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데 연봉 고작 3592만원"…한국 청년 '공사판' 떠난 이유
[편집자주] 철근이 빠진 아파트, 큰비가 내리면 워터파크로 변하는 아파트.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이 잇단 아파트 부실시공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인식에 젊은 기술자들이 건설 현장을 떠난다. 그 자리는 일도 말도 서툰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다.
한국 청년이 빠지고 외국인과 고령자로 채워진 건설 현장은 안전사고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말이 안 통하고 일이 서툰 근로자들이 모여서 일하는 건설 현장은 안전사고뿐 아니라 품질저하·부실 시공의 우려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시공능력 20위권에 속한 15개 건설사의 하자판정 비율은 30.34%로 집계됐다. 4819건의 하자가 접수됐는데 이 중 1462건이 실제 하자로 판정받은 것이다. 계룡건설의 경우 하자판정비율이 67.8%에 달했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대형건설사들의 크고 작은 부실시공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2021년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부터 GS건설에 '순살자이'라는 오명을 안겨준 철근 누락 사고까지 끊이지 않았다. 롯데건설의 한 신축아파트에서는 철근이 아파트 외벽을 뚫고 나오는 일도, 대우건설이 지은 한 아파트는 폭우로 단지가 잠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하자투성이 신축 아파트의 입주 점검 후기가 끊이지 않는다.
건설업계에서는 외국인·고령 근로자의 증가가 이 같은 부실시공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건설 현장은 배근도 이해나 도면검토 등 섬세한 작업을 바탕으로 이뤄지는데, 외국인과 고령 근로자는 비숙련자이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의사소통 자체에 한계가 있어 정밀한 작업 지시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인과 고령 근로자의 증가는 부실시공뿐 아니라 현장 내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도 높인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지난 6월 기준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자 중 건설업의 비중은 41.6%(166명)로 가장 높았다. 사고재해자 수도 건설업이 1만2102명으로 모든 산업군 중 가장 많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건설업계에서는 중대재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DL이앤씨·롯데건설·현대건설·대우건설·한화 건설 부문은 고용노동부의 현장 감독을 받기도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단순노동을 하는 비율이 높을뿐더러 언어 장벽으로 인해 현장 안전에 대한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고령 노동자는 기민함이 떨어지고 기존에 질병을 앓던 이들도 많아 기후환경 등 외부 요인에 취약한 편"이라고 하소연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건설 현장이 '저임금 고위험' 노동 환경이라는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한국 청년을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4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해 건설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3592만원으로 2년 전보다 87만원가량 줄었다.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오히려 떨어졌다. 같은 기간 임금체불을 경험한 비중은 24.5%에서 29.5%로 늘었다. 반면 건설 노동자 세 명 중 한 명은 현장 위험성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노동 환경이 위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산업재해 국가다. '재난 현장'이라는 국내 건설 현장의 오명을 씻어내려면 근로자 처우·사업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숙련공 육성을 위한 '기능등급제' 확대와 '적정임금제' 도입 등이 주요 개선안으로 꼽힌다.
개선안은 늘어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지원을 포함해 건설업계 숙련 인력이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하자는 게 핵심이다. 그동안 건설 현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 요구는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러나 미비한 관련 법·제도 체계와 원가 상승을 우려한 건설사들 등의 반대에 가로막히면서 여전히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1일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적정임금제 시범사업 순효과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적정임금제를 시범 도입한 건설사업은 공사당 78.7명의 고용이 늘어났다. 내국인은 공사당 61.7명, 외국인은 16.9명씩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유입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건설 현장 인력 수급뿐 아니라 근로자 임금도 개선됐다. 임금상승폭은 내국인이고 숙련공일수록 컸다. 기능직 근로자 임금이 2만5000원 오를 때 일반 근로자는 3000원가량 인상됐다. 내국인(2만2000원)은 외국인(1만3000원)보다 약 70% 더 올랐다. 강승복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차장은 "적정임금제가 시행되면 내·외국인 근로자의 유입(고용)과 임금이 증가, 근로 환경이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적정임금제는 발주처가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건설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100여 년 전부터 '우세임금제도(prevailing wage system)'로 시행됐다. 공공 공사 현장에서 일정한 수준의 자국인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적정임금제를 도입하면 근로자 환경뿐 아니라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도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춘환 한국재난정보학회 이사는 "건설업의 적정 임금제 시행은 불법 다단계와 불법 외국인 근로를 차단하고, 건설시장의 노동환경을 개선해 청년 근로자를 유입을 만들어 낼 것"이라며 "건설업 수주 경쟁구조 개선, 안전, 품질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명무실' 기능등급제 확대 적정임금제 시행 전제 조건
3년 전 도입된 기능등급제의 확대는 적정임금제 시행을 위한 필수 작업으로 꼽힌다. 기능등급제는 근로자의 경력, 자격, 교육·훈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직종별 기능등급을 구분·관리하는 종합 경력관리 체계다. 그러나 등급에 따른 처우개선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1년간 건설근로자의 기능등급증명서 발급 비율은 2~3% 수준에 불과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충분한 경력과 기능을 갖춘 숙련공들의 근로환경 개선은 건설 현장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라며 "다만 현 제도는 근로자의 업무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건설 현장 환경 개선을 위한 건설산업법 개정 등 법·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다음 달 적정임금제 도입과 기능등급제 발전 과제를 담은 정책자료집을 제작할 계획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적정임금제 도입과 기능등급제 확대, 불법하도급 차단 규제안 등을 두루 담을 것"이라며 "다만 건축비 상승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가 입법 추진에 걸림돌이 될까봐 우려된다"고 했다.
이용안 기자 king@mt.co.kr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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