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강 미 해군이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9년 가까이 방치된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 USS 보이시(Boise)의 운명을 두고 미 해군 수뇌부가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1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수리비를 투입해도 2030년대나 되어야 다시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면서,
아예 이 핵잠수함을 퇴역시키는 극단적인 선택지까지 검토되고 있다고 미국의 방위산업 전문 매체인 Breaking Defense가 보도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척의 잠수함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조선업계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면서 세계 최강 해군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죠.
과연 미국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한국과 같은 조선 강국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9년간 방치된 핵잠수함의 비극
USS 보이시의 이야기는 2015년부터 시작됩니다.
마지막 순찰임무를 마친 이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은 정기 오버홀을 위해 노퍽 해군조선소로 향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죠.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의 핵연료봉 교체 작업, 항공모함 오버홀, 다른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들의 훈련함 전환 작업 등이 밀려 있어, 보이시 잠수함의 오버홀 차례는 계속 뒤로 밀렸습니다.
이후 2018년 뉴포트 뉴스 조선소로 이전된 보이시 잠수함은 "2021년까지 오버홀을 완료하고 복귀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오버홀 계약 체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됐고, 2020년 9월 미 해군이 초기 비용으로 3억 5천만 달러를 지불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길디 미 해군참모총장은 미 의회에서 "조선소에서 공간이 확보되면 즉시 오버홀이 시작될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릴 코델 해군참모총장의 솔직한 고백
2024년 새로 부임한 다릴 코델 해군참모총장은 이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난 2023년 1월 해군협회 연차총회에서 그는 "코로나19나 공급망 문제 같은 건 관심 없다. SM-6 미사일과 어뢰를 일정대로 납품해 달라는 것뿐"이라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의 다음 발언이었습니다. "우리는 잠수함 10척을 주문했는데 손에 온 것은 6척뿐이다. 나머지 4척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내 부대는 잠수함이 부족하다"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였죠.
현재 19척의 잠수함이 정비 중이거나 정비 대기 상태라는 것입니다.
만약 일정대로 오버홀이 진행됐다면 잠수함 전력이 9척이나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계산도 내놨습니다.
코델 총장은 보이시 잠수함 오버홀 문제에 대해서도 "잠수함 장교로서 보이시 잠수함의 현 상황은 가슴에 꽂힌 칼 같은 것"이라며 개인적인 아픔을 드러냈습니다.
동시에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은 미 국방부가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조선 산업에 대한 투자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근본 원인을 지적했습니다.
미국 조선업계의 구조적 한계
숫자로 보면 미국 조선업계의 위기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매년 2척씩 주문되는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을 미국 조선소들은 연간 1.2척의 속도로밖에 건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간 10척의 오버홀 작업도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고 특히 보이시의 경우는 더욱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핵잠수함 오버홀은 국영 해군조선소가 담당해왔는데, 조선소 공간과 능력 부족으로 민간 업체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HII)에 맡기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뉴포트 뉴스 조선소가 핵잠수함 오버홀 방법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보이시 잠수함 이후의 오버홀 수요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HII의 학습 의욕도 효과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9년 9월 재취역 목표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12억 달러 vs 조기 퇴역, 어려운 선택
현재 보이시 잠수함 오버홀에는 총 12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 진행해도 실제 재취역은 2030년대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5년 마지막 순찰을 마친 보이시 잠수함이 15년 넘게 작전에서 배제되는 셈이죠.
코델 총장은 "해군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보이시 잠수함 문제에 적극 나서고 싶다"면서도 "보이시 잠수함을 포기할지 여부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는 "미국 상원의원들이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하고, 보이시 잠수함이 조선소에서 장기간 방치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립니다. 헤리티지 재단 분석가는 "현재 함정 부족을 고려하면 보이시 잠수함 퇴역은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면서,
"미 해군은 냉전 종료 후 예산을 너무 많이 삭감했으며, 국영 해군조선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허드슨 연구소 분석가는 "현재 산업 능력을 고려하면 보이시 잠수함의 조기 퇴역이 아마도 올바른 결정일 것"이라며,
"현재 운용되지 않는 보이시 잠수함은 다른 함정이 오버홀을 받을 수 있도록 조기 퇴역을 시키고, 지금은 운용 가능한 함정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한국 조선업에 기회가 될까
이런 미국의 상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미국이 한국과 같은 조선 강국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한국은 세계 1위의 조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복잡한 군함 건조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입증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핵잠수함은 일반 함정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적 복잡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핵 기술의 보안 문제, 미국의 기술 이전 제한 등을 고려하면 단순한 외주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핵심 부품 생산이나 일반 선체 작업 등에서는 협력 가능성이 있을 수 있죠.
또한 한국 조선업계는 이미 다양한 군함 건조 경험을 축적하고 있고 미국이 정말로 절박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동맹국인 한국과의 협력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도 있지만,
한국은 일반 함정과 달리 미국 핵잠수함 오버홀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오버홀 방법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합니다.
미 해군력의 미래를 좌우할 결정
USS 보이시 잠수함의 운명은 단순히 한 척의 잠수함 문제를 넘어서 미국 해군력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군사력 확장과 태평양에서의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의 조선 산업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코델 총장이 지적한 대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조선 산업 투자 소홀의 대가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냉전 종료 후 평화 배당금을 누리며 국방비를 줄였던 정책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죠.
보이시 잠수함의 최종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든, 이 사건이 미국 해군과 조선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세계 최강의 해군력도 산업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해양 강국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