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유럽에서 공개된 11세대 E-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후륜구동 플랫폼 MRA2(Modular Rear Architecture 2)을 기반으로 제작된 프리미엄 어퍼 미들 클래스(준대형급) 모델이다. 실루엣은 전 세대 모델과 유사해 보인다. 덕분에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크지만 디자인의 디테일적 요소들을 넣어 신선함을 느끼도록 했다.
디자인
전면은 EQ 브랜드의 디자인 요소 일부를 적용했는데, 헤드램프와 그릴이 하나의 형상으로 자리잡도록 블랙 컬러의 하이그로시 소재로 공간을 채웠다. 전 세대 모델의 둥근 헤드램프의 형상에 비해 날개를 연상하게 하는 슬림한 헤드램프가 전 세대 모델보다 보다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오늘 테스트하는 모델은 E300 4MATIC AMG LINE이다.
범퍼에 날카로운 선을 그어 심플한 조형미를 갖춘 E450의 범퍼와 달리 E300은 AMG 라인 답게 좌에서 우로 이어지는 하단 에이프런으로 공기 역학적인 기능성을 강조한 모양새다. 엠블럼 스타일도 다르다.
측면 비율도 전 세대와 큰 차이 없지만 안정감이 좋다. C필러를 두툼한 폭으로 리어 펜더까지 내려 보다 견고한 인상을 강화한 것도 특징.
S-클래스를 시작으로 히든 타입 도어 핸들을 썼는데 문을 열기까지 차량과의 스킨십 과정이 더 필요하다. 쉽게 말해 익숙해지기 전까지 핸들이 안 나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 그래도 야간에 도어 핸들에 조명이 들어와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즐거움을 더하긴했다.
후면부 디자인의 하이라이트는 리어램프인데 메르세데스-벤츠의 삼각별이 입체적으로 표현됐다.
E300은 리어 범퍼 좌, 우 끝단에 디테일을 추가해 AMG만의 스포티함을 표현해낸다. 또한 머플러 라인을 뚜렷하게 크롬소재로 강조해 E450과의 차별화도 시도했다.
트렁크 공간은 전세대보다 12cm가량 긴 길이가 자랑이다. 11세대 E-클래스는 휠베이스, 전장, 전폭이 모두 전 세대보다 늘어났는데 그 덕분에 더 넓은 공간이 매력 포인트로 자리한다.
차량 무게는 실측 기준 1911.5kg으로 나왔는데 6기통 엔진을 쓰는 E450의 실측 무게 2007.5kg보다 96kg가량 가벼웠다. 배분은 E450이 전륜에 54.47%의 무게가 실린 것에 반해 E300은 53.44% 수준으로 6기통 엔진보다 가벼운 4기통 엔진의 무게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실내는 최신 MBUX가 적용된 디스플레이로 전면 대시보드를 가득 채웠다. 디스플레이 상단에는 긴 아치 형태로 송풍구를 배치했는데 화려하지만 정돈된 이미지가 좋다. 그리고 이 구조를 다시금 앰비언트 라이트 바(Bar)로 감싸 화려함을 더했다. 낮보다 밤에 강한 벤츠랄까? 센터 디스플레이는 14.4인치 크기며 티맵과 협업한 내비게이션을 탑재해 사용성을 강화했다.
스티어링 휠 디자인도 AMG 라인 전용을 쓴다. 잠자리 날개를 연상하게 하는 스티어링 스포크 위에는 터치 컨트롤 기능이 들어갔다. 직경 36.5mm의 원형 스티어링을 적용한 E450과 달리 E300은 하단이 짧은 D컷 스타일의 스티어링 형태를 갖췄다. 스티어링 림 두께는 비슷하지만 타공 가죽 소재가 쓰여 쥐는 촉감이 E450과 다르다.
화려한 앞좌석 대비 뒷좌석은 수수한 분위기다. 뒷좌석을 위한 공조기 컨트롤러 대신 작은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가격을 생각하면 3~4존(zone) 공조장치 구성이 맞을 텐데. 그래도 USB C포트 및 열선 시트 등의 최소 편의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1세대 E-클래스의 인테리어는 낮보다 밤에 빛을 발하는데, 야간 드라이브를 즐기며 감상하는 쪽을 추천하는 입장이다. 실내를 감싼 앰비언트 라이트가 재생되는 음악의 비트에 따라 밝기를 바꿔가며 차량 내부를 화려하게 꾸며주기 때문이다.
80년대 디스코나 유로댄스를 즐기면 퍼플, 핑크 계열의 네온 빛을 발산하는데 그 시절 레트로 분위기의 클럽을 연상케 한다. 클래식을 재생시킬 때 블루 내지는 그린 계열의 빛을 설정하면 음악과 어울리는 잔잔한 느낌이 좋다.
사운드 시스템도 흥미롭다. 부메스터(Bumester) 4D 시스템은 17개 스피커, 총 출력은730w급으로 실내를 감싸는데, 앞좌석을 위한 익사이터 4개의 구성이 보인다. 익사이터의 개입 덕분에 운전자는 촉각 사운드 이펙트를 시트를 통해 전달받아 조금 더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게 된다. 물론 한시간 이상의 주행에서 계속 익사이터로 자극을 받다 보면 피로감으로 인해 4D 기능을 꺼버리게 되지만 단시간의 운전에서 음악을 통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E-클래스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개성이다.
조수석 디스플레이 그리고 사운드 시스템, 앰비언트 라이트 등의 구성을 보면 이번 E-클래스가 탑승자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동 중 차 안에서 파티에 가까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차내 거주 경험에 총력을 다한 것.
주행
ADAS 성능에서도 전 세대 대비 진보했다. 같은 세대의 E450보다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E300이다. 특히 차선 인식의 범위 그리고 속도에서 차이를 나타냈다. 단독 주행이 아닌 전방에 선행 차량이 있으면 시스템이 더 자신감을 보인다. (모델이 동일해도 ADAS 성능은 다를 수 있다)
최신화된 ADAS 시스템을 갖춘 E300은 전방 차량 간의 상대속도도 세심히 그리고 분주하게 실시간으로 계측하며 인지와 판단, 제어를 가능한 빠른 시점에 실행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로 한남대교에서 양재 방면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이용하며 약 80km/h의 속도로 주행 보조장치의 차간 거리를 최소로 설정한 채 달리고 있었다. 약 300미터 전방 쯤 멈춰 있는 정체 차량의 무리가 보일 무렵, E300은 설정 거리와 무관하게 미리 속도를 천천히 줄여나갔고 정체된 차량 그룹에 가까워졌을 즈음에는 이미 그룹과 비슷한 속도로 스스로 속도를 맞춰나갔다. 차간 거리 설정과 무관하게 운전자가 안전할 수 있도록 이상적인 제어를 해낸 것.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건 최근의 ADAS 시스템이 단순한 거리 기준의 알고리즘을 넘어 점차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도록 분기점이 다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차선을 잘 유지하느냐 못하느냐, 스티어링의 개입 정도가 과감한가의 판단 기준보다 위에서 언급한 경험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교통 상황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로 대응할 수 있는가에 높은 평가 가치를 부여할 필요성을 느꼈다.
정숙성에서도 E450과 차이를 보인다. 80km/h 주행 속도를 기준으로 동일한 노면에서 측정하는 소음 계측에서 E300은 58.2데시벨(dBA) 수준을 보였는데, 이는 E450보다 0.8데시벨 높은 수치다. 휠 사이즈 그리고 타이어도 동일했으므로 이는 E450이 탑재한 에어 서스펜션과 E300 AMG 라인의 서스펜션 간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무난한 출력에 높은 토크를 갖춘 메르세데스-벤츠의 2리터 엔진을 탑재한 E300의 0-100km/h 계측 기록은 6.73초. 이는 제원 기록인 6.1초에는 도달하지 못한 성능이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의 직결감이나 변속기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으므로 휠 사이즈 증대로 인한 성능 감소로 해석할 수 있겠다. 큰 휠은 보기 좋지만 연비, 순발력 등 효율에서 아쉬움을 남길 때가 많다.
100km/h로 달리는 E300은 정지할 때까지 최단 35.88m, 최장 37.91m라는 기록을 냈다. E450은 이보다 짧은 최단 34.57m를 기록했으며 최장 거리는 36.05m로 약 1미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같은 사양의 제동 시스템, 동일한 타이어 그리고 휠까지 갖췄음에도 이런 차이가 났는데, 차량간 편차 정도를 예상해 볼 수 있겠다. 한편 EPB(전자식파크브레이크)를 사용했을 때의 제동거리는 71.88m로 E450보다 0.64m 짧았다. 이 정도는 유사 성능으로 보면 된다.
스티어링, 가속 페달, 제동 페달을 아우르는 조작계통 감각은 전 세대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벤츠의 스타일이지만 운전자의 스티어링에 따라 방향이 전환될 때 타이어가 차체를 움직이게 하는 시간이 다소 긴 인상이다. 특히 후륜 축을 중심으로 크게 느껴지는 질량감이 전 세대 모델과 차이점이다.
E450과 E300 간의 운동 성능 차이도 제법 뚜렷하다. E450은 급차선 변경에서 후륜 축의 움직임이 안정적이며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반면 E300은 보다 가벼운 시작으로 움직임의 끝단에서는 회전감이 남아 틀어지는 후륜 축의 각도가 비교적 크다. RWS(후륜조향) 기능에 의한 차이로 해석된다.
두 모델의 프리 세이프(벤츠의 안전장치)의 지속적인 개입 패턴은 같다. 다만 ESP(자세제어장치)를 해제하면 프리 세이프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참고하자. ESP를 해제하고 나면 E300은 약간의 카운터 스티어링 정도를 허락해주지만 대부분의 속도 영역에서 차량이 운전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나선다. DSC(BMW의 자세제어장치)를 해제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BMW 5시리즈의 성격과 E클래스 사이서 존재하는 큰 차이점이다.
AMG 라인의 내외장 디테일을 제외, 에어 서스펜션의 유무와 엔진 그리고 무게만이 E450과 E300의 차이점이다. 이들의 영향으로 승차감에서도 차이를 나타낸다. 두 차량은 요철을 처리하는 상쇄력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E450은 들어오는 충격을 둥글고 작게 다듬어 차체에 작은 울림 정도를 전한다.
반면 E300은 이보다는 충격의 봉우리가 조금 높아져 전달되는 느낌인데 쉽게 말해 충격 전달 후 약간의 차체 하강감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빨래판 같은 연속된 형태의 요철로에서는 에에 서스펜션 타입 못지 않게 처리를 잘 해내는 모습이라 에어 서스펜션이란 장점(?)만 갖추지 못했을 뿐 일반적인 상황에서 전자식 댐퍼 타입으로는 최상급의 성능을 보유했다고 보면 맞다.
BMW의 5시리즈(530i xDrive)와 비교했을 때 구성 대비 가격에서 이슈가 될만한 요소가 많기는 하다. 그러나 E클래스는 프리미엄 클래스에서 이번 세대 5시리즈가 가지지 못한, 그리고 5시리즈가 부분 변경되더라도 가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E클래스가 가진 절대적인 화려함이다. 이는 재활용 소재 활용과 플라스틱을 무척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비교적 단조로운 실내 디자인 구성을 갖춘 5시리즈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차량 성능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E클래스의 상품가치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겠지만 E클래스는 프리미엄 세단 다운 성능은 유지하면서 탑승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의 고급화를 통해 자존심을 지켰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의 판매량 집계를 확인해본 결과 E300은 5894대나 판매됐다. E200 1718대, E450 523대가 판매되어 “E300이 너무 비싸서 안팔릴 것 같다”라는 세간의 걱정을 판매량을 통해 완전히 불식시켰다. 한편 5시리즈는 언제나 그랬듯 엔트리 트림인 520이 6551대로 판매량을 견인하며 530 xDrive는 2,592대라는 판매 성적을 보이고 있다. 상급 트림이 잘 팔리는 벤츠, 입문 트림이 잘 팔리는 BMW. 이것도 브랜드 차이다.
오토뷰 | 전인호 기자 (epsilonic@autoview.co.kr)