰리브덴을 비롯해 레늄과 구리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현금 결제 능력이 떨어지는 아르메니아 상황에 맞춰 무기-광물 절충교역과 같은 결제 방식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K-방산 아르메니아 수출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할 맞춤형 수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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