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플러스+] 끝내 귀환 못한 호국영웅, 마지막 한 분까지 ‘조국의 품으로’

김정호 2024. 10. 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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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가다
1951년 8월 남북 교전 ‘노전평 전투’
당시 국군 540명 사망·124명 실종
육군 17여단·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인제 가전리 964·1031 고지 현장 투입
장병 100여명 산악지대 저인망식 작업
전투화 등 유품 1992개·유해 1구 확인
지뢰 사고대비 폭발물 처리반 작전 동행
“고된 상황 속 한 구만 찾게 돼 아쉬움”

총 315구. 육군 12사단이 지뢰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고 지난 2004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한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전에서 발굴한 유해 숫자다. 많은 수의 유해가 발굴됐지만 치열한 전투가 이뤄졌던 인제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쪽에는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해가 더 많다. 70년 넘게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는 호국 용사의 유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유족이 있음을 알기에 육군 17여단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미명을 뚫고 반세기 전 그들이 오른 고지를 지금 다시 오른다.

▲ 지난 9월 인제 노전평 전투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6·25 전사자 유해가 봉송되고 있다

■ ‘그들을 조국 품으로’ 노전평 전투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전

지난 10일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새벽 버스 2대가 인제 대곡리초소를 지나 민간인출입통제선 내부로 들어섰다. 이들은 육군 17여단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지난 8월20일 유해 발굴 개토식을 진행한 이후 26일부터 발굴을 시작해 추석 연휴를 제외하고 6주째 가전리 964고지와 1031고지 사이에서 ‘노전평 전투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전’을 펼치고 있다. 노전평은 갈대밭이 있는 작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1951년 8월 9일부터 24일까지 약 2주간 국군과 북한군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으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전투다. 당시 국군 8사단과 북한군 2·13사단은 휴전회담 개시 이후 교착된 전선에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2차에 걸쳐 고지전을 실시했다.

▲ 인제 노전평 전투 유해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탄피

1차 전투에서는 5번의 고지 재탈환이 이뤄졌고 2차 전투에서도 6번의 고지 재탈환이 반복됐다. 이 전투에서 적 4324명을 사살하고 포로 256명을 획득하는 전과를 달성했지만, 국군도 540명이 숨지고, 124명이 실종됐다.

유해 발굴 장병들은 발굴지 인근에 숙영지를 마련해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생활한다. 하지만 이날은 전날 한글날 휴무로 전원 철수했다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작전에는 100여 명이 참여했다. 험난한 산악지형을 저인망식으로 훑는 고된 작업이지만 장병들은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발굴 작업 전 낙석 및 안전사고 발생 시 대처법을 익히고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과 함께 유해 발굴단의 슬로건인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고 구호를 외치고 현장에 투입됐다.

이번 발굴 작전에서는 전투화, 판초 우의, 탄 클립 등 1992개의 유품과 더불어 지난 9월 4일 완전 유해 1구가 확인됐다.

처음에는 유골 일부만 발견됐으나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추가 유해가 발굴될 수 있는 곳을 확인한 결과 완전 유해로 판명됐다. 보통 발굴 시 국군인지, 북한군인지, 연합군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찾은 유해에서는 국군 인식표가 발견됐고 국군 8사단 소속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밀 감식을 거쳐 유가족과 가족관계 확인 절차를 진행 중이며 절차가 마무리된다면 오는 연말에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인제 노전평 전투 유해발굴 현장에서 장병들이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지뢰매설 위험에 폭발물 처리반도 투입

이번 유해 발굴 작전은 지난 10월11일 마무리됐다. 하지만 발굴 작업이 끝난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18일까지 파헤쳐진 땅을 다시 복구하는 복토 작업을 진행한다. 발굴 과정 중 부득이하게 땅을 파다 보니 주변의 나무뿌리가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이런 경우 나무가 고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뿌리를 다시 덮어주는 복토 작업을 진행한다.

유해 발굴 작업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뢰 폭발 사고는 장병들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항상 EOD(폭발물 처리반) 인원도 작전에 투입된다. 이날도 장병들이 한창 발굴 및 복토 작업을 하는 와중에 한쪽에서는 폭발에 대비한 방폭복 등을 착용한 EOD 인원들이 지뢰 탐지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날 지뢰 탐지에 나서는 이유 역시 내년에 진행할 유해 발굴지를 미리 개척하기 위해서다.

▲ 인제 노전평 전투 유해발굴 현장에서 장병들이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지역의 경우 6·25 전쟁 당시 교전이 치열하게 이뤄졌고 현재는 민통선 내부이기 때문에 지뢰가 매설돼 있을 위험이 있어 미리미리 지뢰 탐색을 진행하고 있다. 추가로 발굴 작업 도중 불발탄 등이 발견될 시에도 EOD가 나서 최대한 안전하게 처리하고 있다.

장병들은 한 구의 유해를 더 발견하기 위해 지형 파악 등 사전 공부도 철저히 준비한다.

나형우 일병은 “보통 작전을 가면 그냥 가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서로의 의견을 묻는 자리를 갖다 보니 왜 작전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동기가 생겨 좋았다”고 했다.

▲ 인제 노전평 전투 유해발굴에 나서는 장병들이 발굴작업에 앞서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병들은 이 같은 고된 상황 속에서도 단 한 구의 유해만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린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17여단 6중대장 정재훈 대위는 “이 지역에도 발견되지 못한 선배 전우가 많이 계실 텐데 한 구만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린 게 아쉽다”며 “유해 발굴 작전에 투입되는 게 장병들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값진 기회였고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작전이 마무리돼 다행”이라고 했다.

인제/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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