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4) 민사소송법
항소장각하명령의 '성립' 후에는 인지보정 무용

1. 추심명령 발령시 추심채무자의 소송상 지위
대법원 2025. 10. 23. 선고 2021다252977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안
X의 채권자인 Y는, X의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하고 X의 기타 예금채권을 추심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X는 횡령·배임·편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Y를 상대로 불법행위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원심은 2021.7.7.에 약 3억원의 부당이득반환을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X의 채권자인 T는 위 원심판결 선고 후에 추심채무자를 X로, 제3채무자를 Y로 삼아 약 1억2000만 원 채권의 압류·추심명령을 획득하였고 이는 Y에게 송달되었다. 원심판결에 대하여 Y만 상고하였고 상고이유 중 하나로, X가 원고적격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하였다(판례 법리상 '원고적격'은 상고심에서도 유지되어야 하는 소송요건이므로, 원고적격을 상실하였다면 파기 대상임)
(2) 판결 요지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하여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 (가) 추심명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채무자가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볼 법률적 근거가 없고, (나) 추심채권자는 추심채무자의 소송에 공동소송참가 또는 공동소송적 보조참가를 할 수 있고, 또한 추심채무자가 승소확정판결을 받더라도 실제 추심은 금지되므로, 추심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유지한다고 보더라도 추심채권자에게 부당한 결과가 생기지 않으며, (다) 추심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제3채무자에게 불리하지 않고 오히려 응소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았던 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과 국세징수법에 의한 체납처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 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다48879 판결을 비롯하여 그와 같은 취지의 판결들을 모두 변경한다.
(3) 분석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하여 추심명령이 발령되는 경우, 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는지는 오래된 논의주제이다. 일반 채권의 압류·추심명령에 있어서 채무자의 원고적격 존부를 명시적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은 위 99다23888 판결이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세징수절차상의 압류에 관한 원고적격자에 관해서는 이미 대법원 1983. 3. 8. 선고 82다카889 판결에서 애초의 채권자(=집행채무자)로부터 원고적격을 박탈하는 판시가 내려져 있었고, 일반 채권의 압류·추심명령에서도 추심명령 발령 후에는 채무자의 원고적격이 상실된다는 견해가 위 99다23888 판결 전부터 이미 통설이었으며, 이러한 원고적격 법리는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실무상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추심채권자의 성격 내지 본질에 관하여는, 갈음형 소송담당으로 보는 견해(구 판례 및 실무), 병존형 소송담당으로 보는 견해(대상판결), 그리고 고유적격을 가진다고 보는 견해 등이 나뉘어 있다. 갈음형 소송담당으로 보는 구 판례의 견해 하에서, (추심명령 없이) 압류·가압류 명령만 내려진 상태에서 집행채무자의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것과 왜 달라야 하는지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고, 또한 대상판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소송경제상의 우려(상고심에 이르는 등 장시간 추심채무자에 의한 소송수행이 이루어진 후에 원고적격이 상실되는 경우의 소송불경제)에 기한 비판이 있었다. 이들이 대상판결을 낳게 한 동인이라고 보인다. 이 대상판결에 의하여, 압류명령에다가 (실체적 권리가 아닌) 추심권능만 추가된다고 해서 소송수행권이 박탈된다는 비논리적 설명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추심소송의 본질을 명확히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추심채무자의 소송수행권을 유지시킴으로써 추심소송의 본질을 병행형 소송담당으로 설명했다고 해서, 그로부터 ⓐ 추심채권자, 추심채무자 및 제4의 다른 추심채권자 간의 기판력 문제(즉 각자의 재판받을 권리의 존속 문제) 및 ⓑ 중복제소 문제, ⓒ 제3채무자의 응소부담 등 소송경제상의 문제, ⓓ 소송상의 참가 문제가 모두 자동적으로 논리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으며, 각 이슈마다 추가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가령, 대표적 병존형 소송담당인 채권자대위에서는 "본래 권리귀속주체가 소제기 사실을 안 경우에만 기판력이 미친다"라고 보지만, 대상판결의 추심소송에서는 (지득 요건을 요구함이 없이) "언제나 기판력이 미친다"라는 판단을 별도로 해 주어야 한다(보충의견 참조). 또한 대상판결의 보충의견은, 어느 한 추심채권자의 추심소송 계속 중 다른 추심채권자가 같은 소송물에 관하여 제기한 추심의 소는 중복제소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이는 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6다35390 판결과 배치된다.
이 2016다35390 판결에서는, 한 추심채권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전소가 "청구금액 중 일부를 지급받고 나머지는 포기한다"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으로 확정된 사안에서, 그 화해권고결정의 기판력은, 그 전소의 변론종결 '전'에 발령된 다른 추심채권자 제기한 추심금청구소송(후소)에 미치지 않는다고 했던 바 있다. 아마도 2016다35390 판결은 향후 폐기되어야 할 듯하다.
요컨대 기존 판례처럼 갈음형 소송담당설을 취하든 대상판결처럼 병존형 소송담당설을 취하든 어차피 여러 관련문제들을 논리일관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즉 본질에 관한 양 견해 모두 어차피 장단점을 가진다. 그렇다면, 반세기 넘게 확립되어 있던 판례를 굳이 바꿀만큼 변경 필요성이 긴요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일단 향후의 실무는 대상판결에 따라 할 터이며, 대상판결에서 미처 결정내리지 못한 몇 가지 관련사항에 대한 결론도 앞으로 추가로 내려져야 할 것이다.
2. 항소장각하명령 성립 후 인지보정 가부
대법원 2025. 7. 24. 자 2021마6542 전원합의체 결정
(1) 사안
Y는 제1심 판결에 항소하면서 항소장에 인지를 붙이지 않았다. 제1심 재판장은 2020. 12. 4. Y에게 '보정명령 송달일부터 5일 안에 인지대와 송달료를 보정'하라는 명령을 하여, 2020. 12. 7.에 송달되었다. 2020. 12. 16. 제1심 재판장은 미보정을 이유로 항소장각하명령을 하였는데, 피고는 같은 날에 인지대·송달료를 납부하고 법원에 보정서를 제출하였다. 위 각하명령이 12. 25.에 송달되자 피고가 즉시항고하였다. 원심은 각하명령의 발령일이자 그것이 피고에게 송달되기 전인 12. 16.에 보정의 효과가 발생하였으므로, 위 항소장각하명령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2) 판결 요지
민사소송법상, 항소인이 보정명령상의 기간 내에 인지를 보정하지 아니하여 제1심 재판장이 항소장각하명령을 발하였다면 이는 적법하다. 여기서 명령을 발한 때란, 명령이 적법하게 '성립'한 때를 말하고, 전자문서로 작성된 결정이나 명령은 법관이 사법전자서명을 완료한 때 성립한다. 결정이나 명령이 일단 성립하면 취소·변경을 허용하는 별도의 규정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 스스로 이를 취소·변경할 수 없는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인지보정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장각하명령이 성립한 시점 후에는 항소인이 인지를 보정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각하명령은 위법하게 되지 않는다. 파기환송.
(3) 분석
과거에는 (판결과 구별되는) 결정·명령의 성격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 발령법원은 자신의 판단에 기속되지 아니하여 자신의 결정·명령을 스스로 취소·변경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취소변경절차를 '재도의 고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대법원 2014. 10. 8.자 2014마667 전원합의체 결정이, 결정·명령의 경우에도 그 원본이 법원사무관등에게 교부되어 '성립'한 후에는 발령법원 스스로가 이를 취소·변경할 수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성립'이라는 개념단계를 도입했다. 이 대법원 결정은, 결정·명령의 성립 시점 후에는 (그것이 당사자에게 고지되기 전이라도) 그에 대하여 불복하여 항고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당사자의 편의를 도모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위 2014마667 결정과 같은 맥락에서, 결정·명령의 성립 후의 구속력을 인정하면서, 이번에는 그 구속력 때문에 그 성립 후의 인지보정이 위 결정·명령을 위법하게 만들게 되지는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결정·명령에 대하여는, 본안판결과 같은 강한 구속력 내지 기속력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상황에 따라 발령법원 스스로의 취소·변경을 허용해 줄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정·명령의 종류·유형별로 판단되어야 하는 문제이지, 대상판결 또는 2014마667 판결처럼 '성립'이라는 개념단계를 창출하여 해결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이는 비교법적으로도 이례적이다. 결정·명령의 기속력 전반에 대한 거시적인 검토가 향후 요망된다고 하겠다.
3. 제1심 변론종결 후 지연손해금율이 변경된 경우, 항소심이 적용할 지연손해금율
대법원 2025. 2. 13. 선고 2021다245542 판결
(1) 사안
X1, X2, X3은 용역업체 직원으로서 Y의 지사에서 상황실 보조원 업무를 수행했다. Xs는 Y를 상대로, 자신이 근로자라거나 또는 Y에게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급여, 각종 수당, 복리후생비의 지급 또는 그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제1심은 Xs의 일부 승소로 판결하였고(변론종결일은 2019. 1. 18.), 항소심에서 Xs는 그 각 청구를 확장하는 청구취지변경신청을 2020. 11. 30.에 하였다. 그런데,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이하 '소촉법') 제3조 제1항의 법정이율이 연 15%에서 연 12%로 개정되어 (위 제1심 변론종결 이후이자 제2심의 청구확장 이전인) 2019. 6. 1.부터 시행되었다. 항소심은 청구인용 금액에 대하여, 그 금액이 제1심에서 변론종결된 청구 부분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원심판결 선고일 다음날부터 연 12%를 적용하였다.
(2) 판결 요지
소촉법 부칙 제2조 제1항에서는 "이 영 시행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으로서 제1심의 변론이 종결된 사건에 대한 법정이율은 이 영의 개정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는 "이 영 시행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으로서 제1심의 변론이 종결되지 아니한 사건에 대한 법정이율은 2019년 5월 31일까지 발생한 분에 대해서는 종전의 규정에 따르고, 2019년 6월 1일 이후 발생하는 분에 대해서는 이 영의 개정규정에 따른다"라고 규정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해당 사건에서 제1심의 변론이 종결된 후 개정규정이 시행되었을 경우, 항소심에서 인용되는 청구 부분 중 제1심에서 이미 심리하여 판단된 바 있는 청구 부분은 '제1심의 변론이 종결된 사건'에 해당하므로 소촉법상 법정이율에 관하여 종전의 규정을 적용해야 하지만, 항소심에서 비로소 청구취지가 확장됨에 따라 새롭게 인용된 청구 부분은 '제1심의 변론이 종결된 사건'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소촉법상 법정이율에 관하여 개정규정을 적용하여야 한다. 지연손해금 부분 파기환송(근로자성 판단 등에 관한 다른 판시는 생략함).
(3) 분석
위 부칙 제2조는, 개정이율 시행일 당시 "사건"의 제1심 변론이 종결되었는지 아니면 계속 중인 "사건"인지에 따라서 적용이율을 달리한다. 그리고 대상판결은 항소심에서 인용되는 "청구"를 제1심에서 이미 심리·판단된 청구 부분과 청구확장에 따라 새로 인용되는 청구 부분으로 나누어서 각각 적용이율을 다르게 적용한다.
여기서 법률부칙과 대상판결이 말하는 "사건" 내지 "청구"란 무엇일까? 이는 소송물을 단위로 해서 판단해야 하는가, 아니면 가분적인 금전채권의 경우에 항소심에서 인용액이 늘었다면 그 금액별로 하나의 "사건" 내지 "청구"인지를 판단해야 하는가? 아마도 원심은 전자의 관점에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이고, 대법원은 후자의 관점에서 판결을 내린 듯하다. 논리적으로는, 부칙 제2조의 "사건"을 소송물별로 판단하는 쪽이 더 옳다고 보인다. 하지만 대법원은 금전채권의 이자·지연손해금을 세밀하게 잘라서 처리해 온 오랜 전통이 있다. 대상판결 직후 대법원 2025. 3. 27. 선고 2021다245528, 245535 판결에서도 대상판결과 같은 판시가 반복되었다.
소송상 이 쟁점이 거듭하여 다투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의 항소심 절차상 거의 제한 없이 청구의 변경 및 확장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소심에서의 무제한적 청구변경은 이론적·현실적으로 문제가 크다. 영미의 항소심은 법률심이므로 청구변경이 애초에 불가하다. 독일에서는 청구변경의 요건이 엄격할뿐더러(독일에서는 청구변경과 청구확장의 요건이 구별되어 있음), 항소심에서 새로운 사실주장이나 증거의 제출이 원칙적으로 불허된다는 점 때문에 항소심에서의 청구확장 역시 어렵다. 입법적으로는 항소심에서의 청구변경·청구확장을 통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겠지만, 입법 이전이라도 항소심의 성격을 제1심과 같게 보는 대상판결과 같은 견해는 지양되어야 한다.
4. 외국법원의 확정재판이 기판력을 갖기 위한 요건
대법원 2025. 6. 12. 선고 2024다315527, 315534 판결
(1) 사안
Y가 X에게 말레이시아 소재 부동산을 매도한 후 X를 상대로 말레이시아 법원에 잔금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X가 한국 법원에 이 사건 본소를 제기하여 매매대금 반환 또는 손해배상을 구하자, Y가 반소를 제기하여 위 부동산의 소유권 이전과 상환으로 나머지 잔금의 지급을 구하였다. 원심은, 이 사건 매매계약의 효력을 다투는 X의 본소 청구를 모두 배척하면서도, ① Y의 위 부동산 소유권이전의무와 X의 잔금지급의무가 동시이행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② 말레이시아 법원의 판결이 있음에도 판결로 X에게 잔금 지급을 명할 경우, 잔금이 국내 및 말레이시아에서 중복 지급될 위험도 있다는 등의 이유로, Y의 반소 청구를 '기각'하였다.
(2) 판결 요지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고, 이는 외국법원에서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승인요건을 갖춘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우리나라 법원에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한 경우에도 같다.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제4호는 외국법원 확정재판의 승인요건으로 '상호보증'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보증은 외국의 법령, 판례 및 관례 등에 의하여 승인요건을 비교하여 인정되면 충분하고 반드시 당사국과 조약이 체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으며, 해당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같은 종류의 판결을 승인한 사례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승인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이면 충분하다.
말레이시아는 외국법원의 금전지급 판결의 보통법(common law)에 따른 집행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이때 보통법에 따른 외국판결에 대한 승인 및 집행요건이 우리나라의 외국재판 승인요건에 비추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였거나 우리나라에서 정한 요건보다 전체로서 과중하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말레이시아 법원의 확정판결이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4호의 요건을 구비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반소의 적법 여부에 의심이 갈 만한 사정이 엿보이는 이상, 이 사건 외국판결의 확정 여부와 이 사건 외국판결이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승인요건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지를 조사하여 이 사건 반소가 권리보호 이익이 없어 부적법한 것은 아닌지를 심리하였어야 한다. 반소부분 파기환송.
(3) 분석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한국 법원의 판결에서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며, 외국법원의 확정재판에서도 인정될 수 있다. 우선 외국법원의 확정재판이 한국법원에서 승인판결을 이미 받았다면, 기판력이 당연히 인정된다. 대상판결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법원에서 아직 승인판결을 받지 않았더라도 그 외국법원의 확정재판이 한국법상 승인요건을 갖추고 있으면, 기판력을 가짐을 판시하였다. 통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외국재판의 승인·집행은 국제적인 통일적 규율이 바람직하므로, 헤이그 국제사법회의가 이에 관한 통일적 규범을 도출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그 성과로 2019.7.2.에 "민·상사 외국판결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헤이그 재판협약")이 채택되어 있다. 외국재판의 승인요건에 관한 한국의 민사소송법 제217조는 2014. 5. 20.자로 개정되었으며, 그 기판력의 범위는 그 외국재판이 당해 외국에서 가지는 기판력을 기준으로 한다. 다만 집행력은 (승인요건을 갖춘다고 해서 곧바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법원으로부터 집행판결을 받아야 생긴다.
5. 가집행선고부 판결의 집행정지를 위하여 공탁한 담보가 담보하는 손해의 범위
대법원 2025. 2. 13. 자 2024마7294 결정
(1) 사안
X를 상대로 한 Y의 용역대금 청구소송의 제1심에서 "약 2000만 원 및 그 지연손해금"을 명하는 가집행선고부 판결이 선고되었고 X가 항소하였다. X는 항소심에서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X가 담보로 2500만 원을 공탁하는 것을 조건으로" 위 판결의 강제집행을 제2심 판결선고시까지 정지하였고, X는 위 공탁을 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그 후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였고 확정되었다. X는 소송 완결을 이유로 Y를 상대로 '이 사건 담보에 관한 권리행사 최고 및 담보취소 신청'을 하였다. 원심은 Y에게, 담보권리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라는 최고서를 송달하였다. Y는 "판결이 확정되었으나 판결 원금 및 지연손해금과 소송비용을 모두 변제받지 못하였다"는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이 의견서에는 위 제1심 및 항소심판결과 소송비용액(약 400만 원) 확정결정이 첨부되어 있다.
원심은, Y가 본안사건에 관한 소송비용액 확정결정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이 사건 담보에 대한 권리행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Y가 적법한 권리행사를 하였다는 점을 소명할 만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담보를 취소하는 결정을 하였다. Y가 재항고.
(2) 판결 요지
가집행선고부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정지를 위하여 공탁한 담보는 강제집행정지로 인하여 채권자에게 생길 손해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고 정지의 대상인 기본채권 자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므로, 채권자는 그 손해배상청구권에 한하여서만 질권자와 동일한 권리가 있을 뿐 기본채권에까지 담보적 효력이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전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한 가집행선고부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정지를 위하여 담보공탁을 한 경우, 위 금전의 가집행이 지연됨으로 인한 손해에는, 집행정지가 효력을 갖는 기간 내에 발생한 지연손해금 상당의 손해가 포함되고, 그 경우 지연손해금 상당의 그 손해배상청구권은 기본채권 자체라 할 것은 아니어서 강제집행정지를 위한 담보공탁의 피담보채권이 된다.
위 판결이 확정되면 그중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한 부분은 강제집행정지를 위한 담보공탁의 피담보채권이 발생하였음을 증명하는 서면이 되고, 권리행사 최고를 받은 권리자가 위 확정판결을 제출하면 담보공탁에 대한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위 조항에 의한 담보취소를 할 수 없다. 파기환송.
(3) 분석
집행정지를 위하여 공탁한 담보가 담보하는 피담보채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관하여, 오래 전부터의 대법원 판시는 "그 담보는 강제집행정지로 인하여 채권자에게 생길 손해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지 정지의 대상인 기본채권 자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는 대법원 1988. 3. 29.자 87카71 결정이 판시한 이래, 대법원 1992. 1. 31.자 91마718 결정 등에서 반복하여 판시됨으로써 확립되었다. 이로써 위 공탁금을, 본래 다투어진 본안의 채권의 변제에 충당할 수 없다는 실무가 뿌리내렸다.
하지만 공탁자가 나중에 패소하여 애초의 가집행선고부 본안판결이 유지되는 경우에, 비록 기본채권 자체에는 손상이 가지 않더라도, 그 집행정지로 "인하여" 채권자에게 생기는 부수적 손해는 당해 공탁금의 피담보채무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이에 건물명도를 명하는 제1심의 가집행선고부 판결에 대하여 제2심에서 집행정지결정 및 그 집행정지를 위한 담보공탁이 행해진 사안에서, 대법원 2000. 1. 14. 선고 98다24914 판결; 대법원 2024. 1. 5.자 2023마7070 결정 등은 그 명도집행이 지연됨으로 인한 손해에는 집행정지기간 내에 발생된 차임 상당의 손해가 포함되며, 그 차임 상당 손해배상청구권은 위 판례가 말하는 '기본채권 자체'가 아니라는 판시를 내놓았다.
그리고 대상판결에 이르러, 기본채권이 금전채권인 경우에도, 집행정지된 가집행선고부 판결이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한 금전지급 판결이라면, 그 지연손해금 상당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기본채권 자체'가 아니며 담보공탁의 피담보채권이 된다는 판시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타당한 판결이다. 대상판결과 동일한 판시가 그 후 대법원 2025.11.18. 자 2025마7333 결정에서도 반복되었다.
6. 주주지위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
대법원 2025. 6. 5. 선고 2024다202652 판결
(1) 사안
A는 B회사의 주주명부에 계쟁 주식의 주주라고 기재되어 있다. A는, 자신이 B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다른 소송사건에서 B회사가 계쟁 주식이 C의 소유라고 주장함으로써 회계장부 열람등사권이라는 자신의 주주권 행사가 제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B와 C를 피고로 삼아 주주지위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 및 제2심은, 주주명부에 적법하게 주주로 기재되어 있는 자는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주식에 관한 의결권 등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회사 역시 주주명부상 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부인할 수 없으며, 주주명부에 기재를 마치지 않은 자의 주주권 행사를 인정할 수도 없다는 이유로, A에게 주주 지위 또는 주주권 행사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A의 확인의 소에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소를 각하하였다.
(2) 판결 요지
명의개서가 이루어졌다고 하여 무권리자가 주주가 되는 것은 아니고, 명의개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주주가 그 권리를 상실하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주식의 소유권 귀속에 관한 권리관계와 주주의 회사에 대한 주주권 행사국면은 구분되는 것이고, 회사와 주주 사이에서 주주권의 귀속이 다투어지는 경우 역시 주식의 소유권 귀속에 관한 권리관계로서 회사에 대한 주주권의 행사와는 별도로 판단되어야 한다.
따라서 회사가 주주명부상 주주에 대하여 그 주주권의 귀속을 부인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주주명부상 주주라는 이유만을 들어 회사에 대하여 주주권 확인을 구할 이익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회사가 주주명부상 주주 외에 다른 자에게 명의개서 절차를 이행해 줄 것 같은 태세를 보이거나 주주명부상 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하였는지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파기환송.
(3) 분석
주지하듯이, 확인의 소는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그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인 경우에 허용"된다는 것이 교과서적 설명이자, 대법원에서 반복적으로 내려지는 판시이다. 그러나 위 문구는 실제 확인소송에서 확인의 이익 존부 판단에서 그다지 실천적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법원 민사판결에서 수시로 내려지는 확인의 이익 존부 판결을 여럿 읽어보아도 어떤 기준선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확인의 소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유럽 각국 및 미국·캐나다 등의 소송절차에 도입되었으며, 한국은 일본을 통하여 독일의 확인소송을 계수하였다. 그런데 이 계수과정에서 '확인의 소의 보충성' 개념이 지나치게 강조되었고, 이에 따라서 현재 한국의 확인의 이익은 (비교법적으로 볼 때) 아주 협소하게 인정되고 있다. 영미에서는 확인청구의 보충성을 심각하게 설명하지 않고, 나중에 원고승소판결에 대한 피고의 불응 때문에 원고가 다시 이행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 일이 일부 발생하더라도, 현재 단계에서 원고가 구하는 확인판결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에 서 있다. 독일에서도 확인의 이익이 한국보다는 넓게 인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확인판결만으로도 그 판결이 정해주는 권리의무관계에 따르는 피고가 오히려 훨씬 다수일 터이며, 특히 기관 피고 등의 경우에는 그렇다. 확인의 소의 보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총합적으로는 오히려 소송경제에 반할 수도 있다. 근년에 과거의 엄격한 '확인의 소의 보충성' 이론을 약간 완화하는 듯한 판결들이 일부 보이며, 대상판결 역시 같은 차원의 판결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대상판결 선고 직후에 대법원 2025. 9. 11. 선고 2025다211120 판결도 같은 취지로 확인의 이익을 판단하였다. 최근에 한국에서 확인의 소의 보충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정상민, "20세기 미국에서의 확인의 소의 생성과 발전", 저스티스 204호 참조).
전원열 교수(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